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 - 타인과 나를 통과하는 일
너의 하람(3)
별 보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내향인의 일처럼 보인다. 시간의 레이어, 시각의 레이어,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세계 사이 겹으로 쌓인 레이어를 넘나드는 집요한 선망과 빛나는 호기심은 수줍음 많은 유목민 소년을 결국 한국 땅으로 데려다 놓았다.
소년은 우주를 공부했다. 서툰 한국어로 인공위성의 궤적을 계산했고( 그래도 수학은 숫자와 알파벳과 기호로 이루어져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 태양을 둘러싼 대기 성분에 대해 뜨겁게 설명했다( “알고리즘 단어의 기원을 알아? 고대 페르시아 수학자 이름이야!” 하고 자랑해대는 통에, 그의 고향땅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페르시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언젠가엔 유학생의 주민등록증 격인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이 명명한 걔의 신분은 놀랍게도’ 'ALIEN' 이었다.
“이거 봐, 나 에일리언 이야! 외계인… 푸후후후!”
H는 좋아했다. 과연 우주인다웠다. 아니 외계인? 이방인? 또는…완전한 타자. 뭐든 그 비슷한 어딘가의 아이. 그 애는 대체로 화내는 대신 웃었고 슬플 때 한 번 더 농담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쩔 수 없어서였는지 천성이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순하고 선한 외계인이었다. 할랄 미트 외의 고기를 먹지 않아 자주 부족해지는 입맛과 영양은 달콤한 간식으로 채웠다. 그 애가 한국에 온 지 약 5년 째였다. 난 더러 그 애가 대략 다섯 살 언저리로 느껴지곤 했다. 아빠가 정해준 규칙. 엄마가 만들어준 디저트. 이성관계는 정다운 대화나 손잡기 정도까지만.
언제나 H의 시선 끝에 하늘과 별과 태양이 있었다. 하늘로부터 내려받는 빛들이 그 애를 살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너무나 땅에 있었다. 난 먼 곳에서 날아온 존재가 아니니까. 내가 딛고 선 이 땅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아는 땅이었으니까. 그 애가 사람이 고파서 하던 행동이나 말의 의미를 몰랐다. 같은 삶, 같은 언어 속에서도 알기 힘든 성질의 일이었다.
한국인은 농경 민족이라 한다. 먼 거릴 이동하는 ‘역마살’ 은 흉한 팔자로 여긴 민족. 앞마당에 닭을 치고 뒤 축사에 돼지를 치는… 돼지의 발을 본 적이 있다면 한눈에 알 것이다. 이 동물은 오래 걸을 수 없다. 물 많이 먹고, 고기 보존 역시 어렵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모든 사실을 H를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문화란 그런 거였다. 종교와 이념, 교리와 규칙은 결국 실생활과 너무 가까워서 때때로 우리 눈을 가린다. 알 수 없거나, 알고 싶지 않거나, 어쩌면 알면 안 된다. 유목민이 돼지고기의 맛을 알면 벌어질 법한 일들 같은 거 말이다.
어느 날엔 싸웠다. 평범한 번화가를 걸으며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 족발집을 지나쳤다. 삶은 돼지다리가 쌓여 있는 유리 진열장 앞에서 그가 순간적으로 눈을 찌푸리고 싫은 티를 냈다. 분노가 튀어 올랐다. 내 눈에 보인 건 그저 음식이었고 이 식당은 주인의 삶의 터전일 것이었다.
- 야, H. 난 너네 나라 음식 안 이상해. 다 괜찮아. 다 먹을 수 있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들어가서 이거 먹쟀어? 어? 말해 봐.
- 미안해. 그냥 우리나라는 돼지를 안 먹어서…. 저렇게 쌓여 있으면 좀…. 이상해. 무섭고….
- 왜 너네 동네에서도 반으로 자른 양이랑 염소 통째로 널어놓고 팔던데. 뭐가 문젠데? 뭐가 문제냐고.
- 미안해. 그냥…. 미안해….
하지만 그 애에게 보인 건 불경한 동물의 조각난 몸일 것이었다. 우리가 헤어진 건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지만 왠지 이 싸움을 영영 기억한다. 내 것도 아닌 고기와 남이 만든 규칙 때문에 그 앞에 서서 싸우던 우리의 모습을.
지금 H는 그때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전해주는 소식에 의하면 한국에서 운전면허도 땄고 천문대에서 일하며 한국 아이들에게 별을 설명한다고 했다. 웃기게도 우리는 각자, 걔네 나라 수프의 냄새와 다투던 날의 족발 냄새를 여태 잊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땅 위에 서 있다. 아직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리는 꼭 행성처럼 흔들리고 별처럼 반짝이기도 태양의 흑점처럼 폭발하기도 했다. 이미 오래전 다 전해졌어야 할 마음은 종종 긴 시간을 지나 뒤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광년을 넘어온 마음이 가닿을 땅은 이제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을 때가 많지만, 빛에게 그런 사실들이 더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저 나아가는 빛은 수없이 많은 겹을 뚫고 지나 결국 언젠가 어딘가에 닿아 멈출 것이다. 그리고 호기심이 되거나 새로운 감각이 될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은 이해와 회복 사이에서 흔들린다.
멀수록 선명하게. 가까울수록 어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