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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Sep 16. 2022

편견을 깨고 한 걸음 내딛을 때

‘머글’에게 영업하는 ‘덕후’의 심정으로 권합니다

“오빠는 왜 연애 안 해?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거 아냐? 내가 소개팅 시켜줄까? 어떤 여자가 좋아?”


흡사 전자격투기 연속공격처럼 느껴졌다. 옆에 있는 남성을 향해 연달아 퍼부어진 말이었다. 나를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닌데 나까지 얼얼해졌다. 그래서 화자에게 쏘아 붙였다.


“남의 연애에 이렇게까지 관심 가져줄 필요 있어요? 알아서 하겠지.”


뱉자마자 후회했다. 아, 나 또 사회성 떨어지는 짓 했네….     


대학 시절, 대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매체의 기자단으로 활동했다. 그때 같이 활동한 팀과 일 년에 한 번씩은 만난다. 구성원들의 과반수가 가정을 꾸려 아이를 가진 지금까지도 말이다. 긴 세월이 흘러 이제 모임 내 최고령자의 나이는 만 39세, 최연소자는 (아마도) 34세이다. 나이로 따지면 모임의 중간에 나는 위치한다. 앞선 일화는 바로 며칠 전 이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를 제외한 구성원은 모두 직장인이다. 또한 모두 연애·결혼·출산이 삶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프리랜서이고 연애·결혼·출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나는 이 모임에서 종종 소외감과 껄끄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착한’ 편이고, 어쩌다 한 번씩 만나면 반갑고,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가끔은 재밌기에 가능하면 모임에 참여한다. 사회성을 훈련하겠다는 목적도 염두에 두고있다. 프리랜서의 장점이자 단점이 평소 대인 교류가 적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사회성 발달이 부족할 수 있다는 자각으로 결이 다른 사람들과도 종종 만나 자극받고자 한다.     


그래, 사회성 훈련이라는 목적이 있었지. 이 점을 상기한 다음부터는 모임이 파하기 전까지 좀 더 열린 태도로 경청하고 호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 상대를 만날지 모르겠다고 말을 꺼낸 사람에게 영혼을 실어 호응했다. 이성을 만나려는 목적을 우선에 두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지만,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건 좋아 보인다고 운을 띄운 뒤, 탱고 동호회는 어떠냐고 넌지시 영업한 것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솔로남이 “안 그래도 수업 알아본 적 있지. 그런데 거기 가면 제비들 많을 것 같아서 안 갔지”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기혼남은 “동호회를 할 거면 대중적인 걸 하는 편이 낫지 않아?”라고 거들었다. 직감했다. 이 사람들 소셜댄스에 대해, 탱고에 대해 뭔가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     


그 뒤로는 탱고 얘기 안 하려고 조심했지만, 조심했는데도 자꾸 튀어나왔다. 발가락이 아파 '쪼리'를 안 신는다는 사람에게 “나도 탱고 추기 전에는 제대로 걷지 않아서 발가락이 아팠는데, 바르게 걷는 법을 알고 체득하니 발에 아치가 생겼고 그 뒤부터는 쪼리 신어도 아프지 않다”고 말했고, 거북목이 고민이라는 사람에게 “나도 거북목 심했는데 탱고 추면서 등근육이 생겨 개선됐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때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 속에서 생각했다. 혹시 나 지금 머글 앞에서 ‘최애’ 영업하는 ‘덕후’ 짓 한 건가? 그들이 만일 춤추는 사람이 유별나다는 편견을 가졌다면, 내가 그걸 더 확고히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관심 없는 주제의 얘기 실컷 들은 뒤였다. 이상형, 연애를 위한 노력, 산후조리, 육아, 골프 등등. 그렇게 오래 떠들어놓고 나는 탱고 얘기 좀 하면 안 되냐! 나는 관심 없는 얘기에도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 노력하며 호응 했는데, 왜 니들은 무관심과 냉대를 있는 대로 티 내냐? 이거 뭔가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  탱고는 음란한 춤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탱고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은 ‘머글’만이 아니다. 나와 결이 맞는 오랜 친구 A도 탱고를 보며 거북한 감정이 들었다고 고백한 적 있다. A는 미국 유학을 오래 한 개인주의자이고 개방성을 지닌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어느 주말 저녁, A와 다른 친구, 그리고 나 셋이서 술을 먹다가 다른 친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A와 나도 이대로 헤어질지 고민하던 차, A를 꼬드겨보기로 했다.


