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교회 OPPA - 교회오빠
기독교 영화 추천
*위 동영상의 노래와 함께 읽어주기를. 욥의 고백 이라는 노래이다.
교회오빠, 라는 명칭은 교회를 몇 년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법한 명칭이다. 보통 교회 오빠라 함은 기타를 치고 키 크고 옷 잘입으며 착하고 엄친아 느낌의 교회를 다니는 남성을 일컫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소감들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울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종착에는 꺽꺽 거리며 울었던 한 사람, 한 기독교인으로써 느낀 점을 쓰는 동시에, 한국에 있을 재개봉에 힘을 실어 주고 싶고, 또 캐나다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꼭 보라고, 삶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사실 초반에는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심리 상담을 공부하다 보니 부부의 카메라 의식을 통한 반응들이 너무 어색하고 설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반쯤 들어가기 시작하면 어색했던 얼굴은 어느새 사라지고 삶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아내와 두려워 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모든 것을 이겨내려 하는 남편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남편이 무너졌을 때, 그러니까 그의 어머니가 삶을 끝내는 것을 선택 하셨을 때, 아내는 열정으로, 그리고 차분함과 사랑으로 남편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준다.
그렇게 살짝은 뭉클한 상태로 중반이 흘러가고 후반이 시작된다. 후반의 시작은 갑자기 너무나도 말라버린 남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초점이 조금 사라지고 죽음이 가까워 졌음을, 그리고 죽음이 가까 워짐을 알고 있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그는 아내에게 결혼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더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이야기 한다. 에이, 클리쉐 적이네, 라고 충분히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이건 실사다. 영화나 드라마 따위에서 거짓 울음과 화장으로 아픔을 조장하는 것 따위는 감히 설명 할 수 없는 슬픔과 경건함을 한방에 맞아버린 나는 그저 벅차 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영화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모르핀을 맞기를 거부했다. 하나님을, 성경을 하루라도 묵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데 맞으면 아, 그 성경이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는다고.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성경이 뭐라고. 예수가 뭐라고. 기독교가 뭐라고 저렇게 까지.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 나를 깨닫고, 그런 마음으로 저 교회오빠의 투쟁을, 믿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인 것 마냥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보며 보아왔던 나의 회의적인 모습, 그래 그러니까 난 할 수 없어 라는, 을 깨닫게 되고 더 이상은 참아왔던 눈물을 참지 못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 나는 얼마나 위선적인 사람인가. 아, 나는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게, 최대한 숨 죽여 누구도 모르게 눈물을 열심히 닦으면서.
그리고 정말 죽음의 문턱에 당도해 하나님에게서 단절된 기분을 느꼈다고, 예수님도 이런 기분 이셨을 것이라 말하는 그의 말에 아아, 나는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조용히, 여전히 차분하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본래 울지 않으려 했던 나에겐 그건 충분한 오열 이였다. 내가 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던 적이 있던가, 라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그 교회오빠가 너무나 부럽고, 또 내 자신이 한심하고 작게끔 느껴졌다.
그래, 저 정도는 되야 교회 오빠지.
교회 오빠는 못 돼도 나름 좋은 형, 좋은 오빠라고 생각했던 그 알량한 자만이 너무 우스웠다. 주여, 주님을 위해 여기까지 달렸습니다, 라고 감히 말했던 나를 철저하게 눌러버렸다. 욥은 단 한번도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으나 나는 과거를 핑계로, 습관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고, 매일 지고 있는가.
나 정도면 그래도 하나님을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정도면 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로. 이 나이에는, 이정도면 훌륭한 믿음이라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간사한 말에 내가 홀라당 넘어가 버려서, 더 이상 더 좋은 아들이 되기를 포기한 나에게 하나님은 야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 저거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하시는 듯, 그리고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다.
느낀 점을, 이 영화를 묵상한 것들은 너무 많지만 그것을 써서 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만, 다만 나는 정말로 모두가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기독교인이면 어떠하고 비 기독교인이면 어떠한가. 그냥, 제발,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이 영화를 보아라. 마음껏 울고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라. 교회에서 단체로 가도 좋고 믿음을 나누는 친구들도 좋다. 내가 좋은 기독교인이라 느끼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믿음을, 우리의 믿음을, 서로의 믿음을 다시 확인해 보아야 한다. 내가 자만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입술로 범죄하지는 않는지, 내 믿음이 성장하고는 있는지.
이 영화에 나온 집사님은 목사가 아니다. 그는 그저 평신도일 뿐이다. 그런데 그는 그냥 간단한 평신도는 아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네 하고 순종하는, 어쩌면 대단하지만 우리와 지극히 같은 사람일 뿐이다. 다만 그는 성령 충만해 있기에, 다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하나님을 기대했기에 죽음을 견뎌냄 으로써, 죽음이 주는 최고의 두려움인 외로움을 견뎌냄 으로써 천국의 존재와 하나님의, 예수의 값어치를 기꺼이 증명 해내었다.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를 다시금 되돌아 보고 정비하며 무너져가는 듯한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갈망하고 믿음으로 주를 바라보며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도록. 견디기 힘들지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힘주시는 성령과 함께 현세가 아닌 천국이라는 영생을 듣는 자가 아닌 보는 자가 되기를.
그리하여 증거하는 자, 그리고 종착에는 한마음 한 뜻을 가진 자들이 되어 모두 각자의 사명을 지켜내어 각자의 신앙의 삶을 주님의 증인으로써 살기를. 그래서 모두 언젠가 만나 그리 신앙의 삶을 살아 내어간 모두를 축복하고 기뻐하는 그날 까지 쉬지 아니하고 단련하기를.
J+
P.S. 한국에서의 재 개봉은 3월 12일 이다. 돈을 내고 볼 가치, 아니 돈을 내지 않고 보는 것이 죄 라고 느껴질 만큼의 변화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이 글을 읽게 하는 자가 하나님이라고 생각 된다면, 교회오빠, The Job Who Is Near Us를 꼭, 꼭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