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와 기독교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

종교 이야기

by Remedy

­­­자유의지와 기독교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


나는 기독교인 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의 신이 다른 신들과다른 점 중 하나가 인간에게 신 본인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할 권리를 주었다 라는 것인데, 이것에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1. 자유의지의 정의


자유의지를 “제레미”나“브런치” 처럼 이름이라고 생각을 할 것인지, “자유”+ “의지” 라고표현을 하는 것인지부터 생각을 해봐야 한다. 만일 이것이 단순한 이름이라면 “자유의지” 라고 불리우는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고, 만일 이것이 “자유”+”의지” 라면 이 두가지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1.a자유의지는 이름이다.


자유의지를 단순히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한 정의를 따로 내려야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성경이다. 성경에서는자유의지를 무엇이라 명명하고 있는가? 라고 생각을 하고 성경에 자유의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찾으려고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얄팍한 지식으로라도생각을 해보아야겠다.


인간은 확실히 신에게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요나와 베드로는그것에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권리는 신에게 있다. 인간은버팅기고 도망가고 주어진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과”는항상 신이 주어진 대로 이루어 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갇힌 것이나, 예수님의 형상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 모세에게 영원히 타는 불로써나타나신 것 등을 보면 그것이 더 이해가 간다. 즉, 좀더 상스럽게 말하자면, 인간은 반항할 권리는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결과 안에서 마음껏 행동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의 “자유의지”라고 생각한다.


지금1번 안에서는 “자유의지”를 이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러한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 인간은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생각을 해보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신 다는 것인데, 그리고사람이 자신이 정한 대로 행동 할 때 어떻게 서든지 그 마음을 돌이키게 만드신 다는 건데 도대체 왜 인간이 자유의지에 대해서 고마워하는 감정을느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로봇과조금 다른 점이라면 반항은 할 수 있다는 것. 로봇 3원칙처럼.


1.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여기서 로봇을 인간으로 바꾸고 인간을 신으로 바꾸면,


1. 인간은 신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신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인간은 신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여기서 인간을 기독교인으로, 신을 하나님으로 바꾸면


1.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기독교인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이렇게 변환이 된다. 다음과 비교를 해보자.


1.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일을 해야 하며, 그의 명성에 누가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2.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3. 기독교인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지만,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거나 복종하는 일이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쓴 위의 세 가지는 기독교인의 목적과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큰 것을 적은 것 뿐이다. 그런데 어째 로봇 삼 원칙이랑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로봇은저 세 가지 원칙에 위배 되지만 않으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버그”라는 변수를 통해 저 세 가지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인간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는 판단이된다면 인간 전체를 말살 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과연 로봇은 우리가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까?


나는 이러한 로봇보다 인간이 오히려 더 적은 양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의 버그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신에게반역하는 자는 지옥뿐이다. 자신의 창조주에게 반항할 제대로 된 권리 조차 없는 것이다. 로봇이 인간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사료된다면, 이 정의의 “자유의지”에서 안에 만큼은 인간이 신에게 감사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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