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03.25.2020
우리는 주의 성전이라.
성경을 보면 성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서 만들어 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출애굽기를 보라. 수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서 사람들은 성전을 만들어낸다. 성전은 크게 두가지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하나님이 거주하시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 또한 적혀 있다.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고 성전에 들어가 적혀진 대로, 주어진 사명대로, 자신의 일을 해내어 간다.
나는 이 성전과, 제사장이라는 묘사가 참으로 신기했다. 성전은 기독교인인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가 머무는 곳. 그러니 곧 신이 머무는 곳, 성전이라.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제사장이라, 고도 부르고 있다. 제사장이라, 우리는 제사장이라. 제사장의 의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즉 우리는 우리 안에 거주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한다.
09.08.2020
1절은 하나님의 때를 말씀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그 때"를 명확히 알 수 없다. 무언가 환상을 보는 사람들도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때로는 조건부요 때로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지는 일들이지만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나는 하루 빨리 "그 떄" 들이 오기만을, 기대한다.
2절의 칼에서 벗어난, 광야에서 은혜를 얻은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안식을 얻게 허락하셨을 때 비로소 쉼을,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그 때"는 13절에도 나온다. 여호와께서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을 때, 처녀는 춤추고 즐거워하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라, 라는. 처녀의 definition 에 대해서 조금 더 묵상해 보았다. 순결함의 의미. 순결은 대개 강압적으로 잃게 되거나 자의로 인하여 잃게 된다. 주변 환경에 의하여 죄를 짓게 된 것은 강압된 것이요, 내가 묵상보다 우상을 우선시 하는 것은 자의로 잃는 것이라. 그러나 여호와가, 하나님이 나를 강압된 자의 손에서, 또 우상으로부터 구속하셨을 때, 비로소 나는 자유하게 되고 공동체가 회복되며, 처녀, 즉 순결한 자들이 기뻐 할 수 있게 된다.
14절을 보자. 하나님은 분명 니들의 제사만으로 내가 기뻐하는 줄 아냐고 하셨다. 14절은 하나님의 흡족함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본인이 제사장들을 흡족케 한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신은 분명 그리 말했다. 마음, 사랑 없이 행하는 제사는 자신을 만족 시키지 않는다고. 그는 마음, 중심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신다. 그런 그가 제사장, 즉 "왕 같은 제사장"인 기독교인들에게 내가 너의 심령을 흡족케 하고 은혜로 만족케 한다고 약속하셨다. 그는, 그가 거짓없는 신이라는 가정 하에, 분명 마음을 다하여 우리 한명 한명을 보살피실 것이다.
15, 16절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전형적인 부모들은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기 위해 때리거나 다그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왜 그렇게 시끄럽게 울고 있냐고, 언능 그치지 못하겠냐고 소리치지며 우리를 치시지 않으신다. 그는 되려 위로하시고, 자신의 약속을 보게 하시고, 보듬어 주신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다그치시고, 소리치시는 부모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다그쳤다면, 우리는 이미 사지가 찢겨 정신만 살아있는, 뭐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으나 그러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18, 19, 20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진심어린 탄식을 한다. 하나님, 나는 너무 악에 깊이 빠져있었고, 여전히 있어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법을 모릅니다. 무엇이 옳은 행위인지,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 나는 나 스스로 판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끌어 주소서, 내가 주저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따르리이다. 이것이 18절의 탄식이다. 에브라임은 자신의 판단이 죄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다분히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선의 기준인 하나님에게 돌이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신이 돌이켜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 스스로 돌이키지 않을 것을, 아니 못할 것을 아는 자의 절규요, 간절한 외침이렸다.
