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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Mar 06. 2024

아빠의 역할

숨죽이고 가만히 있으라고?

'엄마표 영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아빠의 역할이 있다. 물론 '아빠표 영어'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아침부터 나가서 저녁에 돌아와 집에서 쉬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아빠들이라면 우리 남편과 비슷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첫째가 아기 때는 거의 혼자 육아를 도맡았지만, 아이가 둘이 되면서 남편이 육아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애들과 잘 놀아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기대치가 높았다.


해외근무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사는 2년 동안 빈자리를 엄마표 영어 혹은 독서, 쓰기 등의 것으로 채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실에는 책과 큰 테이블 하나만 있었고, 나와 아이들은 함께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했다. 남편이 돌아왔다. 거실에는 남편이 편하게 쉴 공간이 없었다. 거실 테이블에 넷이 앉아 있으면 남편은 몹시 불편하다고 했다.


영어 오디오북을 듣고 있거나, 영어 낭독을 하면 좀 시끄러운 편인데, 우리는 서로 적응된 상태였지만 남편은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또,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경우, 나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남편은 휴대폰과 태블릿을 들고 슬며시 다른 곳으로 갔다.


-아이들 앞에서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좀 보여주면 안 돼?


이 말은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늘 하는 말이 되었다.


그럼 돌아오는 답변은 책을 읽고 싶지 않다, 였다.

남편은 항상 일관되게 말했다.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 안 되냐고, 왜 네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자꾸 강요하냐고.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면 적어도 애들이 보는 앞에서는 게임을 하지 말아 줘. 그리고 영상을 보고 싶으면 방으로 들어가서 봐줘. 애들도 보고 싶어 하잖아.


그동안 어떻게 유지했던 루틴인데,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루틴을 조금씩 흔들었다.

나는 그 루틴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했다. 남편의 눈에 비친 나는 애 교육에 목매는 열성 엄마였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사냐는 말도 들었다.


'우리 때는'.....이라는 '라떼'발언도 서슴지 않고 하는 남편과 같은 문제로 정말 많이 얘기했다. 사이좋게 얘기한 게 아니라 싸움 수준이었다. 그리고 휴전 상황이 되었다. 서로의 영역을 건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할 시간이 되면 이제 할 거 하라고, 직접 나서서 한계선을 그어주었으며, 공부시간이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놀아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휴전협정으로 인해 엄마표 영어 혹은 엄마표 공부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엄마표 영어를 할 때 아빠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옆에서 하지 마라고만 안 하면 된다.


그냥 지켜봐 주면 된다.


한 번씩 잘하고 있네,라고 말해주면 더 힘이 난다.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나를 격려해 줄 때 사실 엄청 고마웠다.


한편으론 남편이 퇴근하고 올 시간이 항상 애들 공부시간이라, 공부 봐주느라 남편에게 신경 써주지 못한 점이 계속 미안했다.


애들이 스스로 공부할 시기가 오면, 우리는 또 다른 부모 역할로 모습을 바꿀 것이다.

이제 한 가지 역할에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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