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각

나름의 간증

by Remedy

하나님의 뜻


요즘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목사님께 여쭤보고 하는 동안 나의 기도에 대한 생각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일종의 포션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화로 생각을 바꾸게되었는데, 이러한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다름아닌 지킴, 순장, 그리고 컨트롤 하지 못하는 기도 때문이다.


내가 조금 이야기를 해준 사람들은 나는 지킴에서 일할 뜻이 전혀 없었음과 순장 되는 것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무조건 망할 것이며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매우 컸던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했던 기도처럼 제발 하나님의 뜻을 거두어 달라고, 이런 저런 조건을, 더 어렵다고 생각되는, 나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을 하나님께말씀을 드렸다.


하나님께 아는 사람 두 명이 내 순에 있으면 순장을 하겠다고 했었고, 기적적으로막판에 내가 전부터 조금 알던 모세가 내 순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전에는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해서 채준이를 보내 주셨고, 그 전에는 부모님과의 일이 잘 풀리면 하겠다고 해서 나름 잘 풀렸었다. 지킴도 마찬가지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한 명만 보내달라고 했더니나름 무더기로 만났고, 내 부족한 믿음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해서 한 형과의 대화로 인해 그것또한 컨펌을 받았다. 나의 지식은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달라고 한 뒤로 매우 여러 번 내가고민하고 있던 주제들에 대한 답을 받았으며, 내가 왜 가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달라는, 확실히 못하실 것이라 생각한 애매한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잠시 보여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나의 찡찡댐과 그 기도 가운데 나를 이용하시고 이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시기에 그것을 이루시기 위한 최적화 된 방법을 아시며, 내가기도할 것들은 이미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며 결국 나는 지킴에서 일하게 되었고 순장이 되었으며 기도를 배웠다는 것을 보면 그는자신이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을 이미 아시고 계신 듯 하다.


이러한 것은 18장에 나온다. 사실상태가 닫힌 여자가, 90대의 여자가 아이를 밴다는 것은 동정녀가 아이를 낳는 다는 것 만큼의 기적이기도하다. 90대의 비실한 정자와 존재하지 않는 난자가 만나 아이를 만든 것은 튼실한 난자와 존재하지 않는정자가 만나 아이를 만든 것 보다 더욱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가능치 못하신 일이 없기에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을, 스스로불가능 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하셨다. 스스로 불가능한 것을 그 자신이 해낼 때에 그 결과의 영광은 온전히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내가 사랑으로 가득 찼을 때, 두려움과 긴장이 아닌상대에 대한 이해심으로만 채워졌을 때 내가 개인이 아닌 그룹을 리드 할 수 있다는 것을 지킴을 통해 보여주셨다.나는 물론 그룹 리딩은 못하기에 지킴에서의 일은 고스란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며, 나는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순을 이끌어야 한다는, 나의 힘으로만 리드를 하려고 했던 나를 고치시고결국 그의 뜻대로, 깨달음을 주신 것이다.


또한 18장의 아브라함의 열띤 기도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고 본다. 소돔은 여전히 멸망했으니까. 이는 사람의 기도함은 결국 하나님의원하심 안에 있다는 것을, 즉 원하나 원하지 않으나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정말 많고 다양한 기도로 순장이 되는 것을 거부했었다. 실상 망쳐버리고 쫓겨날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잘 하자는 생각보다는 두려움과 긴장이 더 큰 무거운 자리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 같은 하나님과의 딜은 언제나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심과 실제로 순장됨으로인해 “너의 기도는 내 뜻에 반대하면 의미가 없다”라는 것과“너는 결국 내 말을 듣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다시금 체험하고말았다.


나는 아브라함의 기도가 잘못된 기도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미소돔의 죄악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하나님의 뜻에 대한 사랑보다 컸으며, 하나님의 뜻을 막아서려는 모습 또한 보였다. 물론 그가 한 것은 통상적인 의미의 기도라 보기는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그의 기도는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 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따르는 자던 말던 일단 “소돔”을 멸망 시키는 데에 중점을둔 하나님이라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 가족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그렇다면 19장의 롯의 기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분명 들에 있지 말고 산으로 가라 라는 명을 받았음에도 롯은 재앙에 대한 두려움에 성읍으로 가도 되냐는 기도를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경우와는 다르게 그리 하라는 허락을 주셨다.


나는 이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라는 구절의 핵심은 “산으로 가라”가 아닌 “평지에있지 말고”라고 본다. 즉 “평평한 곳에 있으면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 화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라”라는의미라면 성읍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인 “소돔을 멸망시키고 롯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라는 큰 가능성 안에 있으므로 받아들여졌으나 아브라함의 기도는 소돔의 멸망을 막으려는 시도, 즉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 기도라 들어지지 않았다 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기도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안 좋은 기도”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일 수도 있다. 아브라함은 적어도 하나님이 자신이 기도를 하면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하나님께달려갔으니까.


나는 그냥 궁금해졌다. 아브라함이 나중에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그의 여식들은 아비의 아이를 배었으며 소돔은 여전히 멸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그가 어떠한 생각을 가졌을지,하나님이 롯과 그의 식솔을 나름 살려주신 것에 대해 기뻐할지 아니면 죽은 롯의 아내와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슬퍼했을지, 또 롯에게 너의 아내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다 라고 했을지, 아니면 그렇게 까지는 하실 필요 없었다 라고 원망을 했을지, 과연아브라함은, 롯은 이 모든 일을 그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있으며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하며 감탄하고 찬양할 수 있었을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기도의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유효성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안에서 거하는 것 하나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기도인가? 아니면 아브라함 처럼, 혹은 롯처럼 일단 매달려 보는 것 조차 좋은기도라 할 수 있는가? 옳은 기도와 틀린 기도가 따로 있는지, 의인의기도를 더 잘 들으시는 이유는 그 기도가 이미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여서 인지 아니면 그저 그 사람을 더 총애하시기 때문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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