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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May 27. 2017

실험실 - 일기

5/13

나는 몇번 실험실에 대한 나의 애정을 표하는 글을 쓴적이 있다. 실험실에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모르는 것 수만가지의 것들을 하나 하나 배워 가는 그 순간은 누가 뭐래도 나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였다. 내가 온전히 나 일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나보다 한참 레벨이 높은 PhD를 가진 분들이나 마스터를 하는 분들과 동급으로 이야기 한다던지, 혹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랩이 처음인 분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것 역시 짜릿하다. 내가 교회에서 꿈꾸던 나이와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환경은, 물론 교수님이 대빵이시긴 하지만, 웃기게도 교회가 아닌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다. 경력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도와야 자신이 편안해 질 수 있기에, 또 대부분 착한 사람들, 세상에 때묻지 않은 사람들 이기에 도와줌에 거리낌 또한 없다.  


어느 실험실이던 나는 그 분위기에 푹 빠져 있으면 그곳이 나에게는 푸른 초장이다. 뭐, 실험실에서 자고 밤 샌적도 몇번 있으니 아예 틀린말은 아니다. 그 많은 인원 사이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욕을 들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바쁘다는 것이 핑계로 쓰이지 않는 곳, 그리고 예쁜 한국인 누님들이 계시는 (…) 곳이기도 한다. 눈도 호강이요, 몸도 마음도 머리도 호강이니 비록 힘들고 바쁘지만 이곳보다 더한 초장은 없다.  


나는 한 1년 휴학하면서 실험실에서 일하고 싶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으며, 돈도 벌고 만날 사람도 만나고, 실컷 놀고 실컷 이야기 한 후 페이퍼 하나 딱 냈으면 좋겠다. 교회도 안가고 그저 만나는 사람들은 실험실 사람과 몇몇 친구들이고, 잔소리 없고 질책없는 평안한 버블 안에서 한 1년 쉬고 왔으면 한다. 내가 알고 있는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갈구하는 무언가는 실험실 데이터와 나름의 신학밖에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신학은 나의 실험실에 대한 열정에 비하면 새발의 피 조차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감안할 때 목사님 되기는 글른 듯 하다. 그렇다고 실험하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에는 수많은 반대와, 경제적 측면에 대한 문제가 있기에 그것 또한 모르겠다. 평생 게임과 웹툰보기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가 정작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못하게 되니 이건 또 무슨 기괴한, 한자 발 같은 일인가 하는 깊은 빡침이 뭉글뭉글 피어나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보다 토론토에 적응을 잘 못하나보다. 내가 토론토에 오자마자 하나님은 나를 빡세게 굴리기 시작하셨다. 원래는 코빼기도 안비쳤을 순모임을 나가라 하시질 않으신가, 별 교회와 다를 바 없는 밀알을 마음에 들게 하시질 않나, 지킴을 가게 하실질 않나, 이러니 내가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밀알 한국 청년부는 나에게는 정말 맞지 않는 곳이다. 애초에 난 한국 찬양을 잘 모른다. 거의 8개월 가까이 한국예배를 드렸는데도 나는 툭하면 영어 찬양이 나온다. 이젠 마음껏 부를수도 없다. 혼자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앞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뒤에 앉을라다가 눈치가 보여 이젠 그것도 못하겠다. 한국 가사만 있으면 영어 가사를 찾아 부르고 싶은데, 주변에 반짝이는 물건을 손에 쥐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는가. 심지어 뒤에는 마치 보초병처럼 사람들이 쭉 늘어져 있다. 게다가 밀알은 나에겐 너무 친절한 곳이다. 나는 그냥 귀신처럼, 투명인간 처럼, 터렛없는 테란 털러가는 다크템플러처럼 슥 왔다가 슥 사라지는 것이 익숙한데, 여기는 나를 둘째 주 부터 가만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다른 새신자 말을 들어보면 안그랬다는데 왜 나만 붙잡고 늘어졌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는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교회에 남아있게 되긴 했지만.  


또 나는 한국 설교를 들으면 자동으로 졸리다. 멍하니 있게 되고 집중을 잘 못하는 나지만 빤히 앞을 보며 같은 자세로 멍때리는 법을 숙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청강하고 있는 줄 안다. 나는 보통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노트를 적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원어도 찾아보고, 다른 구절도 찾아보고, 그런데 이렇게 하면 역시 주변 눈치가 보인다. 내 옆에 앉은 사람들은 흘긋거리며 내가 뭘 하고 있나 곁눈질 하기 일쑤고, 내가 히브리어, 헬라어 라는 외계어 따위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눈썹은 올라가고 코 역시 살짝 커지는, 일명 비웃음과 신기함이 섞인 바디 랭귀지를 약 0.73초 동안 보여주며 고개를 돌린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도 내가 궁금한걸 보는 것이지 설교를 엄청 잘 듣는게 아니라는 것과, 멍때리는 것도 설교를 딱히 잘 듣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고려해 볼때, 나는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멍때리기를 선택했고, 그 결과 나는 어째서 교회를 가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약 30000배 정도 늘었다.  


