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기독교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 만큼, 혹은 더 중요시 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어떻게 생각하냐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의 방향을 건드리게 된다. 기독교인,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른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아버지 아들의 관계라면, 인세의 아비아들의 관계도 같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와 예수님의 관계를아내와 남편의 관계라고 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을 섬기듯 교회가 예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과 같이, 기독교인이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믿고, 따르듯이 아들이, 자식이 그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우리의 믿음과 주변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이와 동일하게 자식과 아버지, 어머님의 관계는 자식과 예수님, 자식과 하나님의 관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을 그대로 적용시켜보자.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에 대한 구절은 성경에 셀 수도 없이 많다. 그것들을 전부 여기에서 언급 할 수는 없으나, 매우 많은 양을 이야기할 셈이다.
고린도후서 1:3, 하나님을 찬송 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아버지 시요, 긍휼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여기에서 우리는 아버지 라는 위치에 있는 존재는 긍휼과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고 아껴준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육체적 체벌을반복해서 하는 것은 긍휼, 즉 불쌍히 여기고 아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말라기 4:6,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와서 저주로 그땅을 칠까 하노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아버지에게로부터 멀어진 자녀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의 마음이 돌아오기 위해선 아버지들의 마음이 먼저 자녀들에게 와야 한다는 것을 이 본문에서 알 수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그 가족을, 어쩌면, 저주로 치실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질 수 있다.
히브리서12:5- 14장 또한 자녀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권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너희가 잊었도다, 내 아들아, 너는{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 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 하지 말라.
자녀가 부모님의 징계를 멸시 하지 않으며, 책망을 받을 때 낙심하지않으려면 어떠한 징계를, 어떠한 책망을 받아야 할까? 일단육체적 체벌이 합당한지 생각해 보자. 한국 자녀들은 많이 맞아 봤으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맞으면 낙심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게 되나? 물론이 대답에 예스라고 한다면, 또 그 외의 것들을 모두 읽어봤을 때 공경하고 멸시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게혼낼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
요한계시록 3:19,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 하고 징계 하노니그런즉 열심을 내여 회개하라
하나님에게 우리가 회개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녀가 죄송하다, 잘못했다 하면 다시는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아야한다. 하나님이 우리가 잘못 한 것을 전부다 마음에 담아두시고 우리가 한번 잘못 할 때마다 “너, 십 년 전에도 비슷한 잘못을 했었지? 내가 누구누구랑 같이 있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같이 있어서 망했는데, 이번에도또 내 말 안 들어? 두 번째는 넘어가지만 세 번째는 용서 안 해!”라고 하면 우린 이미 삼만 번은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책망하고 징계하되, 아이가 잘못 했다고 하면 그것을깨끗이 잊을 줄 도 알아야 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자녀는 부모를 사랑할 “의무”를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고 자발적인 것 처럼, 부모는 아이가 의무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사랑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은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 받으실 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아껴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만사를 관장해주시며 지혜와 능력을 알맞게 주시는데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즉,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부모로써 사랑 할 수 있게 되듯이 부모도, 아이가 이해를 했다고 가정 했을 때,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야한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에배소서 6:4, 또 너희 아버지들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 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 하라.
두 말씀을 같이 보자면, 마땅히 행할 길은 “주의 교육과 훈계”가 된다. 늙어서도떠나지 않을 옳은 주의 교육과 훈계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늙어서도 떠나지 않는다” 라는 것은 곧 Learning을의미한다. 즉, 다른 말로는 주의 교육과 훈계를 Learning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에서이야기 했던 것들을 보자면 주의 교육과 훈계와는 몇 천 광년 떨어진 것들 아닌가? 주의 훈계, 즉 성경은 언제나 옳고 바르게 사람을 인도하는데, 위에서 언급한행동들은 과연 옳고 바른 행동들인가? 즉 육체적 체벌은, 웬만하면, 주의 교육과 훈계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뜻이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