“지금 밀롱가 갈 건데 같이 가볼래? 거기서 파는 맥주 싸고 맛있어. 네 입장료 대신 내줄게”


A가 평소 내 취미에 대해 호기심을 표현한 적 있기에 찔러본 것이었다. 물론 탱고를 영업하고 싶다는 흑심도 있었다.   

  

그렇게 함께 간 밀롱가에서 A와 술을 마시다, 가끔 춤 신청이 오면 A에게 양해를 구하고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추었다. 한동안 공간을 탐색하고, 사람들이 추는 춤을 구경하던 A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좀 민망하고 거북해.”


몸이 밀착된 채 춤추는 모습이 성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국물 먹고 예술계에 종사하는 개방적인 A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다니! 새삼 충격 받았다.     


춤 추고 있는 나 ⓒ Sunghwan WIE


하지만 처음에는 나도 충격 받았다는 사실이 곧 떠올랐다. 서로를 안고, 가슴을 마주 댄 채 탱고를 추는 사람들을 보며 동공이 흔들렸었지. 거부감이 사라진 것은 직접 경험해보고, 그 경험이 쌓인 뒤였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달랐다. 막상 경험하면 ‘음란’하다는 느낌 보다 따뜻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상대가 어떤 동작을 제안하는지 집중하고 내 몸의 움직임에 공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차, 음란한 무언가를 할 여력이 없었다. 혹시 드물게 음흉한 목적으로 탱고를 배우고 추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 사람과 함께 춤추는 경험은 불쾌할 것이 분명함으로 결국 많은 사람들이 상대해주지 않아 도태되고 퇴출될 것이다…는 설명을 A에게 해주었다. A는 “설명을 듣고 나니 좀 다르게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 개방적인 친구로구먼!      


보고 느낀 것을 상대에게 밝히고, 상대가 다른 의견을 전하면 귀 기울여 듣고 생각을 수정하는 A의 모습에서 열린 마음과 상대에 대한 존중을 느꼈다. 나도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했다.


- 문제는 편견을 고수하는 것

왜 그 ‘직장인 모임’에서는 열린 마음과 다름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없었을까? 어쩌면 직장인이 처한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애주기별로 해야 할 과업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일 때 초조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더 쉽게 노출되는 환경이라는 것. 초조한 사람들은 다른 얘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 얘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 사람까지 자신의 화두에 동참하도록 자극하고 끌어당기기도 한다. 대인교류가 많은 직장인들은 그러한 압박에 상대적으로 빈번히 노출되며 감정의 전염이 쉬울 것이다. 이렇게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주제(가끔씩 여기에 재테크가 추가된다)는 주변의 관심사를 빨아들이는 소용돌이가 된다.



빨려들지 않는 사람들은 유별나다 규정당하거나 배척당하기도 한다.  나는 종종 그렇게 밀려난다고 느낀다. 그게 짜증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여지는 다른 장소와 순간이 있음을 상기하면 이내 괜찮아진다. 이를 테면 탱고 추는 순간들. 춤으로의 대화가 매끄러웠던 상대와의 즐거웠던 시간들.


탱고로 대화할 때뿐만 아니라 탱고에 대해 대화할 때도 즐겁다. 이 때문인지 탱고를 통해 마음이 잘 맞는 동네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관심사에 대해서도 잘 통하는 것을 확인했다. 탱고인들의 관심사는 대개 개인으로서의 즐거움, 건강한 몸, 춤을 잘 추는 것과 좋은 춤 상대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관심사가 통하다 보니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같이 하며 즐거움을 나누게 된다. 영화를 본다든지, 특별한 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웃는다든지. 그러다가 명절 연휴 내내 만났네? 생각해보니 이들과는 연애·결혼·출산에 대한 얘기도 거의 안 하는 것 같네?


이들을 만나게 해줬고,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 주며,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탱고가 좋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 때문에 이런 이로움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좀 아쉽다.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살짝 맛이라도 보면 좋겠는데, 선입견 때문에 시도 조차 않는다니….


원치 않는 소용돌이에 빨려들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를 지탱할 자기만의 지지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경험 상 그것은 이때까지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할 때 획득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무언가에 편견 갖고 행동을 미룬 사람들이여,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안 하던 짓을 해보자! 내 입장에서는 그게 탱고면 더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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