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의 묵상집
18.09.24
야고보서 1장 1-18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껴 힘들고 지칠 때 각자 어떤 생각을 제일 먼저 하나요? 자신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린 적이 있나요?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시며 각 사람의 시험이 자신의 욕망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욕망이 나를 시험하는지 생각해보고 각자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 1절-2절은 1장 12절 - 14절과 비슷하게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 인내로 이어져서 우리가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는 어떤 상황에도 족할 수 있는 바울의 말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각자 어떤 욕망이 나로 하여금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있는지, 그 욕망을 없애면 무엇으로부터 해방될까요?
저는 하나님이 저를 책망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았고 또 실패 했으니 하나님은 당연히 실망하시겠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직장 상사"와 비슷합니다. 일을 시키고 잘 못하면 부하를 혼내는, 그런 이미지죠. 하지만 본문에서의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면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나와있습니다. 이 꾸짖지 않음이 지혜에만 국한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의 예시와 같이 하나님이 특별히 "지혜"라는 것을 높게 사시는 것일 수도 있기에 아직 무언가를 구하기에 망설여 지는 것 같아요. 여전히 하나님은 꾸짖고 책망하시며 실망하시는 하나님인 것 같아요.
제일 많이 하는 책임전가에는 "제가 기도했잖아요!" 인거 같아요. 기도를 했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이상한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이건 하나님이 시험하시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이 시험에 통과한 자신을 높인 적도 있어요. 아무래도 제 욕망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공부 잘하는 것 처럼, 믿음이 좋지 못해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교회 오빠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는 거죠. 마술쇼를 한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에요. 타인의 생각을 읽어낸다 라는 느낌, 혹은 친해지기 쉽다는 칭찬이며 인정이고, "능력"으로 인정받으니까요. 어쩌면 필요 없는 부분에서도 인정을 받고 싶어서 진짜 필요한 부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당장 인정을 받기 위해 미래에 해야하고 챙겨야 할 부분을 미루며 현재 받아야 하는 책망을 회피하기 위해 미래를 깎아먹는 행동을 하는 것 처럼요. 저는 그렇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좋은 사람이 아니게 보여도 상관 없는 강인한 마음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도미니카 선교의 멋쟁이 선교사님 처럼 자신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한다면 힘들고 상처받더라도 그것을 깡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그것을 사랑으로, 나에 대한 사랑과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랑으로 변화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질문을 쓴 이유는 제가 부족함이 없었던 때를 기억하며 쓴 질문이에요. 도미니카 때 덥고 힘들었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없었거든요. 물자가 부족할 것 같았을 때도, 사람이 부족할 것 같았을 때도 하나님은 알아서, 정말로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어요. 하지만 캐나다로 돌아오니 돌연 한가지 욕망이 수면위로 떠올랐어요. 바로 "편하고 싶은" 욕망인데, 이걸 나태라고 부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저 "도망치고 싶은" 욕망일수도 있는 것 같아요. 선교에서 편하지 않고 미친듯이 일 했어도 행복했던걸, 지금 편한 것 보다 그때가 더 행복했음을 알고 있지만 이 빌어먹을 대가리는 일단 안된다고, 그때는 선교였어서 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22년을 이따구로 살아왔기에 머릿속의 말이 진실인 것 같아요. 분명 그때 생각을 하면 힘든 것을 걱정 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는 있는데, 이미 머릿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 관련 일을 할 때만 주어진다는 이상한 공식이 박혀 있어서 그의 은혜를 생활속에서 구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18.09.25
로마서 1장
인사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혈통에서 나셨고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2)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롬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롬 1:8)○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롬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롬 1: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롬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롬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롬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롬 1:14) 헬라인이나 3)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ㄱ)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Q1.로마서 1장 21-22절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지 반성해 보고, 마땅히 감사해야하나 감사하지 않은 일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우리가 불평할 것만 하고 힘든 것만 토로하고 도무지 감사하지 않으며 고집은 똥구멍같이 쎄서 말도 안 듣는 핵폐기물들입니다. 이 노답 핵폐기물들을 친히 거둬주신 하나님께 마땅한 감사를 드립시다.
사실 하나님을 어떤 때에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했습니다. 게임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수도 있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영화로울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누군가에게 영광 돌린다 라는 생각과 연결지어서 볼 때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 때 타인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나만 품고 있는 것, 혹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들과만 이야기 하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은 영화롭지 않게 하는 것 같아요.
생각을 해보면 HJ 누님을 만난 것도 저는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만일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저는 제가 실패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다 아는 제레미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까요. 힘들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제가 타개할 수 없는 사람들은 피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힘들게 하셔도 그들의 행동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하는가는 잘 모르겠어요. 만일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도망치고 나약한 모습은 별로 감사하지 않게 되는 것 같네요.
Q2.우리는 교만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 찌그레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쓰레기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올웨이즈 항상 에브리타임 교만에 차있습니다. 우리는 어째서 스스로를 지혜있다 여기게 되는 것일까요? 최근 교만에 빠진 적이 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의 신봉과 그 사람들의 칭찬이 좋아서 지혜있게 보이고 싶고 사람들을 속여가면서 얻는 칭찬에 본인을 속이는 것 같아요.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도피처로 삼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부족한 부분, 공부라던지 공부라던지 공부 같은 것들을 피하고 내가 잘하는 일들에 얽매여 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온전한 변화가 있었던 그 때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 언어가 다르거나 반쪽짜리 이야기 밖에 못할 때, 내 능력이 반토막이 나서 불완전 해서 나를 믿지 못했을 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말, 예수는 당신을 사랑한다 라는 말로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봤음에도 마치 그 기적을 제 지식으로 replicate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자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전하지 않고도 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마치 정말 신의 경지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또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지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지식은 그저 하나님 이야기를 거부감 없게, 듣고 싶게 하는 역할만을 할 뿐이라는 것을 예은양과 이야기를 할 때 다시금 깨닫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하나님은 제게 여러가지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선택지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가능한 방향만 보여주시는 하나님. 오늘 설교에 목사님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디로, 무엇을 할 지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의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온전히 하나님만 따를 수 있게 하시려고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알고 있는 것이 없었기에 그를 통한 일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은혜란 따라가는 것임을 알고, 보고, 배웠는데도 여전히 제 힘으로 하나님의 길을 replicate하려고, 그분이 보는 것을 온전히 보고 따라하는, 관찰자와 이행자가 아닌 관리자가 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교만하지 않는 방법은 아직 그러므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순간순간 자만하지 않았기에 가진 것이 적어지거나 그를 신뢰할 수 밖에 없는, 도와주고 싶지만 전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반복됨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