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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May 02. 2016

일기-노래/연애(?)

 

툭 웃음이 터지면 그건 너
쿵 내려앉으면은 그건너
축 머금고 있다면 그건너
둥 울림이 생긴다면 그건너

그대를 보며
나는 더운 숨을 쉬어요
아픈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겠죠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돼요
찾아오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눈을 떼지 못 해
하루종일 눈이 시려요
슬픈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겠죠

제게 대답하지 않으셔도돼요
달래주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아마 짝사랑, 혹은 먼저 시작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공감이가는 노래가 아닐까. 그냥 보는 것으로 마음이 가라앉고 가까이 있으면 무엇을 할지 모르겠고 머리가 빙빙도는 그 느낌은 아마 그것이 “짝사랑”, 즉 가능성이 있는, 그러나 한 순간 사라질 수도 있는 사랑 이여서 아닐까. 괜히 멋져보이고 싶고 무엇이든 잘 하는 것 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는 노래를 가사 혹은 리듬이 확 와 닿으면 그 노래에 “꽂힌다”. 한 달, 혹은 두 세달 가까이 노래 서너개를 반복해서 듣는다. 그러나 이 노래는 진짜 리듬과 가사 둘 다 너무나 감미롭고 공감이 되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그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나를알아달라는 것이 억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저 가끔 관심만 가져달라는 작은 소망을 가지게 된다. 나를알아주지 못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혹시라도, 그냥 한번말 걸어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하곤 한다. 페메를 쓸데없이 확인 하기도, 시도 때도 없이 프로파일을 확인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웃기게도 “짝사랑”은 “짝사랑”일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람들에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일까 “꺼야만 하는 큰 불일까” 하는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씩 하소연하고 말을 붙이는 것 정도는 괜찮다.하지만 그것이 나에 대한 집착 이라던지 관심, 사랑으로 변하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이 그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야릇한 기분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 차라리 그들을 끊어 버리는 선택을 하곤 한다. 언제나 나만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분은 무엇일까. 늘 궁금하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이런 존재로 생각 하곤 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인간, 사람 하나를 개개인으로 사랑하는 분은 아니신것 같다. 더더욱 이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는 분은 아니다. “신의 한 수”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짝사랑”으로는 절대 만족 못하시는 그 분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 언젠가, 내가 진심으로 축복을 받은 남자여서, 비록 내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저런 관심과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아마 나에겐 너무 과분한 일이겠지만. 내가 내쳐도, 화를 내도 내 곁에 머물러주는 여자가 있었으면 진심으로, 정말 너무좋을 것 같다. 

 

나는 배신에 익숙하다. 내가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에, 뒤통수를 얻어 맞는 것에 익숙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맞고 나서오는 이 쓰라림은 도저히 익숙해 지지 않는다. “아픔”이아니라 “쓰라림”이라 정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제 이런 것 그만 좀 당했으면 좋겠지만, 내가 쓰레기인 이상 그렇지는않겠지. 

 

신은 그의 한 수로 나를 “인간”으로만들고 계신다. 내가 한 모든 개 같은 짓거리들을 그대로 돌려주심으로써 그들이 겪은 모든 “감정”을 내가 이해 하도록 해주신다.

이 노래를 들으면 집중하게 되면서 자동으로 행복하면서 우울한, 그냥눈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뭐랄까. 하아아하고 마음속 저 끝에서부터 나오는 한숨이 나온다 랄까. 

 

나를 마지막 희망으로 알아주던 사람 한 명을 매몰차게 내쳤다. 배신과배신에 연이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을 때, 견디는 것에 한계가 왔을 때 왔기에 나는 더 이상 무엇을해 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울면 좋으려만.

 

세상 모든 것이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을 때까지 날 사랑해 준다면 그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반대로 그만큼 내가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짝사랑이라면 어떤기분일까. 웃기다. 정신적인 사춘기가 늦게 오는 것인가. 내가 봄을, 아니 여름을 타는 것인가? 죽는 것과는 별개의 의미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차라리잊고 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유는 정말 연기를 잘 하는 것 같다. 바디랭귀지에 디테일 함도있고, 물론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무언가 표현을 정말 잘하는 것 같다. 프로듀사에 나오는 명대사는 아마 남자 PD가아이유에게 하는 당신의 진심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 같다. 가장 마음에와 닿는다. 내가 언제나 연기만 한다면 내 진심을 누가 알아줄까? 나중에나를 아는 친구들도 나를 잘못 알아서 내가 “신재석”으로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뭔가 걱정이 된다. 

 

저 아이유의 “마음”이라는노래는 비트박스와 매우 잘 어울린다. 난 살면서 이렇게 비트박스가 잘 어울리는 노래는 처음인 것 같다. 뭔가 내 비트박스에 소울이 실린 느낌이랄까. 아이유의 노래를 좋아하는편은 아니지만 진짜 이 노래만은 최고인 듯 싶다. 

 

저 노래는 “을”이라는존재를, 그것도 완벽한 “을”을 재현해주는 노래다. 내가 갑 인척 하면서 을이였던 사람들, 나를 그저 나쁜 놈으로 매몰기 바빴던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뭐 어쩌겠는가. 그저 그렇게 살아가야지. 자 이제 여덟 명 중 네 명 남았다. 나머지 중에서는 과연 다른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물론 답은 이미알지만 만일 다른 이야기를 딱 한 사람만 해준다면 나는 나에게 뭔가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라는존재의 변수에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결정을 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딱, 단 한 명만 다르다면 정말 좋으려만. 

 

나머지 네 명 에게도 다시 시도를 해 볼 것이다. 이제야 다른 사람을정확히 이해 할 수 있다. 합리적인, 머리로 하는 말이 아니라진심으로 우러나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창피해 하지 않고 남을 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불빛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려만. 

 

 

집에 갈 시간이다. 나에게 대답해 주지 않아도, 찾아오지 않아도, 달래주지 않아도 그들에게 다가갈 만큼 강해졌으면좋겠다. 오늘 이 배신으로 내가 당해야 할 배신은 다 당한 것 같다.더 이상 내가 과거의 내 짓거리를 이해 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피투성이, 생채기 투성이의 몸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참으로, 정말좋겠다. 모든 악연을 인연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은 인연으로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해보자. 못할 것은 없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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