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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Sep 07. 2022

나는 춤을 추면서 과학을 배웠다

코로나 시대 탱고 애호가의 과학적 생존기

- 인과관계부터 따져봐야  

코로나-19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리두기’와 개인 위생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 당국이 펼친 거리두기 정책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내가 문제를 느낀 것은 자세한 내용은 들여다보지 않고 무턱대고 비난한 사람들의 행태다. 춤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의 외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고가는 험한 말을 보며 껄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일례로 2020년 중반, 소위 2.5단계라고 불리던 ‘강화된 거리두기 2단계’ 시행 중 있었던 일이다. 공공도서관 운영이 중단되고 프렌차이즈 커피숍과 스터디카페의 영업이 제한되자 개인카페·만화카페에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族)’이 모인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에는 줄줄이 비난 댓글이 달려있었다. 외출 그 자체에 대한 비난부터, 카페에서 공부하는 의도를 함부로 추측하며 비하하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개인마다 처해있는 상황은 다를 것이다. 집에 개인공간이 없다면? 자신의 방이 있다 해도 날마다 부모가 싸운다든지, 이웃의 개가 우렁차게 짖는다든지, 집중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해가 들지 않고 누수가 심하며 곰팡이가 슬어 건강을 악화시키는 자취집이라면? 공부하라고 만들어진 쾌적한 공공 공간이 닫힌 상황에서, 정책의 빈틈을 찾아 무언가를 해야 했던 절박함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심지어 기사의 사진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비말을 공유하는 풍경도 아니었다. 마스크 쓰고 홀로 공부하고 있는 카페 고객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즉, 방역 수칙에 크게 거스름이 없는 모양새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이 저들을 비난할 필요도, 권리도 없지 않은가? 왜 그 사진을 보고 버튼이 눌려 비난하며 심지어 피사체를 저주하는 댓글이 수백 개 달린단 말인가. 그 모습을 보기 불편했고, 춤추는 사람들도 언젠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그러나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춤을 참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대중의 비난이 두렵다는 이유로 춤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 보다 춤추는 일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방역에 협조하며 춤추는 일상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추면 가능할까? 이것을 알기 위해 수칙이 만들어진 과학적 근거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 과학적 사고와 방역수칙

가장 먼저 한 일은 코로나19의 주된 전파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질병관리청이 조사·정리· 발표한 코로나19의 전파 경로는 다음과 같다(https://ncv.kdca.go.kr/menu.es?mid=a30102000000).                   


● 감염된 사람이 기침, 재채기, 말하기, 노래 등을 할 때 호흡기 침방울(비말)을 통해 바이러스 배출
● 감염된 사람의 호흡기 침방울이 다음의 경로를 통해 전파
- 호흡을 통해 감염된 사람의 호흡기 침방울을 직접 들이마심(흡입)
- 감염된 사람의 호흡기 침방울이 눈, 코, 입의 점막 표면에 튀어 묻음(접촉)
- 환경 표면에 떨어진 감염된 사람의 호흡기 침방울을 손으로 만진 후 눈, 코, 입을 만짐(표면접촉)
● 공기 전파가 가능한 상황
- 감염된 사람에게 호흡기 미세 침방울(에어로졸)을 발생시키는 시술을 하는 경우
-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호흡기 침방울을 만드는 환경에 있는 경우


그리고 방역 수칙의 골자는 사람들 사이에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손씻기, 밀폐된 공간의 지속적 환기이다. ‘비말 전파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된다’는 인과관계를 바탕에 두고 만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직접적으로 입을 막는 마스크 착용이 중요해보였다. 코로나19 확진자와 1시간 동안 차를 같이 탔지만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한 덕에 동승객 3명 모두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일, 물류센터 확진자가 이틀 연달아 일하면서도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은 덕에 전파자가 0명이었던 일, 입시학원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했지만 모두 마스크 착용을 잘해줘 470여명의 학생들과 강사가 무사했던 일 등의 사례는 마스크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마스크 착용 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85% 줄어든다는 국제 학술지 랜싯의 발표(2020년)도 있었다. 


