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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Jul 20. 2024

빛 좋은 덕업일치 (완)

'렌트프리'를 아시나요?

Y의 상황에 분노한 C는 “건물주는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안다면 임대료를 좀 덜 받아야 하는 것 아냐?”라고 물었다. Y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그러면 네가 대신 건물주와 통화해 보든가.”



-어떤 대화

C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Y 보다는 본인이 말을 잘했다. 


C는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리 어떤 말들을 할지 키워드도 적어두고 단단히 준비했지만, 통화연결음이 들리자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은 막지 못했다.


건물주가 수신한 뒤부터의 일은 대화체로 펼쳐본다.


C: (가식적인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전에 인사드렸었죠? 통화 가능하신가요?

건물주: (차분한 목소리로) 네, 제가 지하철이라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C: 간단하게 말씀 드리기에는 조금 약간 복잡한 얘기인데…. 저 혹시 현재 건물 사정에 대해 들으셨나요?

건물주: 아니오.

C: 1층 임차인이 창고를 지어 쓰고 있어 위반 건축물이 됐잖아요?

건물주: 네

C: 그것 때문에 업종 변환이랑 신규 사업 신청 허가가 아직까지 안 됐어요. 계속 구청에서 허가를 안 내줘서, 거기 창고에 있던 물품들 일단 다 저희 업소로 옮긴 뒤 다시 신청했어요. 계속 구청에서 딜레이 시키다가 오늘에서야 사업자 등록이 접수됐는데, 아마 내일 사업자 등록증이 나오고 1층 사업체 물품도 내일 이후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인테리어를 빨라도 모레에 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저희도 이런 말씀드리기 너무 송구하지만… 그날 저희가 너무 급하게 계약을 진행하면서 위반 건축물 때문에 이렇게까지 영업에 지장이 생길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어려운 말씀이지만 혹시 이번 달에 한해 렌트프리(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일정 기간 월세를 받지 않는 것. Y의 경우 N일이 렌트프리 기간이었다. 애초에 넉넉한 렌트프리 기간은 아니었는데, Y가 계약을 급하게 한 때문이지, 뭐….) 기간 연장이 좀 가능할지 말씀을 나누고 싶어서요.

건물주: 그거는… 제가 지금 답변을 일방적으로 드리기가 좀 어려워요.

C: 네, 그러실 것 같아요. 어쨌든 일단 상황을 좀 아셔야 할 것 같아서 공유 드렸습니다.

건물주: 네, 사실 이 건물 지분이 저만 있는 게 아니고 저희 가족들이라 나눠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렌트프리 기간도 저는 그렇게 크게 인테리어 할 게 있나, 사실 그런 입장에서 해드린 건데 지금 그렇다니까 그것도 좀 당혹스러워요. 왜 그러냐면, 이제 계약이 이루어졌으니 저희가 일방적으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문제잖아요?

C: 네, 저희도 일방적 책임을 져달라는 취지에서 말씀을 드린 건 아니었고요. 일단 이 상황을 공유하려고 한 거예요. 지금 위반건축물 때문에 계약 전 저희가 예상하고 공유 드렸던 일정과 너무 달라져서요. 저희가 계약 당시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 드렸잖아요. 업종 변환을 할 예정이어서 인테리어를 최소 며칠은 해야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고, 그래서 건물주께서 그 점 고려해서 며칠 분의 임대료를 양보 해주셨던 거잖아요. 그런데 그때 서로 간 인지했던 그 일자로부터 지금 며칠이 지났는데 아무 것도 진전된 게 없고, 오히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에요. 저희도 이 상황에 대해 다 배려해 달라는 건 아닌데요, 이런 상황을 공유 드리면서 혹시 조금 더 공감해주시고 양해해 주실 부분이 있으실 지에 생각해 봐주십사 하여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저희도 너무 당혹스럽더라고요. 위반 건축물 이슈가 이렇게까지 될지 몰라가지고….

건물주: 저도 사실 공감은 해요. 그런데 원래는 한 N일 정도 렌트 프리를 해도 됐는데 지금부터 다시 또 뭐를 하게 되는 거면 거의 렌트프리가 한 달 치 다 되는 건데….

C: 저희도 한 달치 임대료를 다 내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니고요, 이런 상황이니까 저희도 손해를 감수하겠지만 혹시 상황에 공감해주시고 조금 더 양해해 주실 부분이 없으실까 여쭙고자 했습니다. 무리해서 보증금이랑 권리금 낸 입장에서 영업이라도 좀 해야지 월세도 내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지금 아예 지금 인테리어도 못하고 영업은 아예 지금 시작도 못한 터라, 사실 좀 암담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좀 부탁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건물주: 그렇다고 제가 며칠을 드리겠어요?

