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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Aug 23. 2022

겨우 찾은 운동 팬데믹이 방해하네

- 탱고라는 정착지

몇 년 간 여러 춤을 전전했다. 그러다 마침내, ‘아르헨티나 탱고(이하 ‘탱고’로 표기)’를 만났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주3탱(일주일의 3일은 탱고)’은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니, 가장 지긋이 즐기고 있는 운동이자 취미인 셈이다.


가장 열정적일 때는 ‘주5탱’도 했다. 그만큼 탱고가 재밌었고, 잘 추고 싶었다. 탱고는 정해진 안무를 추기보다 그때그때 파트너와 교감하며 움직이는 즉흥성을 중시하는데, 그게 나랑 잘 맞았다. 예측 불가능성이 주는 짜릿함(혹은 불안감), 같이 추는 이와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의 만족감이 가슴을 뛰게 했다. 음악에 빠져 한껏 정서를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무언가 해소되는 기분마저 줬다.


탱고는 운동으로써도 좋은 취미였다. 탱고에는 걷고 회전하는 동작이 많은데, 동작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필요한 근육을 긴장하고 이완하며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며 스텝을 밟는 동안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이 절로 됐다. 점프 동작은 거의 하지 않기에 바른 자세만 유지한다면 무릎 관절에 큰 무리가 없다는 점도 내게는 장점이었다.


‘범홍대지역’ 주민인 덕에 탱고를 즐기기 더욱 유리했다. “말은 제주로, 탱고인들은 홍대로”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만들었다. 그 만큼 홍대지역에 탱고를 배우고 출 수 있는 곳이 많다는 뜻이다. 꾸준함을 위해 내게 이건 정말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홍대 아닌 강남에도, 서울 아닌 비수도권에도, 심지어 다른 나라 곳곳에도, 탱고를 배우고 출 수 있는 곳은 수두룩하다. 탱고를 출 줄 알면 세계를 더 풍성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다.


- 팬데믹 속 탱고 추기(feat.마스크)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줌바 수업 참여자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태원 클럽 발 대규모 집단 감염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대중의 반응은 살벌했다. 춤을 추던 사람들은 이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다.


사실 나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난 뒤 탱고를 추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때문에 원래 추던 춤도 그만둘 시기에 오히려 시작하다니.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 경우,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덕에 오히려 소셜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기 전까지, 두 사람이 마주하며 춤추는 건 내게 민망하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소셜댄스에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었다.


마스크 덕분에 여포가 됐다. 그저 얇은 천 조각 하나만 썼을 뿐이지만, 마치 얼굴에 철판이라도 덮은 기분으로 예전에 하지 못한 일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적당히 가려진 남들 얼굴 또한 오히려 좋았다. ‘마기꾼(마스크 쓴 사기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듯, 우리 뇌는 결핍된 시각정보를 노출된 부분과 적당히 조화되는 아름다운 버전으로 상상하여 메운다. 마스크는 어지간한 사람들을 더 예쁘고 잘생겨 보이게 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으므로, 결과적으로 마스크가 더욱 기분 좋은 취미 환경을 선사한 것이다(거북하고 민망할 것 같아 소셜댄스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여, 지금이 기회다!).



- 탱고와 정신건강

탱고는 팬데믹 중 정신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했다. 그래도 나는 제법 무난히 넘길 수 있었는데, 탱고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정신건강 자가검진 문항에는 많은 경우 ‘최근 충분한 신체적 활동을 했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보냈는가’와 같은 내용이 포함돼있다. 무엇이 정신건강에 도움 되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나는 탱고 덕에 꾸준히 새로운 동작을 익히고 충분한 신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로써 몸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도 증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탱고가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는 춤꾼이자 과학자인 장동선과 줄리아 F. 크리스텐슨이 공동저술한 책 <뇌는 춤추고 싶다(아르테, 2018)>에도 잘 나와 있다. 이 책은 춤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콜롬비아의 심리학자 신시아 키로가 무르시아(Cynthia Quiroga Murcia)가 박사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22쌍의 부부를 상대로 탱고를 추기 전후의 타액을 조사한 연구가 특히 인상 깊었다. 타액을 조사한 결과, 춤을 출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줄어들었고 양쪽 파트너에게서 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탱고가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흥분감과 즐거운 기분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탱고의 긍정적인 효과가 음악 때문인지, 몸의 움직임 때문인지, 아니면 파트너와의 접촉 때문인지 알아내기 위해 무르시아는 인자들을 분리해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감소는 무엇보다 음악에서 기인한 것인 반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는 파트너와 접촉하고 함께 몸을 움직였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탱고를 춘다는 것은 세 인자가 모두 합쳐진다는 뜻이고, 그 결과 매우 강한 호르몬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음악과 몸짓과 파트너가 모두 어우러지는 탱고는 강한 호르몬 반응을 일으키는 춤 중 하나다. 이는 우울한 기분을 막아 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탱고가 우울한 기분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는 많다. 책에서는 탱고 춤추기가 명상과 비교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보였는지 조사한 2012년의 연구가 소개됐다. 연구에 따르면 탱고를 춘 대상자들은 스트레스 수준이 현저하게 내려가고 삶의 만족감이 명확히 높아졌다.


연구 결과를 보며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기분이 안 좋을 때 탱고를 추고 나서 기분이 밝아지고 즐거워진 경험이 왕왕 있다. (간혹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사람과 춤을 추고 나면 불쾌감과 공허를 느끼며 오히려 기분이 더 더렵혀지기도 하지만) 나를 존중하고 배려한다고 느끼는 상대, ‘말이 통한다’는 느낌이 떠오를 정도로 춤으로의 대화가 매끄러웠던 상대와의 시간 뒤에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따뜻한 위로와 일종의 포만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 충만함은 삶의 실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탱고를 내 일상의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팬데믹 속 탱고 라이프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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