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은율 Mar 11. 2024

아버님의 편지

내 이름은 이쁜이


오랜만에 옛사진을 모아둔 상자를 꺼내보았다. 이사온 이후 처음이다. 그 상자에는 남편과의 연애시절, 남편의 대학 졸업, 나의 대학원 졸업, 첫아이의 탄생, 100일, 돌사진, 둘째 아이의 탄생, 50일, 100일, 가족 사진, 여행 사진, 남편이 내게 주었던 편지 등이 모조리 담겨 있다. 또 나와 친분이 있었던 이들의 증명사진도 함께 존재한다. 나는 그 상자를 자주는 아니지만 한번씩 꺼내서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 본다. 또 나의 오래전 모습도 들여다 본다. 그것은 마치 전생처럼 여겨진다. 나의 전생은 이랬구나, 그리고 현생은 이러하지.


순수했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신의 큰 눈망울을.

나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던 크고 맑았던 당신의 눈을.


사진과 사진 사이에서 여덟 번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발견하고 펼쳐보았다. 이것은 결혼식 날, 아버님이 내 손에 쥐어주신 편지다. 나는 아버님이 신혼여행 가서 커피 사서 마시라며 함께 넣어주신 돈보다 이 편지가 감동스러웠다.


아버님은 견례 이후부터 나를 이름 대신 '이쁜이'라고 불러주셨다. '이쁜이'라는 이름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쁜이'라고 불리워지는게 신기했다. 한번도 내 별명이 '이쁜이'였던 적이 없었기도 했고 (물론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남편은 나를 항상 예쁘다고 해주었지만...) 우리 아빠도 항상 이름을 불러주셨기에, 아버님이 불러주신 호칭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친정에 가서 아빠께 아버님이 '이쁜이'라고 불러주신다고 말했더니 아빠가 활짝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선 딸이 시댁에서 사랑받길 원한다. 아빠는 경상도 사람에다가 맏이로 태어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고, 제사, 아들, 친손주를 중요시 여기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나 역시 맏며느리로서 시댁에 도리를 잘 하기를 늘 원하셨다. (아빠는 내가 서운해하면 시댁이 아닌 잘못이라고 말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의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아버님의 이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내 감정이 다르다.


결혼식을 막 끝내고,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부부는 마냥 행복했다. 철없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하기만 할 거고, 우리의 사랑은 늘 메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사는 동안 우리는 꽤 많은 이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와 상관없는 몇 개의 사건을 겪었다.


메마를 것없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사랑에 금이 가는 순간도 있었으며, 이해하는 순간도 있었고, 다시 원망하는 순간도 생겨났다. 그리고 당신의 뒷모습이 슬퍼보이던 때가 있었다.


처음이었다. 당신은 늘 내게는 강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무 장작을 피우며 불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당신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울어는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당신의 등을 조우했던 날이다.


뒷모습이 각인되면,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당신에게서 사랑을 받았지만, 당신의 뒷모습을 껴안으면서 비로소 내 사랑을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되어서 고맙구나,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여라'

 

가족이란 무엇일까.

행복한 건 무엇일까.


아버님의 편지 덕분에 '가족'과 '행복', 이 둘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제는 나는 나 혼자서는 내가 아닌 게 된다.

당신과 두 아이를 통해 역으로 나의 존재를 가늠해 본다.


오래도록 함께 있자.

남은 생도 함께 하자.


그게 내 진심이다.


이전 07화 황달이라구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