C: 계약 당시 n일 양보해 준 것도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혹시 n일 더 렌트프리 연장이 가능할까요?

 건물주: 그건 제가 좀 말씀드리기가 지금 어렵고 이번 주말에라도 제가 한번 가족들한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서 지금 상황을 말씀드린 다음에 전달해드려야 되겠네요. 왜 그러냐면 저희는 이런 문제가 들어오면 제가 취합을 하고, 월세가 들어와도 n분의 1 해서 다 이렇게 나눠 갖는 식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제 임의로, 제 마음대로 결정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C: 네, 그 상황도 이해됩니다. 저희 상황도 이해는 되시죠?

건물주: 네, 이제 얘기를 들었으니까 제가 한번 얘기를 해서 다음 주에 전화 드릴게요.

C: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물주: 사업자 등록증은 나온 거예요?

C: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사업자 등록증은 내일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아직 확정이 아니에요. 딜레이가 엄청 심해서… 그 동안 마음고생 너무 많이 했어요.

건물주: 아니, 근데 사업증하고 상관없이 왜 인테리어를 못하셨어?

C: 위반건축물 사유가 됐던 1층 창고의 물품들을 지금 저희 가게에 두고 있어요. 그 물건들이 상당히 많아요…. 물건들 있는 상황에서 인테리어 공사하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건물주: 알겠습니다.

-C: 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It takes two to tango

하고자 한 말은 다 해 후련하면서도, 건물주 대표(n분의 1로 지분이 나뉘어져 있다고 했으므로)가 어떤 소식을 전해올 지 조마조마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 주에 연락 준다던 그로부터 바로 몇 시간 뒤 전화가 왔다! 그는 대략 이렇게 말을 전했다.


“기다리실 것 같아 빨리 전화 드렸어요. 다른 식구들이랑 상의해 봤는데 말씀 하신 내용은 어렵다고 하시네요. 식구들 입장에서는 기껏 100만원 가지고 그러면 앞으로 월세나 제대로 내겠냐고, 오히려 앞으로 걱정된다고 하시네요?”


실망스러운 한 편, 좀 울컥하기도 했다. 건물주 대표 가족 분들, 말을 왜 그 따위로 하셨지? 본인들에게나 ‘기껏’ 100만원이지, Y 입장에서는 아닌데? 그리고 ‘기껏’을 붙이는 사람이야말로 그 돈이 없어도 되는 입장 아닌가? 그러니까, 그 말은 오히려 그들이 그 돈 안 받아도 된다는 입장처럼 들리는데? 그런데 건물주 대표는 들어서 기분 좋을 일 없을 그 말을 왜 그대로 전한 걸까? 여러 찝찝함을 남긴 통화는 ‘건물주 중 인성 좋은 사람은 없다’던 기존의 편견을 강화시켰다.


며칠 뒤, 건물주에 대한 인식이 반전됐다. 그가 다른 사안으로 Y와 통화하며, 자신이 좀 더 생각해봤는데 말한 액수를 다 깎아주기는 그렇지만, 그 반절만큼은 월세에서 감액해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사람이 간사하게도 그 얘기를 듣자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구구절절한 얘기를 다 들어주고, 그가 할 수 있는 한 공감을 표한 그 사람, 그래도 괜찮은 축에 속하지 않나?  그의 가족이 뱉은 아니꼬울 수 있는 얘기를 굳이 내게 전한 것도, 그 말에 공감하거나 어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거절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건물주’에 대한 편견도 조금 깨지려고 하네? C는 히죽 웃다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 참 일희일비 하는 애구나….


그래도 이번 일은 잘 풀린 편에 속할지도? It takes two to tango.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떤 결과는 한 사람만 원인을 제공한 게 아니라 함께한 사람 모두가 같이 만든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름 인간적이라고 느껴진 이번 대화의 결과는, C가 나름대로 정중하고 친절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소통하려 했고 건물주가 거기 화답한 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번 일은 상대가 어느 정도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도출된 결과이고, 세상에는 말 안 통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나? 공감할 수 있게 좋은 태도로 성의 있게 입장을 밝히고 상대도 받아들일 수 있을 합리적인 협상안을 제시하면 합의점을 도출 할 수 있다는 말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금씩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도, 참 교과서적이지만 현실에서 늘 실현되진 않는 말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상대가 대화 가능한 사람일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진심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 거겠지….


일단 1층과 대화해야 할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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