코로나19 백신이 한국에 도입된 다음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 또한 방역 당국이 강조하는 방역수칙이 되었다. 신뢰도 높은 국제 학술지를 통해 여러 차례 발표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경우 미접종에 비해 감염 재생산지수와 중증화율이 낮아진다는 데이터가 근거였다.


나는 이런 과학적 근거를 검토한 결과, 질병 전파 원인인 비말을 차단하고 청결하게 생활하며 가능한 빨리 백신 접종을 완료한다면 팬데믹 속에서도 취미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과학적 사고와 탱고

다행히 한국의 탱고 커뮤니티는 방역에 몹시 협조적이었다. 그때그때 방역당국의 발표를 충실히 따랐고, 따르지 않는 커뮤니티 내부 사람들을 자체적으로 감시하고 압박하며 자정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방역 당국이 발표한 실내 인원 규정에 따라 수업은 자주 중단되거나 연기됐고, 바뀐 방역 방침에 의해 소규모 수업이나 연습이 열렸을 때 개개인은 항시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틈틈이 손을 소독했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활동 보다 벗고 하는 활동이 더 위험하다는 인식으로, 뒤풀이 등 함께 먹고 마시는 활동은 지양하여 대부분 춤만 추고 헤어졌다. 마음 편히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백신 접종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덕일까? (2022년 2월 19일,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여 확산경로를 추적하는 조사를 중지하기까지 공식 보도된 자료를 기반으로 둘 때) 적어도 한국의 탱고 커뮤니티 내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 일은 없다. 상체를 고정하고 하체만 바쁘게 움직이는 탱고의 특성도 비말을 ‘흩뿌리는’ 일을 방지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이런 자세한 내용과 노력은 살피지 않은 채, 모든 춤을 싸잡아 비난하고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일까?


과학적 태도란 어떤 문제를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고 경험적 탐구를 한 뒤 증거 자료를 찾고 모아 점검하여 검증된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는 합리성을 말한다. 비이공계 출신이고, 본래 과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는 팬데믹 중 춤을 추며 과학적 태도를 조금이나마 갖추게 됐다. 방역수칙과 개인의 권리,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법을 고민하다 과학적 사고법을 학습한 것이다. 


이것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큰 재난 속에서 ‘탱고 라이프’를 지속할 수 있는 뒷배가 되어줬다. 막연한 공포가 아닌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의연함으로 일상과 건강을 지키며 살 수 있었고, 공동체를 위한 행위와 개인의 행복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과학적 사고는 탱고 동작이 잘 안 될 때도 도움이 됐다. 뛰어난 사람들은 한 번만 봐도 쉽게 동작을 재현하던데, 말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그냥 되던데요?”라고 어깨를 으쓱하던데(얄밉게도!), 운동능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경우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나는 탱고 동작을 세세히 분석하며 힘이 가해지는 지점과 움직임의 방향 등을 이해하고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난도 높은 탱고 동작을 안정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힘이 들어가야할 근육의 위치와 명칭을 인지하는 일, 내 몸 구석구석을 이해하고 느끼는 일도 선행돼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세상은 이미 이런 것을 스포츠 과학이라 부르고 있었다! 


‘과학 탱고’를 한 덕이었을까? 2022년 한 탱고 대회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파트너와 숱한 개싸움을 했지만… 이 썰은 나중에 풀 수 있으리라.


트로피를 자랑하는 나



점점 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며 느끼는 성취감,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저녁까지 쉽게 피곤해지지 않는 체력과 단단해진 몸의 근육들. 탱고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 더불어 과학적 사고법까지 익혀가는 내가 좋다. 해보니 좋아서, 다른 이들도 스스로가 더 좋아질 근거를 찾기를 바라게 된다. 자신의 일상이 소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 또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쳤거나 중범죄자가 아닌 이상) 쉽게 비난하지 않으리라는 게 내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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