나는 애초에 교회를 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제대로 놓지 못했다. 많은 목사님에게, 선생님들에게, 혹은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번 물어보았지만 대부분 여느 사람에게 물어봤을때나 동일하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 하거나 매우 놀란 표정으로 "어멋! 어떻게 저렇게 잘 큰 아이가 교회를 안간다고 할 수 있지? 이건 분명 사탄의 술수야"라는 표정으로 안타깝게 보며 기도를 해보라는 둥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둥 이상한 답변만 제시하곤 한다. 그래서 난 교회를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오타와에서 교회를 갔던 이유는 맛있는 밥과 좋은 찬양시간 때문이였다고 해도 거짓이 아닌듯 싶다. 이상하게 오타와 교회 국밥은 다른 교회의 국밥 보다 맛있었고, 찬양 역시 내가 토론토에서 다녔던 본 한인교회의 찬양법과 비스무레 해서 익숙해지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방식으로 거진 8년을 찬양을 했는데, 하나님의 강요인지 뭔지는 몰라도 나의 찬양 방식을 바꾸기를 강요받는 중이다. 찬양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이다. 애초에 한국어로만 하는 찬양, 한국어가 더 편한 다수가 있는 회당에서 영어로, 음정과 박자가 안맞으며, 심지어 목소리도 큰데, 노래를 질러제끼면 다른 신도들의 예민하신 이부들이 어찌 찬양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겠는가. 미천한 거렁뱅이는 뒤로 은근슬쩍 물러나 돌아가는 판이나 살펴야지. 


이미 한명 이상 나에게 방해가 된다고 한 적이 있어 예전처럼 가려져있는 건물 공격 눌러놓은 러커마냥 병력 뒤편에 앉아 있으려 했지만, 망했다. 오타와에서도 눈치가 보여 혼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크다고 한 소리 들은 적이 있어 뒤에 앉으려 했지만 목사님이 손수 앞으로 나가라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앉으라고 하셔서 노래를 부르지 않거나 나름 구석에서 혼자 앉곤 했는데, 이래서 인생은 리플레이의 연속이라고  하는건가.  


어째 실험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넋두리가 된 느낌이다. 여튼 나는 이런 편안한 실험실에서 한 1년 쉬다 오고 싶은데, 또 그렇게 할만한 곳을 찾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반발이다. 300명 처럼 느껴지는 3명이 나에게 가지 말라,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야기 하며 내가 영어 찬양 질러제끼는 목소리의 10배 이상으로 이야기를 하니 나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난 늘 압도 당하는 입장인지, 이걸 순종하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닌지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나는 내가 다녔던 모든 실험실, 그러니까 4개의 실험실에서 예쁘고 착하고 몸매 좋으신 여성분을 한명 이상 만나보았다. W교수님에게는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필리핀 계열의 피부색을 가지신 아리따우신 누님이 계셨고, N교수님에게는 R이라는 착하고 예쁜 누나가 있었다. 이번에 가고 싶은 곳 주변에도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이상하게 실험실에는 청순풍의 지적인 누님들이 존재한다는 기이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신기한건 이 우연은 내가 다닌 4 실험실 말고 몰래 염탐한 약 20개의 실험실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그냥 이상한 결론 내리기에 재미가 들렸기에 나는 남성분들이 예쁜 여성분이 비율적으로 월등히 많은 실험실을 교회 대신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제에 벗어난 글들을 매장을 시켜야 겠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리서치를 제외한 글은 아마 페북에 올리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올린 글들이 읽혀지는 것은 마냥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대 형성과 따뜻한 위로를 바라며 쓴 일기가 아니기에, 그리고 페북에서는 더 이상 내가 원하던 레벨 딱 그 수준의 반응만을 받지 않기에 브런치나 한동안 돌리지 않고 있던 내 블로그를 좀 더 활성화 시키는 쪽으로 갈 듯 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지 어연 1년이 막 지났는데, 염치불구하고 다시 소생시킬까 하는 생각도 든다. 리서치 역시 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기는 한다. 리서치는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생각해 보도록 해야지.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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