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
부제: 뀨...
나는 항상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매우 단순해서, 그리고 매우 비슷해서 방법만 안다면야 그 사람의 생각, 사고방식, 행동을 유추해 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의 틀 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그 틀만 알아낸다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이다. 물론, 여전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않기에 되려 특정 감정을 부추겨 특정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워갈 수록, 그렇게 단순하지 많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단순하긴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 좀 더 가까운 표현이려나?
사실 제일 어려운 것은 여자와 남자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다. 남자들은 너무 단순해서 심리학에서 다 다룰 수 있지만 여자는 복잡해서 따로 배워야한다는 욕대학의 우스겟소리도, 어쩌면 헛말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리학은 애초에 남성들이 남자들을 분석하며 나온 학문이라, 여성에 대한 것은 옳지 않을 때가 많다. 애초에 여성 심리의 시초는 1900년대 초중반 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라, 어쩌면 평생 남자만 공부해오던 나에게 이성이란 참 어렵고 이상한 상상의 동물 기린과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 별명이 기린인데…
나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는 여성이였던 것 같다. 논리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아빠, 그리고 감정적 사고를 등한시하는 영재 교육 등등, 머리로 이해하고 머리로 행동하는 나에게 나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이해의 영역이지 공감의 영역은 아니였고, 감정이 상해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익숙한 남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통하지만, 감정이 상하면 때려쳐도 되는 상황이 더 익숙한 여성들이랑 잘 안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체계적인 곳, 군대를 다녀오신 형들이나 조직문화를 경험해 본 사람들과 더 이야기가 잘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감정으로, 이유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그리도 무시하고, 자기 감정하나 못 다스린다고 조롱했나보다.
나는 화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짜증내는 것이 아닌 분노 말이다. 내가 화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진짜로 화내는 걸 본 사람은 몇 안된다. 일단 화가 나면 그 자리를 반드시 피하기에, 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난다. 심지어 때로는 나의 감정적인 모습조차 이정도 까지는 허용이 된다고 계산 한 후에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래서, 그래서 더 쉬이 상처받고, 쉬이 짜증내고, 감정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조차 안해주는 경우가 많다. 대놓고 무시 안하면 다행이지.. 하지만 태도는 상황에 따라서 바뀌어야 하고, 이 태도 밖에는 취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다. 분명, 무시하고 깔보고 내리까는 행동이 기독교적으로 필요 할 때가 있다. 예수도 자신이 아끼는 베드로의 말을 씹기도 하셨듯이. 하지만 공감하지 못한다? 그건, 문제다.
최근에야 깨달은 것은, 나는 큰 것들, 틀에 잡힌 것들, 경험한 것에 있어서는 미친 재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은 큰 틀이다. 분위기 조성, 라포르 형성, 어텐션 그래빙만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최대 10명까지는 한번에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친해지고 가까워지면 문제가 생긴다. 나는 그렇게 가까운 관계들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사실 여전히 나의 가장 친했던 기억들은 과거의 기억들이고, 이것들은 제대로 된, 올바른 친밀감과 관계 형성법이 아니다. 관계가 가까워 질 수록 작은 디테일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은 듯 싶다. 그래서 나는 관계 유지에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를 보인다. 해본적이 없기에 해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서 AI 데이터 베이스에 좀 더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뒤틀리고 얕은 관계, 망한 연애의 시뮬레이션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나는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면 할 줄 몰라서… 이성문제도 마찬가지다. 내가 본 이성관계는 다 부적절한 관계거나, 무너져 가는 관계거나, 무너진 관계였다. 평범한 공무원, 경찰, 선생, 변호사, 의사, 뭐 이런 사람들이 미성년자들에게 달려드는 꼴을 너무 어릴 때 봐서, 또 엄청난 정글의 세계를 목격하기도 해서, 그렇지 않은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거? 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대화가 안되면 안절부절하고, 다른 사람과 있으면 신뢰가 안가고… 여전히 사람, 연인을 믿는 법을 모르겠단 말이지 ; 호박씨를 까는게 얼마나 쉬운지 이 사람들은 모르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서로 신뢰가 있는 관계들이 참 부럽고, 대단하고, 멋진 것 같다. 분명 저정도로 신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라면, 미친 콩깍지가 씌이거나, 진짜로 믿음을 줄 만한 사람들이 만났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어쩌면 내가 그런 등신같은 관계들만 만난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여서, 가 맞지 않을까 싶다.
이 놈 이래서 결혼은 하것나 그래..