19절에서 에브라임은 내가 그 과거로부터 아예 돌아섰다는, 용서 받음, 죄 사함 입음의 회개가 아닌 죄의 길로부터 돌아선 회개의 고백을 한다. 흔히 고통은 욕망을 제어하는데 쓸모가 있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자고 싶은 마음, 성적인 욕구, 타인을 해하고 싶은 욕구, 구매 충동, 나태함,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 곧 유혹들은 "볼기를 침" 즉 고통을 겪더라도 그 순간에 넘어가지 않고 죄의 충동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과거가 부끄럽기 때문에. 다시는, 죽어도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 하나로, 그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하나님의 마음을 매료시켜 버린다. 돌이킴을 얻고 뉘우침, 교훈을 받고 자해를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는 것, 즉 그 끈기, 각오, 용기, 그리고 그 필사적인, 하나님 앞에서의,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의 몸부림. 내가 몸이 아작나도 죄는 짓지 않으렵니다, 주께서 건지셨으니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절규. 에브라임에게 그 유혹, 교만함과 우상숭배가 과연 없어졌을까, 그가 자해를 해야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지 않음을, 유혹은 늘 거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짧디 짧지만 어쩌면 내 마음에 와닿는 이 고백을 듣고 하나님은, 그 하나님이, 측은함을 느끼신댄다. 하나님이 책망 하실 때 마다 깊이 생각하셨단다. 그리고 반드시, 긍휼이 여기시는데, 그 이유는 이 고백을 한 에브라임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라서 그러하다신다. 교만과 우상숭배로 한 나라를 힘들게 한 에브라임인데, 그래도 하나님은 그 절규 하나에 마음이 녹아져 내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다.
21절의 하나님은 마치 명령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의 간구로 들렸다. 네가 계속 그쪽으로 가면, 나는 너를 때릴 수 밖에 없어. 나는 너에게 저주를 내릴 수 밖에 없어. 나는 네가 잘 되기를 원하고, 축복을 해주고, 네가 행복하고 사랑받으며 살기를 원해. 하지만, 하지만 네가 자꾸 죄와 자유를 원하니 나는 선택지가 없구나. 아아, 처녀 이스라엘아, 나의 딸 된 이스라엘아, 길표를 세우렴. 내 말씀으로 표를 세우고 이정표를 만들렴. 내 딸아, 다시 돌아오렴,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는 성읍으로, 집으로 돌아오렴.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야기 한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딸아, 언제까지 나를 떠나 있으려고 하니? 네가 너를 해하려 했던 그 모든 이방나라, 곧 남자들을 품고 이끌게 하고 싶은데, 내가 새 일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너는 언제까지 나를 떠나 있으려고 하니?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언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꿈", 즉 비젼이다. 그는 신이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느정도는 존중해 주시는 신인지라, 인간이 안한다고 쌩 난리를 치면 그래, 그냥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 이루자, 하시기도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33, 34절은 하나님의 꿈이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 가서 온 나라와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라, 라는 명령과도 일치한다. 하나님의 법이, 이웃, 형제, 작은 자, 큰 자 할 것 없이 그들의 속에 있고 마음에 기록되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세상. 어쩌면 죄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그래서 천국을 약속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꿈.
30절이 츤데례 하나님 이였다면 31절은 매달리는 하나님 같다. 잘못해도 아내를 사랑하매 용서 할 수 밖에 없는 호세아의 아픈 마음과도 같다. 주여, 죄송해요, 하면 그 큰 마음 아파 하시다가도 에효, 그래, 이번엔 저번보다는 좀 나았다, 좀 더 해보자, 하시면서 으쌰 으쌰 하시는 하나님. 그래, 그는 그런 하나님 이시다.
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에브라임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였기에,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셨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미 죄 사함 받은 걸로 나와 타인을 정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정표를 세워서, 돌아가야 하면 돌아가고, 나아가야 하면 나아가는, 하나님! 으로 무장된 삶. 그것이 유혹을 한번, 두번, 열번, 천번 이겨내 호세아의 아내가 아닌 남편이 되고, 호세아의 아내가 아닌 아내를 가진 가정을 이루는 유일한 방도렸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