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온도 - 번거로움의 이유
파 어웨이 쏠티 윈드
곧잘 무디어졌다. 살다 보면 자주 익숙해졌다. 아무리 낯선 것이라도 결국엔 잘 알아서, 반복되어서, 예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되고야 말았다. 그 감각을 모두 어떻게들 받아내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익숙함을 못 견디게 못 견디는 편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바짓단에 매달려 연거푸 물어댔다. 엄마, 우리 이사는 안 가? 엄마, 우리는 집 안 옮기는 거야? 엄마, 이 집은 질렸어. 새로운 집이 보고 싶어. 이제 다른 집에서 살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니 당연한 일이었다. 보호자 동행 여부를 추궁당할 필요 없는 나이가 되기 무섭게 나는 충동에 저항하지 않고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에 갔다. 반드시 찾아내어 달성할 목적 같은 게 없는 자유로운 헤맴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주로 국내를 다녔다. 길게, 짧게... 일행과 함께, 때론 혼자... 그렇지만 오롯이 혼자서 이동해 본 가장 먼 여행지는 겨우 제주도. 태어나 처음 홀로 비행기표를 쥐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멍멍해지는 귀를 느끼던 순간의 나는 그야말로 몹시도 어른이었다.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자신하는 항목 중 대표 격, ‘오래 ~하기’. 오래 걷기나 오래 자전거 타기 오래 먹기 오래 참기. 견디는 재능을 타고난 자가 시간을 통으로 뚝 떼어 별일도 아니고 그저 오래오래 양껏 견뎌보기 위해서만 바다를 건너 섬 땅을 밟았다. 숫자 같은 것, 배운 적도 없는 사람처럼 굴고 싶었다.
첫날 밤, 비가 왔다. 냄새에 둔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둔한 이여도 첫입, 첫 눈, 첫 냄새 따위는 각별한 법이다. 이 섬의 공기를 이루는 성분엔 필히 바다가 많이 섞였다. 숨 쉴 때마다 바다. 자꾸만 바다. 그리고 바람. 다른 바람이다. 풍량이나 풍속같은 수치로 잴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어떤 다른 세계가 면전에 입김을 분다. 아 다르다, 나는 지금 다른 곳에 있구나. 칭다오 큰 병을 사서 길고양이를 구경하며 마셨다. 금발 벽안의 남자 둘이 내 앞을 그냥 지나치려다 담뱃불을 빌려 갔다. 나를 싫어도 좋아도 하지 않는 기색의 고양이가 뒷발을 한번 털었다. 그래 멀다, 나는 지금 먼 곳에 있구나.
인간의 번거로움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랑하고, 견디고, 웃으며 하루를 버티는, 우리가 가진 가장 다정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