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deux, trois.(1)

사랑의 결 - 타인과 나를 통과하는 일

by 김여진


Un, deux, trois.(1)


한국에서 의무교육기간을 거치며 자란 사람들은 보통 두 개에서 세 개 정도의 언어를 접한다. 모국어 다음엔 대개 영어일 것이다. 그다음 일본어와 중국어, 드물게 불어나 스페인어도 배운다고 들었다. 나의 경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제2 외국어가 모두 일본어였다. 기억이 시작되던 시점으로부터 너끈히 20년이 넘게 한 일본계 무역회사에서 쭉 근속한 아빠는 걸핏하면 일본어로 통화를 하거나 커다란 캐리어에서 꺼낸 자잘하고 낯선 식자재를 바닥에 풀어놓곤 하여서 나는 해외 한 번 나가본 적 없이도 일본을 좀 알았다. 일본인의 아침 메뉴, 일본 애들이 먹는 과자의 맛, 일본 어른이 곤란할 때 내는 소리 같은 것-아빠의 통화 내용을 열심히 훔쳐듣자면 종종 들렸다-.
수많은 외국 중에서도 일본은 내가 아는 만큼은 가까웠다.


대학에 가고 교양 러시아어 수업을 들었다. 러시아어는 정말로 꼬불꼬불해서 왜 어른들이 외국어를 꼬부랑말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대놓고 생경한 먼 나라의 억양은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마다 깨끗이 휘발되었다. 지금에야 나는 생뚱맞게 궁금하다. 그 젊은 원어민 선생님은 춥고 작은 한국 도시의 정신 산만한 애들한테 모국어를 가르치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입맛엔 어느 음식이 맞았을까? 또 몇 년 뒤 겨울엔 내 룸메이트가 고향집으로 돌아감을 선언했다. 당시 내겐 룸메이트가 빠져나간 방을 유지시킬 재력이 없었다. 생활의 대대적 개편 시기, 나는 집으로 느낀 적 없는 집이 있는 동네로 회귀하는 대신 낯설고 먼 곳에 짐을 풀기로 한다.


낯선 것이 멀고 친근한 것이 가까운 건 그때껏 학습한 규칙 중에서도 단연코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낯선 상황에서 가슴이 새 물결로 흔들리는, 그러니까, 안 하던 짓을 즐기고 처음인 일을 환영하는 부류였기도 해서,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를테면 몸속에 역마살 유전자를 보유했었기 때문에 ‘집과 알바를 동시에 잃은 겨울’ 같이 멋진 시기는 인위적으로 만들래야 쉬이 만들 수 없음을 몸으로 먼저 느꼈다. 기회였다. 나는 그길로 척척 짐을 싸 여행을 떠났다. 멀리멀리로 여러 군데를 들르며.


문경새재를 걷고 영월의 천문대에서 별을 보았다. 대구 서문시장 칼국숫집 아주머니의 수다 상대가 되었다가 순천만의 뻘에 발자국을 남기고, 통영의 어시장에서 혼자 회를 사고, 에메랄드보다 푸른 바다를 건너가 비진도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서 까마귀와 인사하고, 낯선 이들과 회를 나눠 먹으며 술을 마시다가 해운대 시외버스 터미널에 떨어져 밤늦게 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게스트하우스 로비에는 구인공고가 붙어 있었다.


- 스태프 구합니다. 여행자 환영합니다. 게스트하우스 업무를 돕고 남은 시간엔 자유로이 여행하세요. 도미토리에서 숙식하세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세요. -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살면서 일도 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줄 알았더니 짐을 더 챙겨 다시 내려간다는 딸을 보며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랑은 이해와 회복 사이에서 흔들린다.

멀수록 선명하게. 가까울수록 어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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