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Der Faden

인터스텔라: 행성과 행성 사이의 일

Flora's Letter

by domado

*21년도에 적힌 글 *결말 및 스포일러 다수 포함



in1.jpeg
in2.jpeg


오늘은 인터스텔라 3차 관람의 날인 동시에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관람한 귀중한 날이다. 무려 아이맥스였다. 내 작은 방 안에서도 나를 우주 한가운데로 쏘아올리던 영화를 '무려아이맥스'(인터스텔라 한정 이건 한단어로 붙여써야한다)로 보는 경험은, 조종사 5호로 뽑혀 인듀어런스호에 올라타는 일에 버금갔다. 별과 행성이 눈 앞에 꽉 차게 쏟아지고, 영상과 탄생부터 하나인듯한 음악은 3시간동안 나를 대여섯번은 울렸다. 완벽한 영화를 완벽하게 보고나니 오묘한 짜증도 났다. 1000만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는게 싫었다. 나만 알고싶은데 죽어도 나만 알 수는 없는 영화라는 사실에 심술이 났다. 이런 영화 한편 만들었으면 놀란 감독은 재미고 뭐고 의미고 뭐고 그냥 만들고싶은 영화 다 만들면서 살아도되는거다. 근데 심지어 놀란은 인셉션도 만든 감독이고, 그 감독이 다크나이트도 만들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몹시 심술나고 행복하다.



in3.jpg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중 하나는 단연코 옥수수밭 추격전으로 가기 직전 머피와 쿠퍼의 대화이다. 머피의 법칙을 연상시키는 이름이 싫다는 딸에게, 그건 나쁜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라고 쿠퍼는 이야기한다. 결국 머피를 웃게만드는 그의 답은, 그들이 어떻게 다른 시간 다른 공간속에서도 함께 퍼즐을 풀어나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내내 반복해서 나오는 딜런 토마스 시의 한 구절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 있다. 머피는 그 깊어가는 밤을 순순히 받아들일 줄을 모르는 사람에 가깝다. 자꾸만 분노하고 의심하고 소리치고 질문한다. 그러면 쿠퍼는 답을 찾으러 기꺼이 떠나는 사람이다. 그 길엔 1시간이 7년이 되는 세계도, 출구를 모르는 입구로 들어가는 세계도 있지만 쿠퍼가 답을 찾아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그가 답을 찾을 것이라고 언제나 끝까지 믿는 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닭과 달걀같은 것이라 무엇도 무엇앞에 선행하지 않는다.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in4.jpg
in5.jpg
in6.jpg


머피의 법칙 대화가 끝나면 곧 옥수수밭추격전(Cornfield Chase)이라는 노래와 함께 옥수수밭 추격전이 시작된다. 여기서 음악이 터져나오는 순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를 흡! 하고 숨도 못쉬게 만드는데, 영화관에서 보니 가슴이 뛰기도 전에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웃는 마지막 모습이라 그렇다. 쿠퍼가 떠나고 남겨진 머피를 마음 찢어지게 한건 바로 이런 기억들일 것이다. 행복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기억이다. 동시에 그 틈에 켜켜이 쌓인 사랑들이 곧 '낙천적이고 옳은 일을 하는 주인공들이 별들 사이에서 구원의 길을 찾고, 또 다른 지구라는 작은 가능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각본 조나단 놀란의 말)를 만드는 전부가 된다.


인터스텔라라는 제목 이전에 가제로 사용되었던 제목은 Flora's Letter 였다고 하는데, 플로라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딸 이름이다. 플로라 놀란은 영화 중 먼지쌓인 트럭위에 앉아있는 아이로도 잠깐 출연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어린 머피와 닮았다 생각했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인터스텔라가 놀란의 그 어떤 영화보다 높은 온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은 영화의 한중심에 그와 그녀의 딸이 겹치기 때문이 아닐까 지레짐작해본다.


in7.jpg
'제시카 차스테인은 “하루는 어떤 여자애를 봤다. 수줍음이 많고 귀여운 아이였다. 내가 다가가니 아이가 자기 이름을 알려줬다. 알고 보니 놀란의 딸이었다. 모든 퍼즐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탐정 같이 수수께끼를 풀고 나서 나는 정말 감동받았다. ‘인터스텔라’는 (놀란이) 딸에게 보낸 편지였던 것이다”고 밝혔다.'


in9.jpg


"이런 식으로 나를 보내면 안돼, 이렇게는 안돼"

