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점 -1

연애, 사랑, 결혼, 그리고 이혼에 대한 짧고 괴랄한 고찰

by Remedy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점 –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한 고찰


*이 글은 나름 길기에 바쁘시고 귀찮으신 분들은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만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순 모임에서 이것 저것 나누어 보다가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 주제는 오랜 시간 사귄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헤어진 후 짧게 사귄 뒤 결혼하는 기독교인들의 심리는 결혼할 때 하나님 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비 기독교인과 다를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곧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지칭하는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이나 정조 있지 못한 행위, 이혼, 불란 등 인관 관계, 특히 연인/부부 관계에 있어서 과연 이들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다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혼하는 기도교인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간의 갈등으로 인해 회의감을 느끼고 기독교에 반감을 느끼게 된 K라는 형을 알고 있다. 그 형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기독교인이 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신이라는 존재가 broken family를 원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 하며 분노했다. 내가 10학년 때 T라는 친구의 삼다리를 도와준 적이 있다.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고 같이 전략도 짜주고 하면서 그 친구의 말을 들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 말로는 자신이 삼다리를 걸치게 된 이유가 바로 여자친구가 더 이상 매력이 없게 느껴지지만 학교에서 도움이 되어서 헤어지지는 못하겠는데 다른 두 여자가 너무 예뻐서 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내가 비기독교인 이였기에, 그리고 남자로써 그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도와줬다. 그때 그 녀석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말하고 다녔었다. 내가 되게 존경했던 S형은 나름 이른 나이에 약혼을 하셨었다. 그러나 “성격차이”로 결혼을 다시 생각하시게 되었고, 결국 파토가 나게 되었다. 물론, 성격차이는 아니 였다.


