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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Jul 23. 2024

머리 올린다? 도시락?

굳이 써야 하는 말일까...

“머리 올린다”는 표현은 골프에서 첫 라운드 경험을 했을 때 사용된다. 탱고에서는 첫 밀롱가(탱고바) 경험을 했을 때다. 어쨌든 둘 다 첫 경험을 표현할 때 쓰인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A가 초심자 B를 라운드나 밀롱가로 이끌어 주었을 경우 ‘A가 B의 머리를 올려주었다’고 쓰이는 식이다.      


나는 머리 운운하며 ‘처음’을 표현하는 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기생이 되려는 처녀가 첫 손님을 받아 함께 밤을 보낸 뒤 댕기머리를 쪽을 져 올릴 때 ‘머리 올린다’는 말을 썼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뜻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게이샤의 추억> 개봉 즈음이었다. <게이샤의 추억>의 주인공(장쯔이)은 하츠모모(공리)의 모략 속에 고통받다 마메하(양자경)에게 교육을 받고 게이샤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활동을 시작하는 관문이 첫날밤을 경매로 파는 ‘미즈아게’라고 영화는 묘사한다(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 및 영화가 전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에 찌들었다는 비판이 있다. 비판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영화를 직접 찾아보는 건...굳이 권하지 않는다). 이 장면이 인상 깊어 이야기 나누다 과거 한국의 기생 문화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게 ‘머리 올린다’는 표현을 접한 계기였다고 회상한다. 


<게이샤의 추억> 중


그러니 관련 표현을 접할 때마다 불쾌감과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무언가의 '처음'을 표현할 때 성적 맥락이 있는 말을 굳이 써야 하나? 왜?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재치 있게 느껴져서?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누군가는 불편한데…. 타인의 동의 없이 성적 언동을 하며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성희롱 아닌가? 


물론 악의 없이, 남들이 쓰는 말이고 맥락을 잘 모르니 별 생각 없이 따라 쓰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 일일이 정색하며 지적하고 알려주기에 에너지가 부족하기도 해서 입을 다물 때가 많았다. 상대가 그저 스치는 인연이라 생각하면 입을 다물기 더 수월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친교를 이어가는 사람마저 그런 말에 거부감 없어 보일 때는 참기 힘들었다.     


언젠가 그 동안 쌓였던 불쾌감을 한 번에 터뜨리듯, “나는 그 표현이 너무 싫다”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유를 설명한 적 있다. 상대방은 “그렇게 예민할 필요 있냐”며 “남자들이 어른도 됐을 때도 머리 올려 상투 틀었잖아. 그래서 머리 올린다는 게 ‘어른이 된다’ 또는 ‘초보자를 벗어난다’는 뜻인 거 아니야?”라고 반문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몰랐던 다른 맥락이 있었나?      


아닌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해당 관용어구에 찾아보니 상투에 대한 언급은 코빼기도 안 비쳤다.                         


머리(올리다 


    「1」 여자의 긴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엇바꾸어 양쪽 귀 뒤로 돌려서 이마 위쪽에 한데 틀어 얹다. =머리(를) 얹다. 


    예문) 용모가 아름답다거나 그렇지 못하다거나 그런 점에선 별 흥미가 없지만 머리를 올린 것을 봐서는 분명 처녀는 아닐 터인데….≪박경리, 토지≫


    「2」 어린 기생이 정식으로 기생이 되어 머리를 쪽 찌다. =머리(를) 얹다. 


    예문) 머리 올려 주겠다는 사내들은 많았지만 어차피 사내들 틈에서 시들어 갈 몸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첫정만은 그분에게 바치고 싶었다.


    「3」 여자가 시집을 가다. =머리(를) 얹다. 


    예문)  머리를 올린 풋각시는 차마 부모 곁을 떠나기가 싫은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머리(얹히다 


    「1」 어린 기생과 관계를 맺어 그 머리를 얹어 주다. 


    예문) 기생 머리 얹히는 것도 한량들 간에는 구실의 하나가 될 수 있어….≪한무숙, 유수암≫


    「2」 처녀를 시집보내다. 


    예문) 이젠 그 애도 머리를 얹혀 줄 나이가 되지 않았어?



상투를 트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머리를 올리는 행위가 들어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남자의 그 행위를 두고 ‘머리 올린다’고 표현한 용례는 찾기 어려웠다. 반면 여성을 두고 ‘머리 올린다’는 관용어를 쓴 수많은 용례가 역사적 자료와 근현대 소설, 그 밖에 다양한 미디어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성적 함의와 ‘스폰서’라는 맥락이 비춰졌다.      


포용의 탱고

그런데 의아한 점. 아직까지 나는 골프나 탱고와 관련된 상황 외에는 실생활에서 초보를 벗어났을 때 ‘머리 올린다’고 표현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내 경험의 한계일 수 있겠지만) 해당 언어가 매우 좁은 영역에서만 쓰이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두 영역에서 특히 이런 언어가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와 탱고, 두 영역에서 모두 쓰이면서 내가 싫어하는 또 다른 표현이 있다. ‘도시락’이다. 뜻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골프에서는 자신 보다 골프 실력이 뒤처지는 상대를 데리고 다니며 낮춰 부르는 맥락에서 쓰인다고 한다. 탱고에서는 이성과 밀롱가에 동행하여 서로 춤 출 상대가 되어주는 행위를 지칭할 때 쓰인다.


“저는 아름다운 도시락 지참하지 않으면 밀롱가 못 가는 쫄보예요.” “서로 도시락이 돼줘야죠!”와 같은 문장을 통해 들어봤는데…. 역시 불쾌했다. 같이 동행하는 사람을 ‘까먹는’ 음식과 비교하는 것, 실례 아닌가? 그냥 ‘동행인’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구태여 그렇게 말해야 해?


어떤 사람은 그냥 별 뜻 없이 하는 말인데 불편을 느끼는 쪽의 예민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언어철학자들은 언어가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는걸….


그런 말씀 하신 걸로 대표적인 분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나는 세상이 계속 변할 것이고, 이에 도태되거나 꼰대 되지 않으려면 변화되는 세상에 발맞추어 계속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는 믿는다. 이미 촘촘히 연결된 세계는 앞으로 더 곳곳이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고, 선진국 취급을 받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국인 역시 글로벌한 기준에 맞춰 더욱 차별과 경계를 부수는 언어와 태도를 요구 받을 것이므로.


나도 어떤 영역에서는 지각없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언어를 쓰는 사람일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더욱, 누군가 불편해할 때 이유를 귀담아 듣고 유의하려 애쓰며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열린 태도야 말로 낯선 이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탱고의 열린 마음과 닿아있는 것 아닌가?  

   

탱고계가 골프계 보다 먼저 ‘도시락’ ‘머리 올렸다’ 같은 구시대적 언어를 퇴출시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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