그래, 그래서 작은 것들, 아니 작게만 보이는 것들, 또 경험치 못한 것에 있어서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 되어버린다. 세상은 넓고 관계는 다양하건만, 나는 내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나한테 왜 그걸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고찰해 보지는 않고 아, 그냥 친해지지 말라는 의미군. 거리를 둬야겠어, 라고 생각만 했으니. 신은 나에게 get out of the comfort zone! 편한 삶에서 나와! 라고 이야기 하신다. 분명 나의 이 재능은 쓰여질 곳이 많다. 처음 보는 새가족을 챙긴다던지, 아니면 여름성경학교 같은 것을 한다던지, 뭐 선교를 간다던지.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다. 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그걸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그 기도를 이쁘게 보신 것인지, 그것들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간다.
길고, 예리하고, 단단한 칼에서, 넓고, 튼튼하고, 밸런스 잡힌 방패로.
나의 분석은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관계에 있다. 나는 나의 정보가 누군가에게 전달만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소식이 들려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논리적이나 지극히 나의 경험과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기에, 나는 내 소식을 굳이 직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했다. 대충 누군가에게 슬쩍 정보를 흘려 놓으면, 어차피 소식과 소문이 난무하는 곳, 이곳은 정글이라 불리는 교회이기에, 혹은 사회이기에, 결국 귀에 들어갈 것이라고. 궁금하면 먼저 물어보면 되지, 본인이 안물어 놓고 섭섭하다고 하는지, 그 뭔 호랑이 풀뜯는 소린지..
그게 기분이 왜 나쁜지, 왜 서운하고 섭섭한지, 나는 잘 몰랐다. 나는 소식이라도 들렸으면 감사한 관계들이 많았고, 한달에 한두번 들려오는 소식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내적 친밀감", 이놈이 문제다. 같이 싸우고, 먹고, 마시고, 놀고, 웃고, 떠드는 그 어떤 관계도 아직 나에게 그 사람들 보다 더 큰 "내적 친밀감"을 준 존재들은 없었다. 비록 이제는 없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나는 그래, 그랬다. 소식이 들리면 할렐루야. 이제 안들릴 것을 알면서도, 가끔가다 으슥한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아는게 틀렸기를 바라는 그 마음 때문일지도. 어쩌면 가장 뒤틀렸으면서도 가장 가까웠던 기억의 파편들이 뇌리에 박혀 고작 죄로써 맺어진 관계조차 이기지 못하는 기독교인들간의 관계가 한없이 우습고, 가소롭고, 작아보이기만 했는지도. 그렇게 가끔 오는 연락들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또 연락이 오지 않아도 그려려니. 그 그려려니라는 말로 상처받은 내 모습을 숨기고, 참고, 또 그런 두 사람이 만나면 그려려니 그려려니 하다가 그년놈이 하게 되는걸지도..
누군가에게 나는 관계와 분석의 귀재이다. 그래, 분명 내가 잘하는 것이 있긴 하다. 나는 이제서야 그 작은 것들이 중요하구나, 라는 것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작은 공동체가 더 가깝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들어올땐 마음대로지만 나갈땐 아니라는 것도 무슨 말인지…
소방차는 빨간 불에 멈추지 않아!
사실 개그도 마찬가지다. 큰 것, 소방차, 빨간 불, 멈춤에 대해서만 알면, 저 농에 큭큭댈 일도 없다. 뭘 의미하는지, 그 뒷 이야기와 숨은 이야기들을 알아야 재밌는거지.
그렇게 큰 것만 보고 작은 것을 못 보는, 아니 의미를 두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큰 것만 보여주셨다. 네가 작은 것을 중요하게 할 때, 나는 네게 작은 것을 맡길거란다, 라는 그의 마음. 나는 큰 것만 잘해서 큰 것만 맡았다. 하지만 신에게는 크고 다름의 차이가 없으며, 앞에서 적군의 모가지를 따던, 뒤에서 모가지 따인 사람들을 힐 하던,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같은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는 내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그는 어? 큰거 잘하네? 그럼 큰거 하지마. 작은거 해. 작은거 배워! 이러신단 말이지..
2021은 내가 잘 하는 큰 것들을 배우고 하는 한 해였다. 3개월 마다 한번씩, 하나님이 이야기 하셨듯 큰 일들을 겪고, 보고, 배웠는데, 2022, 이번년도는 젠장, 2개월에 한번씩이란다. 주기가 짧아질 수록, 디테일, 작은 것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에, 나는 다시금 기억하고, 바라보고, 믿으려고 한다.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마음, 작은 보석을 캐 낼 수 있는 정교함.
작은 사람의 작은 사랑, 작은 사랑의 작은 열정, 그리고 그 작은 열정의 작은 노력들. 그것들이 하나 둘 모여 별과 같은 빛을 내는 곳. 그게 교회인가보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