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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Jul 04. 2016

어느 날의 대화

일기

어느 날의 대화


아프니? 


그래, 생각보다 아프네. 생각 보다 힘들고, 생각보다 어이없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 정도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한 것 같아서 기쁘면서도 울적하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넌 진짜 옛날부터 그랬어.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울고, 뭔가 감정이 엉킨 애 같이 표현도 서툴고, 표현을 해야 할 때는 안 하고, 안 해야 할 때는 하고. 마치 청개구리가 인간으로 환생한 기분이랄까.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않고, 놀고 싶어도 놀지 않고, 말하지 않고, 웃지 않고, 울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누르고 누르면서 살았는데 만족하니? 


아니, 만족 안 해.


쿨한 것처럼 보였었잖아. 남자답고 싶어 했고, 진실한 너 자신은 지질하다고 생각하잖아. 도망만 치고 달려만 가고 계속 뒤돌아 봤잖아. 그거,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었어? 아니었으면 왜 한 거야?

 

미안해서.


미안해? 누구한테? 


사람들. 나라는 사람을 만나야 했던 불운한 사람들. 


불운한 사람들 누구? 


나를 친구라고 했던 사람들. 나를 기꺼이 받아준 사람들. 나를 받아준 사람들. 나를 기꺼이 남자친구라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해 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진짜로 불운했다고 생각해? 그 불운이 너로 인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잖아. 나와 친해지려 무던히도 노력했던 L 하고 3년 동안 나를 좋아했는데 그걸 알아주지 못했던, 프롬 파트너의 자리를 기꺼이 양보해준 K, 나 때문에 최악의 성경험과 육 개월간 마음고생을 한 V, 나 자신을 속이는 바람에 내 진심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J, 내 쓰레기 같은 습관과 인성 덕분에 한 달 넘게 힘들었던 R, 날 친구라고 생각했던 Y, 리스트를 하자면 끝이 없어. 


K는 친구로 남기를 자청했고, 걔가 널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된 건 프롬이 있었던지 1년 반이 지난 시기였잖아. L은 네 말을 무시하기를 밥먹듯이 했고 너와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놀기를 반복했지. V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또 네가 책임을 져야 할 이유도 없지.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막을 수 있었던 고통을 네 잘못으로 돌리는 거야? 


내가 막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나의 선택으로 그들을 힘든 때에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도와주지 않은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네가 힘들 때 그들은 방관하고 무시했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외면하고 너를 믿어주지 않았지. 짜증이 난다고 할 때 그들은 자신에 대한 말만 해댔고, 지금은 바쁘다고 하면 넌 친구도 아니라고 했지. 걔네들이 네 고민을 들어줬어, 풀어주려고 했어, 걱정을 해줬어? 안 했잖아. 안 했다는 걸 너도 알잖아. 


그렇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잖아. 


넌 신이 아니야.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 없어. 지금 조금 덜 도와주면 나중에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지금 네가 도와줘 봤자 얼마나 할 수 있겠어? 결국 너보다 못났던 사람들이 너를 뛰어넘고 너보다 더 잘 살 거고, 자신의 가장 힘들었던 고민들을 가져가 주었던 너라는 존재는 망각하고, 다음에 너를 만나면 널 무시하고 조롱하겠지. 뻔하잖아. 그거 참는 거 짜증 나잖아. 옛날에는 나한테 굽실 거리던 것들이 너한테 빌빌 붙던 사람들이 거만 떠는 거. 보기 싫잖아. 근데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내가 없었으면 넌 여기에 없었어 라는 말은 그냥 루저들의 변명일 뿐이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여자들은 루저들을 좋아하지 않지. 


착하던 아이가 게임에 빠져 병신이 되고, 신실했던 사람이 약에 중독되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고, 공부를 더럽게 잘하던 애가 미래가 망가지고, 이런 걸 막았었어. 마약은 물론이고 자살도 막았고, 자해도 막았고,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난 많이 도와줬어. 이걸 도와주지 않았었어도 괜찮았다는 거야? 


그래. 그걸 도와준 사람이 꼭 너일 필요는 없잖아. 네가 아녔어도 누군가가 도와줬겠지. 네가 했던 건 대단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어. 물론 그 나이 때에 그 정도로 머리를 썼다는 것이 대단하게 보일 수 는 있겠지만, 어쩌면 네가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그 사람들은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오히려 네가 무언가를 해서 그 사람들이 괴로운 것이 아닐까? S가 말했던 것처럼 넌 그들을 위해서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수는 없잖아. 넌 그들이 너 없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기를 기회를 뺏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야.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넌 알고 있잖아. 금방 잊고 금방 다시 행복해지고, 금방 다시 웃는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잖아. 사람들이 괴롭게 놔두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들을 위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긴, 나 없이도 잘 지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래, 사람들이 필요한 건 한 번의 가이드라인일 뿐이야.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야. 남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그들에게 조언을 주기 전에 네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해봐. 쌓여있는 너의 문제를 외면하고 도망치지만 말고, 처음으로 부딪혀보는 거야. 가이드라인은 네가 잘 알잖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줬던 것처럼, 생각으로, 머리로 말고 느끼는 대로, 감정대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답답하잖아. 답답하고 힘들고 우울하고 울적하잖아. 신은 네가 웃기를 원하는데 늘 가짜 웃음에 울상을 짓고 있는 네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 그냥, 최선을 다해 보는 게 어때?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나쁘면 그 걸해 결할 지혜를 신이 준다고 믿잖아. 못할 이유가 없잖아. 미안하면 미안하다, 좋아하면 좋아한다, 짜증 나면 짜증 난다, 말을 하란 말이야. 한꺼번에 터지지 않으려 조심조심하지 말고. 


그렇게 되면 대부분 나를 떠날 텐데. 


상관없어. 어차피 그들은 네 모습에 애착을 가진 게 아니었잖아. 네 쓸모 있음에, 네가 보여주는 친근함에 얼떨결에 온 사람들이잖아. 인맥으로써 쓸모 있을지는 몰라도 네 사람들은 아닌데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 너를 혼자로 만들고 있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거야?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난 그들이 웃고 떠드는 게 좋아. 웃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고 슬퍼하면 나도 덩달아 슬퍼. 그냥 사람들이 항상 웃었으면 좋겠어.


사람들도 그걸 너에게서 원하지 않을까? 네가 웃으면 기분이 좋고 네 가항상 웃었으면 좋겠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네가 가짜로 웃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다만 그 사람들은 네가 진짜로 웃는지 가짜로 웃는지 구별을 하지 못할 뿐이야. 네가 웃으니 웃는 게 아니라 네가 웃는 게 좋아서 웃는 거라니까. 


그런가


그래. 그렇다니까. 설마 사람들이 너보다 이기적이겠어? 너보다 더 착했으면 착했지 더 약아빠진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 아니야. 


그렇네


그래 그러니까 한번 진짜로 웃어보라고. 진짜로 짜증도 내보고 울어도 보고 화도 내보고. 그냥 뭐랄까, 바디랭귀지만 오픈이 아니라 사이랭귀지(Psy-Language) 도 오픈으로 바꾸란 말이야. 


그래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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