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온도 - 번거로움의 이유
부끄러운 전유물
6월 초여름의 벨루가 돌고래를 보러 갔다. 여수아쿠아리움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그 하얗고 말랑한 동물이 꼭 보고 싶어서였다.
순천을 거쳐 여수에 다다른 내 몸은 이미 짠 기에 푹 절어 있었다. 가방이 천근 같아서 그 무게와 싸우듯 조금 더 힘을 내 걸었다. 도망치듯 움직였다. 왠지 조금 슬픈 여행자였다. 끝나가는 연애가 스멀스멀 그림자보다 질척히 붙어 따라왔다.
수족관의 규모가 컸다. 과연 엑스포에 딸린 부대시설이구나 안도하며 표를 끊었다. 예상보다 곱절은 되는 시간을 들여 둘러봐야 했고 기분이 물에 젖은 솜처럼 변해갔다. 수족관의 규모가 크다는 건 바꿔 말해 인간에게 포획되어 운송되고 감금당하게 된 생물의 종류와 개체수가 규모만큼이나 어마무시하다는 말이었다.
안도감이 우울로 기울었다.
거대한 물탱크 속 어디에나 불행과 불안으로 헤엄치는 생물이 가득했는데 여수 아쿠아리움의 인기스타 벨루가가 유독 아름답고 크고 하얬다. 그만큼 가장 눈에 띄게 미쳐 보이기도 했다. 수조 앞에 머무는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걔네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같은 궤도로 끊임없이 빙글빙글 헤엄쳤다. 그처럼 아무 목적도 가지지 못하는 움직임은 놀랍도록 너무 너무 안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인간인 게 미안했다.
걔네를 이까짓 수조 속에 전시하고 아름답다 칭찬하는 일이 어떻게 호의일 수 있을까. 벨루가는 지능이 높다. 무리를 이루고, 언어로 소통하고, 심지어 노래도 할 수 있는 동물인데. 대학에 가기 위한 목적으로만 매일 거듭해 불러대던 특정 음률의 반복을 노래라 말하기 부끄러웠던 주제에 감히 눈 앞의 수백 바퀴째 돌고 있는 흰 잔상을 어떻게 헤엄이라 표현할까. 나는 최대한 수조 가까이 붙어 타이밍을 고심해 셔터를 눌렀다. 사진으로라도 벨루가가 수면을 바라보는 순간을 남길 수 있길 바라면서.
말하고 싶었다. 너네가 수면 방향으로 몸을 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면 위 허공 높이 뛰어오르거나 목청 높여 몇 킬로 밖 친구에게까지 들리게끔 노래할 수도 있는 애들이란 걸 나는 안다고, 미안하다고, 겨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안 사랑한다는 하찮은 이유로 집을 떠나 먼 이곳까지 찾아와 너네가 수백 톤짜리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길 기대한 웃기는 애를 용서해 주겠냐고.
그치만 들리겠나, 난 초음파를 낼 줄도 모르는데.
그냥 내 손에 들린 지구상 온갖 생물의 몫을 빼앗아 어거지로 쌓은 인간의 전유물 중 하나로 찰칵찰칵 소리나 몇 번 내고 말았던 거다.
인간의 번거로움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랑하고, 견디고, 웃으며 하루를 버티는, 우리가 가진 가장 다정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