사랑의 결 - 타인과 나를 통과하는 일
너의 하람(2)
한편 그 애의 세계 속 나 또한 하람이 아닌 부분이 없다. 그 애가 이방인, 학생, 비정규직으로 변방의 사람이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그보다 5살이나 많았다. 이슬람 남자들은 보통 자신보다 젊다 못해 어린 여성을 짝으로 삼는다. 당연하게도 난 이슬람 여인이 아니다. 심지어 외국인이다. 또한 이슬람교를 믿지도 않는다. 정확히는 그 어떤 종교도. 돼지고기 좋아하고, 갑각류부터 온갖 바다괴물 다 사랑하고, 술도 마신다. 특성만 나열하면 거의 악마 그 자체였다. 애초에 혼인하지 않은 남자의 집은 금녀의 공간이어야 했다. 그 애와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익숙한 유교의 그림자나 가부장제의 기시감을 느꼈다. 단지 먼 외국에서 왔을 뿐, 꼭 유서 깊은 종갓집 도련님 같았다.
하루 몇 번씩 H에게 걸려오는 가족 단체 영상통화에 혹시라도 출연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나보다도 그의 정신을 지키려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럼에도 걘 자꾸 공격당했다. 무형의 존재로부터 날아오는 매까지 내가 막아줄 순 없었다. 당장 눈앞의 내 체온에 의지하며 동시에 반성하고, 후회하고, 악마를 쓰다듬는 제 손을 잘라버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의 체온은 하람인가, 할랄인가? 덩달아 고민해야 했다.
문제 1. 다음 두 사례를 읽은 뒤, 할랄 또는 하람 중 옳다고 여겨지는 칸에 체크하시오.
벌써 몇 해 째 만나지도 못 했지만 매일 행실 감시 겸 전활 걸어오는 휴대폰 속 가족의 ‘앗살람(인사말이지만 알라의 가호를 전하는 안부의 뜻이기도 하다)’ 은 할랄입니까, 하람입니까. (할랄 v) (하람 v)
당장 다음 학기 한 유학생의 거취를 정할지도 모를, 학위과정 지원서류의 어색한 문맥을 정정하는 한국 여자의 목소리는 할랄입니까, 하람입니까. (할랄 v) (하람 v)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냥 이름이나 김하람으로 개명해버릴 걸 그랬다. 그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전부 그 애의 몫이었다. 어찌 되었든 난 잘못한 일이 없었다. 내 존재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다행히 고뇌는 자주 찾아오는 만큼 짧게 짧게 지나갔다. 알바 출근 시간이나 허기는 그보다 더 빨리 빨리 찾아왔다. 걔네 민족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사 온 할랄 미트로 H의 고향 수프를 끓여 함께 먹었다. 내가 이런저런 훈수를 두면 걔는 “할머니 시네요!”라고 이상한 띄움을 넣은 묘한 한국 억양으로 말했다. 그 얼굴이 꼭 10대 소년 같았다. 돼지고기는 입에도 안 대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동네 삼겹살집 알바를 구해 두고 긴 다리로 휘적휘적 출퇴근을 반복하는 그 애의 등은 번듯한 20대 청년 같았다.
생김새만 보면 거의 내 삼촌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그 튀르크계 청년의 약함과 강함과 모든 불안정을 사랑했다.
사랑은 이해와 회복 사이에서 흔들린다.
멀수록 선명하게. 가까울수록 어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