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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Oct 11. 2022

대회 준비하다
심리상담 받은 썰 푼다

나와 파트너는 탱고대회를 준비하며 개같이 싸웠다. 이유가 무엇일지 대회를 준비했던 당시는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해서 생각한다. 생각 끝에 떠올린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 지향하는 연습 방식이 서로 달랐다는 것.


나는 연습 때마다 촬영한 뒤 그걸 보며 분석해 동작을 개선하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파트너는 그보다는 그때그때 말로 느낌을 공유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이었다. 나는 “둘 다 탱고 베테랑이 아니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게 확신을 가지고 개선책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낌 공유는 오히려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고 경계했고, 그는 “우리는 한 배를 탄 아군이고, 서로 잘되자고 하는 말이니 내 말 좀 좋게 받아들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좋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니꼽고 재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지적 안 하는데 너는 왜 해?’ 하는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바에는 상대의 기분만 상하게 하는 지적을 굳이 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그런 나의 태도를 답답해하며 지적을 이어갔다.


내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거기에는 골반 비대칭과 발의 아치 무너짐, 전체적인 근력 부족 등 짧은 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요인이 있는데, 당장 제대로 해내라며 채찍질해대니 서럽기도 했다. ‘초심자용 대회인데 잘 안 되는 동작은 빼고 잘되는 동작을 보기 좋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인 전략 아닌가?’ 하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웠고, 계속 난도 높은 동작을 해내길 요구하는 그가 야속했다. 심지어 그가 탱고 강사를 언급하며 너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강사를 초심자에게 갖다 대는 건 선 넘은 짓 아닌가? 게다가 그가 그런 말을 할 때 말투가 친절하지 않고 표정이 어둡다고 느껴져 더욱 상처가 됐다.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이 일정 정도 쌓이고 나니 머릿속 퓨즈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며 이성을 잃었다.     


결국 나는 욕쟁이로 변했다. 춤 때문에 잡은 손을 힘껏 뿌리치며 그에게 말했다. 


“×발, 기분 × 같게 말하네. 본인은 ×나 잘 추는 줄 아나봐?” 


어느 날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양손으로 ‘벅큐’를 날리기도, 어떤 날은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다른 사람들도 있는 자리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그렇게 건넌 다리를 태워버리듯이 감정을 분출한 뒤, 막상 파트너십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아 맞다, 얘 아니면 같이 할 애 없지!’ 하는 생각이 들며 후회했다. 일단 저지른 뒤 꼬리 내리고 사과하며 어르고 달랜 것이다(하지만 그에게 이 글을 보여줬더니 “솔직히 내가 어르고 달랬다, 이 자식아”라고 말했다. 진실은 어디에?). 그런 일이 연습 기간 동안 수차례 반복됐다.      


이렇게...


갈등을 목격한 몇몇 사람들이 우리 파트너십에 대해 떠들기를 즐긴다는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남에게 관심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입방아에 올린다는 사실을 신경 쓰면서도, 일단 감정이 솟구치면 뵈는 게 없어지는 스스로가 싫어서 더 스트레스 받았다. 나는 왜 뒷일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감정을 폭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후회할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면서도 당시에는 왜 이성을 차릴 수 없을까? 혹시 나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상담 받을 결심을 하게 된 배경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일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무료 심리검사 및 심리상담을 단기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린 결심이기도 하다. 문제를 겪다 보니 기억 속 사실이 선명히 떠오른 것이다.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심리상담을 권합니다

그리하여 올해 심리검사를 하고 12회차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심리상담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도움이 됐다. 심리검사 결과를 인식하며 나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상담 과정에서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내가 모성에 대한 경험이 결여됐다는 사실은 상담 전에도 알았지만, 이에 대해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친에게 실망감과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잦았지만, 그때마다 반사적으로 ‘그래도 내 부친 정도면 최악은 아니지’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나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직면해야 회복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상담 덕이다.     


앎은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내게 결여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인정욕구로 나타났다는 것, 대회준비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연관됐다는 것을 이해하게 도왔다. 그러니까 나는 대회 내용이 영상으로 촬영되어 남는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낀 것이었다. 기록을 보고 사람들이 평가하고 험담할까봐 두렵고, 그렇기에 더욱 날카롭고 예민해졌는데, 그 감정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쌓아놓다 한번에 분노로 터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우 분노는 감정이라기보다는 방어기제였다.     


이제 내게 주어진 과제는 감정을 ‘분노’로 납작하게 이해하지 않고 기저의 감정을 살필 것, 쌓이기 전에 미리 감정을 알아차려 알맞은 어휘를 붙여줄 것, 분노를 ‘행동화’하는 것이 미성숙한 방어기제일 수 있음을 인지하며 더욱 성숙한 방어기제를 훈련할 것이었다.      


과제를 인식한다고 당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대회 전 파트너십이 박살나는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적어도 대회 시작 일주일 전부터는 내가 바랐던 연습방식을 받아들여 달라고 펑펑 울며 호소했고 드디어 그가 받아들였다. 영상을 촬영하고 틈틈이 모니터링하며 연습을 진행하는 방식 말이다. 대회에서 내가 어떤 모습일지 미리 눈에 익히며 대비하는 일은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하지 말거나 자제해야 할 부분을 시각으로 인지하여 개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매일 연습했다. 무릎과 발목이 붓고 통증이 생겼다. 그러던 중 대회는 성큼 찾아왔다. 몸 상태는 최악이고 심장은 쿵쿵 뛰었지만, 어찌저찌하여 무사히 예선을 치러 결선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결과 발표의 순간.      


- ‘추억 보정은 위험해

나와 파트너는 가장 먼저 시상대에 올랐다. 참가한 부문의 결과가 가장 먼저 발표됐고, 우리가 3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꽃다발과 상패를 손에 쥐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니 들떴다. 들뜬 기분은 대회가 끝나고도 며칠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공식적인 대회 기록물이 공유될 때까지도. 그래서 그랬을까? 찍힌 사진과 영상을 보니 파트너와 나, 썩 잘 어울려 보이는 게 아닌가? 이번 대회 지나서도 파트너십을 더 유지해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 정도로.      


다행히 재빨리 정신 차렸다. 결과가 너무 만족스러웠나 보다, 괴로운 기억이 잊힐 만큼. 파트너와 나는 합의했다. 파트너십 이어가다 서로 ‘평생의 원수’가 되느니 좋은 동네친구 사이나마 지키도록 하자. 먼 훗날 둘 다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춘 뒤 만나면 덜 싸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남겨둔 채로.     


솔직히 나한테는 대회 참가가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준비 과정에서 많은 괴로움이 있었고, 대회 당일에는 심히 떨렸으며, 대회 전후 계속 몸 여기저기 아프고 쑤셨다. 하지만 해볼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적어도 대회 때문에 마련한 드레스의 제작비와 대회 참가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는 됐다. 나를 더 잘 알게 됐고, 탱고를 더 잘 추고 싶다는 자극을 한껏 받았으며, 탱고 실력이 향상됐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도 남겼으니.    

 

대회에서 (전)파트너와 나 ⓒ Sunghwan WIE


그래도 당분간 탱고대회는 꼴도 보기 싫다. 나의 리듬에 맞춰 꾸준히 탱고를 추다 언젠가, 먼 훗날 다시 도전해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세계탱고대회 결승전을 노릴 것이다. 그 목표는 할머니가 된 뒤 달성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삶에 탱고를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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