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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Sep 07. 2022

탱고에 대한 지독한 편견

막장을 위해 이용되는 탱고에 반대한다

- 관심 받으면 기쁘다

‘추앙’이라는 단어를 2022년 유행어에 등재시킨 화제의 드라마 <나의해방일지>. 여기에 탱고가 언급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무려 1회 시작부터 언급됐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내용도 별로 긍정적이진 않았지만…. 


“나 탱고 동호회 갔다가 기겁한 게 가까이서 숨소리 다 들리고, 숨소리는 왜 이렇게 크니? 부장님 어깨에 손을 얹는데 손이 후끈후끈 축축해. 엘베에 부장님 타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뒤로 물러나게 되는 거 있지?”
(...)
“너희 동호회는 연령대 어떻게 되니?”
“거의 40대야” 


회사에서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이 동호회 활동에 대해 수다 떠는 중 스치듯 언급된 이 내용에 탱고인들은 흥분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기쁨은 큰데, 심지어 그걸 대중매체에서?  반갑고,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하고, 내심 기대도 생긴다. 이 기회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될 수도 있다는 기대 말이다.  


실제로 2011년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를 주요 소재로 다뤘을 때 한국사회에 탱고 붐이 일었다고 한다. 남녀노소 탱고를 배우겠다는 사람들로 전국의 탱고 아카데미가 복작대고 들썩였으며, 새로 진입하는 청춘들이 탱고 씬에 활력을 가지고 왔다고. 


하지만 지금은…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 같다…. 그 때 진입한 사람들이 지금도 이 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탱고 동호회의 연령대가 높다는 <나의해방일지>의 대사를 두고 동호회 단체 채팅방에서는 “묘하게 고증 잘됐음ㅋㅋㅋㅋ”“뼈 맞았네ㅠㅠ” 같이 '웃픈' 반응이 나왔다. '탱고 고령화'는 탱고인들도 감지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탱고가 중요한 소재로 다뤄지는 드라마가 새로 등장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 탱고댄서이며, 작품 제작 과정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 탱고댄서들이 참여한 드라마라고 했다. 6월 2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이브> 이야기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본 <이브>는 실망뿐이었고, 2화까지 보고 때려치웠다. 그 뒤 화제가 된 유튜브 영상 몇 개만 접했다.


- 그래도 이런 관심은 싫다

“당신 설마 여기서?”

"탱고의 뜨거운 에너지 때문에 도저히 못 참겠어."     


1화에서 주인공 라엘(서예지 분)이 여성공연자 대기실에서 남편과 정사를 벌이기 전 오가는 대사다. 당혹스러워하는 쪽이 남편, 못 참는 쪽이 여자 주인공 라엘이다. 


탱고 추는 사람으로서 주인공의 대사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내 경우 탱고를 ‘뜨겁게’ 추면 그 자체로 만족스럽던데. 오히려 피곤해져서 집에 가서 쉬고 싶고 빨리 잠들고 싶던데….      


어떤 맥락에서 저 장면이 나왔는지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해본다. 가족사의 아픔이 있는 라엘은 긴 시간 공들여 복수를 설계한다. 복수의 대상 중 하나인 ‘회장님’이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근무 시절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사하고 탱고와 반도네온을 배운다. 이에 더해 자신의 아이를 회장님의 아이와 같은 영재예술 유치원에 입학시킨다. 입학식 겸 자선모금 행사에서 탱고를 추며 ‘그윽하게’ 회장님을 바라보고, 일부러 악세사리를 회장님 앞에 떨어뜨려 따라오게 만들고(<헨젤과 그레텔>인 줄),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기실에서 남편과 정사를 벌이며(앞서 설명한 장면이다), 그가 잡고 있는 술잔 위로 손을 포개는 등의 유혹을 이어간다.  


전반적으로 ‘막장’의 냄새가 많이 나는 드라마다. 그리고 탱고는 막장의 향취를 더 짙게 만드는 재료로 활용된다. 치명적이고 고혹적이며 성적인, 일상과 멀리 있는 무언가. 이것은 탱고에 대해 널리 퍼진 인식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탱고가 '유혹과 매혹의 춤'이라는 것이다. 아니, 뭐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게 탱고의 전부는 아닌데…. 


이런 인식은 탱고댄서를 그리는 데에도 반영된다. 주인공인 탱고댄서 라엘을 성적으로 적극적이고 매혹적이며, 어딘가 신비로운 여성으로 그리는 식이다. 문제는 이것이 탱고와 탱고댄서를 타자화 하는 시선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자화되거나 신비화된 방식으로 그려진 ‘너무나도’ 치명적인 탱고. 심지어 춤과 섹스를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연출까지(춤의 흥분과 기쁨은 섹스에 ‘비유’할 뿐이지 등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했다.


전문 탱고 댄서들이 참여한 만큼 멋진 탱고 씬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멋진 탱고’는 오직 독기 품은 주인공의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묘사된다. 이런 식의 재현이 반복될수록 탱고에 대한 대중의 오해는 쌓이고, 탱고에 진입할 관문을 좁히고 높이는 것 아닐까? 나는 걱정한다. <이브>를 보고 탱고에 대한 그릇된 기대를 갖은 회장님, 부장님들만 잔뜩 탱고 아카데미에 오시는 것 아닐지…. 


심지어 멋지지도 않은 장면까지 나왔다.


앞선 동영상에 대한 어느 네티즌의 반응


- 존중 섞인 관심을 부탁해요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의 탱고는 달랐다. 주인공은 담낭암 판정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젊은 여성 연재(김선아 분)다. 암 판정을 받은 점이 '다르게' 보일지라도, 그의 일상이나 감정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암 판정 뒤 남은 인생을 즐기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동시에 마음 무너지는 일도 겪는다. 그때 탱고가 그를 위로한다. 이 때 등장한 오키나와의 석양 속 탱고 추는 장면에는 두고두고 잔상으로 남을 따뜻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 뒤 연재는 ‘죽기 전에 해야할 일 20가지’를 작성하고 ‘탱고 배우기’를 3번에 올린다. 연재가 찾은 탱고 아카데미를 여행지에서 만난 남자 지욱(이동욱 분)과 소꿉친구이자 주치의 은석(엄기준 분)도 찾아오고, 그들의 감정이 탱고 수업과 연습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여인의 향기>의 간질간질하고 애틋한 탱고 씬들은 바로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이밖에도 은석을 축으로 닉네임을 쓰고, 뒤풀이를 하고, 발표회를 여는 한국의 탱고 동호회 문화가 친근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좋았다. 뛰어난 의사지만 싸가지는 없다고 소문난 은석이 탱고를 추며 변하고, 탱고 공연까지 하게 되는 과정의 풋풋함과 성취감은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춤 좀 춰 본 사람이라면 일 하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혼자 스텝 밟는 연습을 하는 은석에 크게 공감하며 웃을 것이다.  


<여인의 향기>에서의 탱고가 유별난 사람들의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조금만 발 뻗으면 일상에서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작품 내내 탱고문화와 탱고추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믿는다. 이처럼 존중을 갖추고, 한국의 탱고 문화를 친근하게 그려낸 드라마가 한국사회에 또 다시 등장하고 흥행한다면? 탱고 붐은 온다, 또 한 번!


한 줄 요약: 탱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브>를 보느니 <여인의 향기>를 보시오. SBS 홈페이지에서 무료임(그런데 개인적으로 중반까지만 좋았고 후반부는 별로였음). https://programs.sbs.co.kr/drama/scent/vods/5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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