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ff, Baby!

사랑의 결 - 타인과 나를 통과하는 일

by 김여진


Take Off, Baby!


결혼을 무르고 서핑을 배웠다. 30살의 여름, 전날 마신 소주 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보드 위에서 용을 쓰는데 정말 온 세상이 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긴말 하지 않고 강원도로 모는 차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듣고도 원래 자기 성격처럼 입을 굳게 물고 적정 수준의 침묵을 유지해 주었다. 입 다문 모습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애를 세상 떠들썩한 결혼식 무대로 끌어내 낯 뜨거운 축가 가창까지 시킨 과거의 나를 크게 꾸짖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모든 휴게소 간식과 커피를 계산했다.


남애항은 동해로 앞다투어 몰리는 서퍼 밀집지에서 북쪽 한 뼘 위 해안이었다. 밤에 사진에 찍히면 치아만 보일 게 분명한 서프바 사장님이 친구와 나를 살갑게 맞이했다. 선선하고 따끔한 여름 공기가 퍽 기분 좋았다. 이렇게 여름 휴가를 혼자 오시면 남편분은 어떡하냐는 질문에도 기분이 구겨지지 않을 만큼 멋진 하와이풍 가게 곳곳을 기웃대는 동안, 친구가 끓여다 준 떡볶이와 서핑 강사와 대여될 준비 만반의 서핑 장비가 한순간 들이닥쳤다. 잠시 정신을 놓았다가 황급히 되잡으며 생각했다. 이 시퍼런 바닷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봐야 한없이 제한적이지 않은가? 기껏해야,


1. 투신하기

2. 서핑하기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두말할 것 없이 2번이 훨씬 나았다. 해야 할 일을 이만큼 명확히 알 때도 드물 것이었다. 체감상, 결혼을 끝내자는 결정보다도 한결 쉬웠다. 나는 곧장 이튿날 아침 타임 일일 서핑 강습을 신청했다. 이제 내일의 내 목숨은 서프바 사장님보다 곱절은 까만 서핑 강사(그보다 까만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가 보전해 줄 거고, 오늘의 내가 시꺼면 밤바다에 걸어 들어가지 않게만 유의한다면 이 1박 2일은 다 괜찮을 거였다. 말수 적은 친구, 근심 없이 웃는 서퍼들, 수다스러운 바다. 안주도 더 필요 없었다.


맨 귀에도 소라껍데기 울림소리가 맴돌 지경까지 술을 마셨는데 눈이 반짝 떠졌다. 내 낯빛을 보며 웃던 선생님이 숨 냄새를 맡고는 고기밥 주실 생각이냐고 진지하게 염려했다. “제가 고기밥이 안 되면 다행인데요…” 낑낑대며 대답했지만, 그의 힘찬 구령에 몽땅 묻힌 것 같았다.


- 고 고 고 고 고…… 업!*

- 고고고… 업! 업! 테잌… 아……!


서핑은 ‘테이크 오프(take off)**’, 그러니까 겨우 보드 위로 ‘일어서기’ 에만 성공해도 반은 끝났다는 우스개소리만큼 입문 난이도가 높은 스포츠였다. 나 역시 숙취 위에 바로서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몇 개월에 걸쳐 무거워지고 어지러워진 머리가 알코올을 머금고 거듭 수면 아래 처박혔다. 매 실패마다 가차 없이 눈코입귀 골고루 바닷물이 들이쳤다. 그럴수록 선생님은 더 우렁차게 외쳐 주었다.


- 업!(일어서!)

- 고 고 고!(가, 가, 가!)


일어서, 가, 다시 일어서, 다시 가… 눈물이 찔끔찔끔 났지만 바닷물이 매운 탓을 하면 되니까 마음이 편했다. 코가 빨간 건 간밤의 소주 핑계면 괜찮을 거였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이 순간 나를 이만한 최선으로 받쳐주는 누구도 세상엔 더 없을 것이어서 계속 일어나 파도를 따랐다. 3시간의 사투 동안, 딱 세 마디에만 귀 기울이면 되었다. 수많은 고, 앤드 업, 을 딛고 일어나 마침내 3초 가량의 테이크 오프, 충분했다.



*테이크 오프를 위한 패들링을 독려하는 소리. 올라설 만한 파도가 오면 서퍼는 양 팔을 이용하여 노를 젓듯 일정 시간 패들링을 하다가(고 고 고), 두 발로 일어서야 한다(업!). 일어서서 파도에 안착 후 안정적 서핑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초보자의 경우, 파도의 흐름을 볼 줄 모르기에 강사가 구령으로 타이밍을 일러 준다.


**업! 이 일어나는 타이밍을 알리는 소리라면(상체를 일으키라는 신호), ‘테이크 오프’는 보드에서 온전히 일어나 선 동작을 말한다.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려면 균형감각이 제법 필요하다.




사랑은 이해와 회복 사이에서 흔들린다.

멀수록 선명하게. 가까울수록 어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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