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줘서 고마웠고 다시는 이러지 말자
화요일 밤은 내게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를 보는 시간이었다. 지난주 종영한 뒤 화요일의 허전함을 걱정했는데… 미친놈이 허전할 틈 없게 만들어줬네? (안 고마움)
어쨌든 <스테파>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스테파>는 Mnet의 무용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모 설문기관의 화제성 평가에서 프로그램과 출연자 모두 1, 2위를 다툴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는 보는 사람이 드물었던… 그래서 보는 동안 조금은 쓸쓸했던 예능이다. 비록 본방은 끝났지만, 티빙이나 유튜브에서 무용수들의 춤을 볼 수 있고 콘서트도 열린다고 하니 이제라도 관심 가져주길.
<스테파>는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각기 다른 장르의 무용수 64인이 단 12명의 ‘STF 무용단’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형식이었다. 무용수들이 경쟁의 순간마다 보여준 창의적인 안무와 몰입감 있는 감정 표현, 중력과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은 장관이고 절경이었다. 특히 최호종의 움직임과 태도는 존경심마저 불러일으켰는데, 사람들의 커져가는 기대가 부담스러울 텐데도 이를 이겨내며 매번 기대를 충족하거나 그 이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중간중간 삽입된 무용수들의 인터뷰도 인상 깊었다. 몸으로 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말도 잘하다니. 깊이 있는 사고와 진중한 태도, 남다른 언어 구사력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같은 주제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만의 관점과 움직임으로 차분히 풀어가는 모습은 흥미로우면서도 존중심을 느끼게 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잘생기기까지 했다!(매우 중요)
또한 <스테파>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한국무용의 매력을 알려줬다. 많은 시청자가 한국무용 호흡과 잔상을 남기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매력적인 무용장르와 무용수들을 알게 해준 것은 <스테파>를 기획한 Mnet에게 고마운 부분이다.
그러나 화나는 지점도 많다. 우선, 무용수들에게 무리한 환경을 조성해 부상의 위험에 노출시킨 점. 부상으로 프로그램을 중도 하차한 유망주가 있었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미션에 참여하지 못한 무용수들까지 포함하면 피해는 더욱 컸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지겨울 정도로, 피곤할 정도로 반복하는 경쟁구도도 과했다. 특히 '더블 캐스팅' 같은 '반전'은 온 힘을 다해 기회를 잡으려 한 무용수들을 기만하는 처사였다.
심사위원들의 역량도 아쉬움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흑백요리사>의 안성재가 훌륭한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일관된 심사 기준과 구체적인 평가 근거를 제시하며 대상을 존중하는 태도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스테파>의 몇몇 심사위원들은 그와 달랐다. 모순되는 심사 기준과 추상적인 평가는 참가자는 물론이고 시청자마저 혼란스럽게 했다. 단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수 하나 없던 무대에 70점을 던진 심사위원의 행위는 황망했다. 이에 낙담하는 무용수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무용수들의 공연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편집도 아쉬웠다. 그들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유튜브에서 따로 찾아봐야 했다. 춤 방송에서 춤을 보기 어렵다니, 이 방송의 본질과 방향이 뭐지? 아, 계급 이동이었나?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무용수들의 케미를 보여주기 보다 지루한 계급 발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점도 안타깝다.
최종 12인을 뽑는 생방송 파이널도 문제가 많았다. 매끄럽지 못한 진행, 연예인 소감 듣기로 시간을 끌며 정작 개개인의 춤은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 구성은 낡고 지루했다. 문자 투표 마감도 갑작스러웠다. 보통은 마감 시간을 미리 예고하지 않나? 그런데 <스테파>에서는 MC가 마감한다고 통보한 뒤 약 5초만에 마감해버렸다. 마감한다는 말에 호다닥 보낸 내 문자가 집계에 반영됐을지 알 수 없다.
마감 전 일부 후보에게만 투표 독려 발언이 더해졌다는 점은 제작진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대중 투표가 완전히 공정하기 어렵다는 건 이해한다. 방송이 부여한 서사와 분량에 따라 시청자들의 애정이 특정 출연자에게 쏠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최소한의 형식적 공정성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스테파>를 제작한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음원과 콘서트로 돈을 벌려는 흑심이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무용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고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취미 무용 시장이 커지면 STF 12인의 무용수뿐 아니라 보편적인 무용수들의 생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더 많은 관객이 무대를 찾으면 예술 활동의 보람이 더 커질 것이니(나도 <스테파> 보고 다시 발레 학원 다니기 시작함).
일상에 무용을 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춤이라는 언어가 더 널리 전해진다면 이 프로그램은 의의는 한층 더 빛날 테다. 자, <스테파>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제 유튜브에서 한국무용 댄스필름과 최호종, 강경호, 기무간, 김혜현의 대표 무대를 찾아보자.
...찾기 귀찮을까봐 그냥 링크 첨부함
https://youtu.be/wxZ72MpN0y8?si=2RQ19t-lCmeGrw7m
https://youtu.be/SqbR7P5Bt7E?si=76qZOAFpPBhAegTx
https://www.youtube.com/watch?v=xDBKcY_vKGw
https://youtu.be/EO80vlxwa9E?si=wY1k28lVpxeX7ICa
https://www.youtube.com/watch?v=XblfDAwLt2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