라고 반복하는 쿠퍼에게 끝내 작은 등을 돌리는 어린 머피를 보면 그런식으로는 보내지 말았어야 할 여러 마지막들이 떠오른다.



in10.jpg
in11.jpeg


나의 단 몇시간이 사랑하는 이에겐 몇십년으로 흐른다면, 서로의 생을 지켜보지 못하는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답하지 못한 몇십년치의 편지를 읽는 일도 그러하다. 그런 절망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저절로 상상할 수 있을만큼 큰 것이라 수많은 사람을 울린다. 그래도 이 영화가 다정한 것은, 서로 할퀴고 미워하고 오해하게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지표가 그는 나를 버렸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떠한 믿음으로(머피 오빠 톰이 아버지의 공간을 지키고 머피는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겐 톰이야말로 아버지를 영원히 상실했다고 여겨 오히려 아버지의 공간을 떠나지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방식으로 애도하듯이.) 여기까지 온 머피이다. 벽장 너머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있을 쿠퍼에게 답을 받았을 때, 아주 고전적으로 유레카! 하고 외친 것도 당연하다.


머피를 가장 괴로운 방으로 돌아오게 한 것도 결국 함께 옥수수밭을 가로지르며 달리던, 나란히 앉아 모래가루에 대한 것을 나눠적던 기억이었을 것이다. 어느 우주에 둥둥 표류하고 있을지, 죽었을지, 이걸 듣고는 있을지 모를 아버지 쿠퍼에게 당신은 알고있었냐고 울부짖다가도 머피를 아버지와의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는건 결국 그런 것들이다. 누구 하나의 희생을 통해 사랑을 증명하는대신, 반드시 해야만 했던 작별인사를 함께 나누게 해주어 좋다. 너무 절절하거나 너무 아쉽지 않게, 돌아올땐 서로 다르게 흐른 시간을 비교해보자던 약속이 지켜지는, 나는 아직 그런 이야기가 좋다.



in12.jpg


이 영화에 악인은 있나?

심기를 건드리는 이는 있다. 브랜드 교수의 거짓말에 동의할 수 없고, 브랜드의 딸 브랜드(브랜드 쥬니어..)가 밀러의 행성에서 보인 오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 박사는 자기가 사지로 몰아넣은 이의 죽는 모습은 차마 못보겠다며 여린 척 하는 모양새가 괘씸했다. 쿠퍼의 아들 톰도 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답답하다 싶었다. 영상과 음악에 충분히 다 감탄하고, 플롯을 쫓아가는데 더이상 급급하지 않아도 될 때부터 한명 한명의 인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 악은 없고 각자의 동기와 각자의 선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선 누가 더 선하고 악했는지는 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재는 것에 의미도 없다. 숨 쉴 수 있고, 다음이 존재하는 세상을 찾기위한 모두의 고군분투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다.


(그나저나 머피는 쿠퍼가 담긴 옥수수밭에 불을 질러서라도 다음으로 넘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의 외투를 입고.)



in13.png


브랜드의 말도 강력하다. 사랑은 우리의 발명품도 뭣도 아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고 관찰할 수 있고 언제나 강력한 무언가라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 온몸으로 체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주 잊혀지고 의심받고 상실되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론보다도 결국 사랑이라고 선언해주는, 그래서 에드먼즈의 행성이라는 과학자 브랜드의 선택이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행성으로 가는 쿠퍼의 선택도 이 영화답다. )


그리하여 인터스텔라가 마냥 말랑말랑한 영화가 아닌 것은, 완벽한 플랜 A의 실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주를 건너 찾으러온 사랑을 잃고, 작은 돌무덤을 만들어 애도하고, 그는 없는 그의 이름을 한 행성에서 올지 모를 다음을 기다리며 잠에드는 이가 이 영화의 결말이라 나는 인터스텔라에 마음을 둔다.

어디 저 멀리 에드먼즈성에서 동면하고 있을 브랜드가 떠오를때면 다시금 이 영화가 보고싶어진다.




inmu.png

음악 제목 하나하나도 정말 기가막히게 지었다. 한스 침머가 만들어온 음악에 영화의 심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던 놀란의 말이 분명 농담은 아니겠다. 귀에서 자꾸 틀지도 않은 노래가 맴돌아서 내가 핸드폰에 켜두었나 착각한다. 아이맥스로 보는 블랙홀은 엄청나게 선명했고 옥수수밭의 바람은 용산아이파크까지 불어오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가르강튀아.jpeg

영화가 끝난 후 내 방 창문에 찾아온 가르강튀아로 글을 마무리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