이 밖에도 나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지칭함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는 지체들을 나름 많이 보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그들이 “이상하다” 혹은 “죄 지었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보다는 그저 “정상적이다”라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교회에서 못이 박히도록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과 달라야 한다” 라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사람과 전혀 다를 것 없이 행동하는 그들이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순 모임 때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반 자동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의 의도를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과연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과 다른가?”가 아니라 “기독교인은 비 기독교인과 달라야 하는가?”이다. 슬프게도, 위에 와는 다르게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면 달라야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화합을 이루어야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되는 기독교인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심리학도로써 사랑이 네 가지 (아가페를 넣지 않는다면 세가지)라는 소리는 지겹도록 듣는다. 친구와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 부모님이 아이에게 가지는 사랑, 그리고 자기 희생적 사랑이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래서 “사귀고” 싶을 때 대부분은 플라토닉과 에로틱한 사랑은 느끼고 이해하지만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 조차 모르며 그 사랑을 받는 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 어떤 사람도 스스로의 힘으로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온전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반드시 인간관계에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자기 방어로 이것이 타인을 위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혼”이란 그러한 사랑이 어떠한 이유로 모두 깨져버리고 사라져 버리거나 더 이상 의미 없을 때 하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하신 어른들에게 여쭤보면 흔히 결혼의 관계 유지는 쌍방간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서로 소홀이 하지 않으려 하는 노력은 결국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연결된다. 바로 “평생을 같이 할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득이한 경우 멀리 떨어져 있는 많은 기러기 가족들은 육체적인 사랑은 없어 진지 오래고 이제는 플라토닉한 사랑마저 사라져가기에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서로에 대한 아가페적인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바람을 피우는 행위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 현 여자친구와 육체적으로 식어가는데 나랑 더 이야기도 잘 통하고 매력적이 여성이 다가온다면? 그 여성이 나와 여러 종류의 사랑을 쌓아가는 동안 점점 현 여자친구에게는 소홀하게 될 것이고 상황에 따라 그것이 바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아니,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이렇다. 한쪽이 중요해지면 자연스레 다른 것이 덜 중요해 지는 것이다. 즉 사랑이 관계에 필수 조건인 연인 관계의 경우, 이 사랑을 에로틱한 사랑과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정의를 해버린다면, 또 그 두 가지만 가지고 연인 관계에 임한다면, 당연히 에로사항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결국 인간이란 이러한 두뇌 매케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라고 생각을 해왔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두뇌구조와 뇌파반응이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내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 볼 수 없긴 하겠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배우자를 최대 아가페적으로 사랑하는, 최소 견디기는 하는 정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내가 만일 바람을 핀다면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의 명성에 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내가 많은 사람들을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내 자식을 하나님과 반대로 가게 하는구나 라는 깨달음은 분명 이혼이나 바람, 혹은 충실하고 사랑한다 라는 선택지 중 한 곳에 더 무게를 주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 다르다 해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그 결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이 아닐 경우 하나님이 그 둘을 이혼으로 갈라놓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커플은 그대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따로따로 있을 때 보다 더 크다. 자신의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그 사람의 믿음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 특히 그 주변이 배우자나 가족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어떤 부득이한 이유로 이들이 떨어지게 되고 이혼을 하게 된 후 기독교인이 된다면 나는 그것은 하나님이 축복을 내려주셨다고 보고 싶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부모와 아이가 있는 가정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비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엄마와 아이만 (혹은 아빠와 아이만) 타국으로 가 부부끼리의 교류가 뜸해지고 이혼을 생각하는 시기에 왔다. 그런데 아이는 교회를 잘 다니고 믿음이 좋으며, 교회에서 적응도 잘 하고 여러 일을 맡고 자신의 믿음을 잘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면 나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싶다. 비록 부부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합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아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필요하시고 계획하신 아이이다. 하지만 그와 같이 이혼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자신의 자녀가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으로,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합하여서 “선”을, 세 사람 모두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택하셨을 것이다. 이 일은 가까운 곳에서 보는 아이와 그것을 드는 교회 사람은 “죄”이며 비기독교인 다운, 세상적인 행위다 라고 판단할지 몰라도, 그로 인해, 혹은 그 후에 세 사람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 천국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세 사람이 오순도순 지옥에 가는 것 보다 확연히 아름다운 결말 아닐까? 어쩌면 그렇기에 그 이혼된 만남 조차도 하나님의 뜻, 그 아이를 태어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허구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에 분명 죄라고 되어있는 것들을 스스로 조작하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애초에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 반하는 행위인데, 하나님을 따르면 이혼이던 강간이던 살인이던 그 어떤 것이 죄라는 말인가. 물론 이건 “스스로” 하나님의 생각을 따른다고 하는 행위를 포함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것만 포함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험한 생각이라고 태클을 거시는 분들은 분명 자기합리화에 빠져 스스로 하는 행위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를 해보신 분이 걱정되어 하시는 말씀 일게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부부를 탓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결혼 그 자체이다 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그 아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잘 자라고 있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 완벽하게 모두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세팅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이 만남부터 헤어짐, 그리고 그 헤어짐으로 인해 받는 모든 고통이 결국 하나님의 뜻 이였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며, 그러한 상황을 그 어떤 사람도 죄니 잘못되었다느니 이상하다느니 하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만남이 옳고 어떤 헤어짐이 그른지, 어째서 10년 사귄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2달 사귄 사람과 결혼하는지, 그 모든 것이 결국 그 크신 손 안에 있다 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절대 정론이 아니다. 분명 성령님이 임하심으로써 기독교인은 모든 면에서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계실게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동급이 아닐 것이 무언가? 성령님의 임하심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은 뇌파와 방어기제 문제가 아닌 다른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역사하신다. 하지만 나는 온전히 사람만을 이 글에서 다루었기에 다른 점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100의 인생에서 성령의 임하심이 0인 사람과 1인 사람은 분명 천국과 지옥 만큼의 차이가 있으나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서 그 1이 광채를 발할지 나는 장담 할 수 없다. 분명 이혼하고 바람을 핀 기독교인들도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사람들의 죄성이 바람기와 이혼으로 들어난 것일 뿐.


여하튼 나는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의 유일하게 다를 때에는 성령님이 임하실 때 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지금껏 말해왔듯이, 결국 성령에 늘상 취해있지 않는 기독교인은 비 기독교인과 다름이 없다 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나는 이것을 초짜 심리학도와 약간에 경험에 의해서 지지한다. 성령에 푹 빠져 계신 목사님들이나 선교사님들도 세상사람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자주 있지 않는가. 물론 이것은 행위에 대한 고찰이지 사후세계에 대한 고찰은 아니다. 늘상 성령에 취해있지 않는 기독교인도 천국에 갈지 말지는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정하신거라 왈가왈부 할 문제가 애초에 되지 않는다.


끝맞춤을 하자면 하나님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시는지 모르기에 타인이 이혼을 하던 결혼을 하던 우리가 뭐라고 정죄할 입장은 되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는 비기독교인들과 달라질 수 없기에 기도로 모든 일에 임하며 성령님에 심취해 있도록,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살아가야 하고 혹이나 이혼이나 바람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비예수님적인 행위로 인해 상처받은 지체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변하련다.


우리 순 최고!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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