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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Jul 13. 2017

일기 - 나는

갑작스런 일기

나는 붉게 타오르는 불빛을 좋아하지도, 텅빈 공사장을 좋아하지도,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성경에 대해 찾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사실 좋아하는 것이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밑으로, 바닥으로 슝 내려가는 것도, 큰 빌딩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걸어다는 것도, 반 벗은 여자들 사이에서 해맑게 수영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썼던 글 지우고 다시 쓰는 것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짜증을 내는 것도, 어두운 하늘을 보며 웃는 것도, 밤하늘 별을 보는 것 또한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걸어가기 무서운 높은 곳에서 내가 늘 좋다고 이야기한 사람없는 공사장을 바라보니 이 모든게 나 혼자 있음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높은 곳을 매우 무서워 한다. 공사하는 곳 윗부분이 보고싶어 짧은 레일을, 별로 높지 않는 곳 위를 지나가려 혼자 마음먹는 대에는 거진 15분이 걸렸다. 넘어지면 어찌할까, 내 랩톱이 떨어지면 어쩔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알수 없이 몸이 흔들리며,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타이핑을 칠 뿐인데, 내가 앉은 이 레일은 생각보다 넓은데 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한 느낌을, 흔들리는 위태위태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내가 왜  청바지를 입고 올라와 내려가지도 못하는 곳에, 뛰어야만 하는 이곳에 왔는지 후회 반, 희열 반, 그리고 내가 지금 폰을 빌려드려 그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섞여 내려가야만 하는 나를 조롱하듯 쳐다본다. 


내가 좋아하는건 아마 사람일게다. 공사장을 보며 이야기 하고, 밤길에 대해 설명하고, 바다에 대해 자랑하고 성경에 대해 나누는 것, 이 어떤 것도 내가 혼자 있음을 전제해 버린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신이 인간을 홀로 두는 것이 안타까웠다 라는 말이 이보다 더 공감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비로소 혼자가 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을때 그들은 비로소 왕따가 된다. 아, 이 아름다운 곳의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는 건, 이 분위기를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건 역시나 지루하고 심심하며 의미없는 일이다. 오랜만의 즐거움은 늘 있는 외로움에 밀려 찐따 어린아이 처럼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소통의 부재에 빛을 잃어가고, 나를 멋지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나의 새가슴이 철저히 무시해 버린다. 


사람이 혼자 살지 못한다는 건 보통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라 생각되곤 한다. 나는 반대한다. 사람은 아내 남편 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다. 가족만 보고 가족만 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장난치고 웃고 떠들수 없는 신은 둘째치고, 내가 편안히 이야기 할 사람, 심심할 때 겜이나 한판 할 사람, 졸릴때 전화 할 사람, 담배피고 싶을 때 몰래 한까치 건내주는 사람, 그리고 그 담배 준 사람을 후들겨 패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응어리를 토해낼 사람, 횐 불덩이를 붉게 바꾸는 사람, 차가운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사람, 무거운 감자를 같이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 감자를 가지고 튀는 사람도 역시나 있으면 재밌다. 


아 이제 나는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뛰어야 할까, 다치진 않을까, 다리를 삐면 어떻하지? 아 비가 올 것 같은데, 나 우산 없는데. 빌려줄 사람도 없고 연락할 수도 없네. 커버도 안가져와서 가방이 젖으면 이 글을 적은 랩톱도 젖고 젖어 기억상실에 걸릴텐데, 보랗고 하얀 바탕이 글이 파랗고 하얀 글씨로 바뀔텐데. 그렇다고 집, 그래 마이 홈. 그곳으로 가지 않을 수는 없는데. 아 눈앞에서 전봇대가 갑자기 쓰러졌다. 미친. 저녀석 방향만 90도 바꿨으면 내 머리로 떨어지는 건데. 와 저기 저 사람 진짜 위험했는데. 


쓰잘떼기 없는 생각들로 내려가야한다는 생각을 미루려 하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아 바로 옆에 계단이구나.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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