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는 ‘탱고음악’에 맞춰 추는 소셜댄스이다. 소셜댄스는 ‘사교춤'으로 번안되어 불리기도 하는데, 사전을 찾아보면 ‘사교나 오락을 목적으로 무도회에서 남녀 한 쌍이 추는 춤’으로 정의되어있다.
소셜댄스 문화는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에서 소셜댄스가 대중화된 데에는 왈츠(Waltz)의 역할이 컸다. 왈츠는 오스트리아의 민속춤곡이었으나, 19세기 들어 빈의 귀족 사교계로 진출하며 크게 유행해 유럽 전역 각계각층에 전파됐다. 이때의 열풍은 지금도 종종 연주되는 수많은 왈츠 명곡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문화를 그린 <마담 보바리>(1949)의 왈츠 씬
음악장르로서의 탱고
그리고 19세기 말, 쿠바로부터 불어온 강풍이 유럽에 도착한다. 아바네라(Habanera)의 바람이다. 아프리카에서 미 대륙으로 노예들을 실어 오는 항로 중간에 있던 쿠바의 도시 아바나는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2/4박자의 춤곡 아바네라가 탄생했고, 아바네라는 19세기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를 휩쓸었다. 1875년 완성된 비제의 가극 <카르멘> 역시 아바네라의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 Royal Opera House의 ‘Carmen’ 중
대양을 건너 유럽까지 당도해 문화적 융합을 이룬 아바레나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남아메리카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훨씬 쉬웠으리라. 아바네라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해지고, 여기에 아프리카계 민속 음악 칸돔베와 아르헨티나 목동의 노래 가우초의 색채가 가미돼 '밀롱가(Milonga)'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이 밀롱가가 변화하여 탄생한 게 탱고라는 음악장르이다.
▲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밀롱가, ‘La Milonga De Buenos Aires’
초기의 탱고는 사창가나 부둣가에서 탱고음악에 맞춰 빈민들이 추는 춤으로 인식됐다. 그러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부유층에게 전파되고, 유럽 소셜댄스 문화와 융합된 뒤 본국인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어 아르헨티나의 상류층을 매료시키며 위상이 달라졌다. 현재는 국가 차원에서 탱고 문화를 보존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탱고선수권대회 등이 그것이다.
탱고의 성 역할 구분법
아르헨티나 탱고*1는 21세기 아시아인들까지 매료시켰다. 특히 서울은 아시아의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탱고를 출 수 있는 곳이 많고, 사람들의 열정도 뜨겁다. 나 역시 아르헨티나 탱고에 대해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가끔 반항심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탱고 자체에 대해서라기보다 소셜댄스에 대한 것일 수 있겠다. 나는 21세기에는 ‘사교나 오락을 목적으로 무도회에서 남녀 한 쌍이 추는 춤’이라는 소셜댄스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별에 상관없이 두 사람이 추면 되지, 꼭 ‘남녀 한 쌍’이 출 게 뭔가?
실제로 아르헨티나에는 ‘퀴어 밀롱가’(여기서 밀롱가는 ‘탱고를 추는 곳’을 뜻한다. 음악 장르 중 하나를 지칭하는 ‘밀롱가’와 발음과 철자가 같다)가 있고, 유튜브에 ‘퀴어 탱고’를 검색해보면 성별 이분법에 국한되지 않은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보편적인 탱고 교육은 성별 이분법을 따르는 환경 속에서 이뤄지고, 대부분의 아카데미에서도 탱고를 남녀 한 쌍이 추는 춤으로 전제하며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탱고를 교육받는 환경에서 “남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 “여자는 저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말들이 쉽게 내뱉어지는 것이다.
꼭 남자가 리드해야 돼?
탱고에는 일종의 팀워크가 필요하다. 두 명이 팀을 이루고, 각각 리드와 팔로우를 맡는다. 이때 보편적으로 남자가 동작을 리드하고, 여자가 이를 따르는 팔로워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팔로워에게는 동작의 자유가 제한돼 있다. 팔로우의 경우 이 음악에는 이런 동작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도, 그 동작이 리더가 던진 선택지 내에 속하지 않으면 표현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남자는 리더 역할을, 여자는 팔로워 역할을 하는 게 왜 보편적인 일이 됐을까? 이런 나의 문제의식을 수업 시간에 만난 한 남성과 공유했다. 그랬더니 그가 “누구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알아요? 탱고 시작할 때 나는 오히려 ‘땅게라(tanguera, 탱고 추는 여성)’ 하고 싶었어!”라며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약간 당황했다... 구조 이야기를 해보자는 건데 그렇게 방어적으로 나올 필요 있나?
이것은 가부장제의 잔재로 힘들어하는 남성이 여성을 얄미워하는 모습과 닮아 보였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역차별로 남자가 더 힘든데, 이기적인 여자들이 페미니즘이니 뭐니 피곤하게 한다’며 여자들의 외침을 억압하는 행태 말이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이 개개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며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즉, 남성이 가지고 있는 힘든 짐을 성찰하며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페미니즘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터놓고 대화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탱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발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탱고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내가 느낀 문제의식을 억누르기에는, 탱고의 탄생 자체가 문화 융합의 결과였고 그 또한 다른 문화와 접촉하며 계속 변모했다는 역사가 버젓이 존재한다.
시대와 상황에 맞춰 함께 변해왔다는 건, 앞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 앙칼졌던 남성이 초보 시절 팔로워의 역할을 원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리드에 부담을 느꼈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면 함께 추는 사람과 조율하여 역할에 대한 부담감을 나눌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탱고와 탱고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이 공간을 꾸려보기로 한 것이다.
*1 아르헨티나 탱고
많은 사람들이 ‘탱고’라는 말을 듣고 ‘플라멩코’ ‘파소 도블레’ ‘콘티넨털 탱고’ ‘댄스 스포츠’ 등과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을 보았다. 당연히 이들 모두 각각 다른 춤이며, ‘아르헨티나 탱고’도 이와 다름을 밝혀둔다. 정확한 아르헨티나 탱고 이미지를 알기 위해 유튜브에 ‘아르헨티나 탱고’를 한 번쯤 검색해보기를 권하며, 그보다 더 권하는 일은 영화 <탱고 레슨>(1997) 관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