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아마도…)
거슬러 올라가면 퇴사 뒤 너무 많이 놀았던 것이 문제의 시초였다고 Y는 분석한다. 1년 놀면서는 그저 좋았다. 1년이 넘으면서부터는 슬슬 이대로 안 된다는 조급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이제 더는 회사를 다닐 수 없는 몸이 돼버렸는걸? 직전 회사에서의 3년 5개월이 Y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때 Y의 영혼 어딘가에 깊은 상흔이 남은 것이 분명했다.
- 영혼 다친 퇴사자의 장래
고민하던 Y는 ‘사장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마침 Y에게는 20년을 벗 삼은 취미가 있지 않던가? 바로 춤이었다.
그리하여 Y는 주말에는 춤과 술이 흐르는 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다른 요일에는 타인에게 공간을 대관해주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 세간에서는 이를 ‘덕업일치’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홍대역 근처 50평 가까이 되는 크기의 댄스 바닥과 밤늦게 소음이 발생해도 되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리고 Y는 그곳이 월세 200만 원은 넘지 않기를 바랐다.
1년 동안 놀면서도 설렁설렁 모바일 부동산 사이트를 들여다보긴 했다. 무리한 조건을 꿈꿨던 것인지, 절실한 태도로 찾지 않았던 것인지 딱히 Y의 눈에 드는 매물이 없었다.
백수로 놀고먹은 지 일 년이 넘고 나서부터 Y는 좀 더 자주 부동산 사이트를 드나들었고, 눈빛에 총기가, 스크롤 하는 손가락에 절도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 덕일까? Y는 백수가 된 지 1년 n개월만에 가까스로 적당한 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일은 거의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Y의 마음 한편에 불안감은 있었다. 건물주가 말을 장황하고 두서없이 하며, 말을 할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이었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됐다. 가계약금을 넣고 Y가 마지막으로 공간을 둘러보던 그때.
“사실 장마 때 물이 좀 새는 데, 여기에 바스켓 가져다 놓으면 돼.”
태연하게 말하는 건물주를 보고 같이 있던 공인중개사도 화들짝 놀라며 실내 누수는 가계약금을 돌려줄 이슈임을 인정했고 끝내 계약은 엎질러졌다.
- 노련한 선수들, 순진한 사장님
Y의 마음은 좀 더 조급해졌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웬만한 조건이면 그냥 임대차계약을 맺을까? 이대로 계속 고여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런 조급함이 훗날 불리한 상황을 만든 것 같다고도, 이제와 Y는 생각한다.
Y는 임대차 거래 사이트 매물의 금액대를 좀 더 높여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자 1~2주 전에 나온 새로운 매물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보니 ‘때깔’부터 달랐다. 당장 공인중개사에게 연락하여 찾아갔다.
홍대역에서 더 가까운 상권에 위치했고, 건물이 신식으로 관리가 잘 됐다는 인상을 풍기며 공간의 구조도 잘 빠진 곳. 문제는 월세가 당초 염두에 뒀던 것보다 훨씬 비쌌고 권리금마저 걸려있었다는 사실.
공간은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걸리는 게 권리금이세요? 이럴 때일수록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편을 추천 드려요.
같이 공간을 본 공인중개사는 Y와 나이가 비슷했으며 웃는 인상에 조근조근 사근사근 말을 기분 거슬리는 구석 없이 했다. 하지만 거기 담긴 내용은, 지금 생각해 보면 조바심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운 좋고 조건 좋은 매물이 홍대에 별로 없다, 지금 건물이 임자를 만났다, 사실 지금 라이벌도 붙었다, 권리금을 협상하기 위해서는 빨리 계약을 진행하는 편이 좋다 등등. 지금 생각하니 완전 선수였다.
또 다른 난관도 등장했다. 건물주가 Y가 하려는 업종이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 같은 곳일까 봐 우려하며 계약을 꺼린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건물주에게 일단 임차인을 만나보라고 설득했고, Y에게는 전화해 “건물주가 한 번 보자고 한다”고 전했다.
Y는 그 자리에 공간 운영을 돕기로 한, 탱고로 가까워진 친구 C에게 같이 나가달라 요청했다. C와 Y가 나간 그 자리에는 이전의 임차인과 공인중개사, 건물주 대표(여러 사람이 지분을 나눠 가진 건물이었다)가 나와 있었다.
Y와 C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건전한 여가 생활과 관계된 복합 문화 공간의 운영임을 피력했다(주로 나불댄 것은 C였다). 말을 듣고 보니 괜찮을 것 같다며 건물주의 승낙이 떨어졌다. C는 자신의 신뢰감 가는 인상과 언변이 한몫 한 것 같아 무척이나 뿌듯해졌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Y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이 됐다. 이해당사자 모두가 마침 이렇게 모인 날, 이전 임차인은 계속 스트레스 받느니, 그리고 다음 월세 내는 날까지 가지고 있느니 빨리 계약하는 편이 낫겠다며 Y를 압박했다. 그로써 권리금이 원래 불렀던 것 보다 상당히 할인되긴 했지만, 결국 급작스럽게 들어가 영업하지 못하며 낼 월세를 생각하면 Y로썬 거기서 거기, 조삼모사일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C와 Y는 ‘면접 통과’의 기쁨과 흥분, 여러 사람이 분위기를 몰아간 기세에 휩쓸려 홀린 듯 순순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을 진행하며 ‘위반 건축물’ 관련 얘기가 잠시 언급됐다. 큰 문제없을 거라며 공인중개사가 매끄럽게 넘겼다. 그러나 이 ‘위반 건축물’ 이슈 때문에 Y는 몇 주간 크게 마음고생 하게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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