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카게 살자

존재의 온도 - 번거로움의 이유

by 김여진

차카게 살자


차카게 사는 법


1. 누군가에게 나쁜 짓 않기(롤모델은 싯다르타 쯤이 좋을까)

2. 내가 나쁜 짓을 해버린 상대를 인생에서 빼 버리기.

3. 내가 나쁜 짓을 해버린 상대를 없애 버리기.


3번까지 가 버리면 그건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1번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불가능과 좀 더 가깝겠다. 결국 인간은 결함 가득한 완전을 두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2번을 택하고 만다. 스쳐 지나자마자 잊던가 관계를 끊어내거나 상대가 나를 보지 못하(고 역시 결국은 잊게끔) 도록 숨어버리는 일. 사건은 삭제된다. 진취적 미래만 생각하는 척해 본다.


어느 것 하나 내 멋대로 하게 두질 않는 듯하던 뇌도 이때만큼은 적극 협조해 줄 것이다. 망각이 뇌의 주특기 중 하나라던가.


그러나 기계가 아니기에 서로는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서로들 견고히 얽혀선 아닌 척 확연히 내 모든 현재가 되어 도처에 널려 있다. 지독히 미워한 사람이 인도해 닿은 섬에서 풍요로운 지성의 열매를 따 먹고 더 이상 생각나지도 않을 만치 먼 곳에 묻은 사건의 여파가 빚어놓은 취향을 향유하며 응응의 긴밀한 친구였을-이제는 나의 친구가 된-누군가가 내어주는 따끈한 곁에 옹송그리고 누워 목놓아 울기도 하겠다.


감정이 표정을 바꿔대는 속도는 인력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다. 환절기 밤낮의 일교차만큼이나 변덕스럽다. 여름엔 겨울을 말하고 겨울엔 피서지를 검색하매 오들오들 떠는 어리석음이 때로 귀여우면서도 넌더리나고 그렇다. 겪어봐야 안다는 단순한 진리가 지겨이 원망스러운 순간은 얼마나 많던가. 사람들은 하잘것없는 사고의 체계를 넓히기 위해 세대를 적립해오는 내 꾸준히 나약하고 어리석어졌다. 끊임없이 사교하고 어울리며 (마음으로) 나약해졌고, (신체 또한) 나약해지고, (상대에게 해를 입히고서야 비로소) 좀 나은 인간이 된 척하는 법에서만 자꾸 능숙해졌다.


‘Bad Girl go to Hell’이란 문구를 팔뚝에 새긴 한 사내를 안다. 상투적이고 안쓰러운 문구지만 귀여운 디자인이었으므로 뜻에 비하면 썩 세련된 문신이었다. 기골이 장대하여 그야말로 등판에 차카게 살자라고 써놓았음직한 그의 팔꿈치 반대편 여린 살을 파고든 문구 때문에 그에겐 자주 소년 필터가 씌워져 보였다. 언젠가 당신 삶을 휘젓고 사라진 묘령의 여인을 상상하며 채 다 자라지 못한 작은 남자의 우는 얼굴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겁쟁이 남자들이 신기루 같은 썅년 서사에 겁을 한 움큼씩 집어먹은 채 살고 있는 걸까. 욕망에 비례하는 두려움의 고도는 어디까지 닿았을까. 상상 속 저주 설화 같다. 언제 닥칠지를 몰라 미리미리 제를 올려야 했던 천재지변과도 닮았다. 태풍의 기세가 꺾이길 기원해볼 요량으로 여성형 이름을 붙이는 깜찍함. 사람들은 너무 자주 꿈결같은 달콤함과 불지옥만큼 화끈한 악녀를 바짝 붙여 상상한다. 우러르거나 내려다본다.


악녀 이슈에 예민히 반응하는 이일수록 환절기 일교차에 너그러워 볼 내성이 모자랄 것이다. 하기야 내 상상일 뿐이다. 증명된 바는 없다. 술이나 담배를 사러 갈 때마다 절차상의 확인이라기엔 넘치는 태도로 민증과 얼굴을 핥아나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아마 세상에 이미 질질 넘쳐흐르는 중인 썅년 서사에 환절기 알러지만큼이나 경망히 분노하는 편일 것이다. 물론 내 상상일 뿐이다. 증명된 바는 없다.


차카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건데, 그냥 좀 솔직한 편이라거나 차라리 다소 어리석은 편인 애라 불리고픈 마음으로 변명들을 길게 늘어뜨린다. 썅년도 울 줄 안다. 배드 걸 고 투 헬, 예의 그 사내도 아마 (모르고 싶겠지만) 알 거다. 본인만 알게 묻어두었을 것이다. 썅년을 썅년으로 남겨두기 위해 따로 뒤에 빼놓은 자신만의 광경. 도축장 업자들이 소중한지 하찮은지 그냥 봐선 도저히 모호해 구분하기 힘든 모양새로 뒤에 빼놓곤 하는 까다로운 부위의 날고기와 닮은 얼굴들을.


폭염이 다 지나갔다. 친구와 불 앞에 마주앉아 고기를 구우면서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을만큼 착한 기온이다.




인간의 번거로움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랑하고, 견디고, 웃으며 하루를 버티는, 우리가 가진 가장 다정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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