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Der Faden

T1, 구마유시, 3년의 로스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23년도-24년도 월즈 우승 이전의 이야기

by domado


*햇수로 5년차 T1 팬의 시점에서 2023년도 월즈 우승 직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 해 11월에 적힌 글

*무엇인가, 누군가의 팬이 되는건 참 멋진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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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말이 되면 미리 발표되는 그 해 월즈의 테마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이 노래의 주인이 우리 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며, 올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월즈가 끝난 후면 한동안은 다른 팀에게 돌아간 그 테마곡들을 듣지 못했다.



2) 21년의 준결승 패배 그리고 무엇보다 22년의 결승 패배 이후, 일년여간 여기저기서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슬로건을 마주칠 때 마다, 애써 그 멋진 말을 외면하며 절망으로 마무리 지어진 나의 응원을 내 속 깊은 곳 안으로, 더 안으로 감추었더랬다. 우리 팀의 패배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성취와 행복의 뒤편에 서있어야 할 때도 있다는걸 받아들이는 긴 과정처럼 느껴졌다.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고작 2년 반이라는 시간인데, 월즈 기간동안의 나는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간절했고, 월즈가 끝난 이후 무렵의 나는 대개 초라했다. 그래서 11월 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은 언제나 뭔가 지난했더랬다. 열망과 결과의 불균형 속에 팀의 패배와 내 응원의 패배와 내 개인으로서 삶의 패배들이 매번 사탕에 들러붙는 먼지들처럼 끈끈하게 얽히고 설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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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서 저번주에 릴리즈된 팀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참 보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의 패배 순간들이 담겨있었고 그건 내가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지난 날들이기도 했다. 결승전 부분이 나올때면 영상 화면을 보는대신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보지 말아야지 싶다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1시간 30분의 장편 다큐가 나온걸까 싶어 틀었는데 또 아주 주책맞게 이런 저런 구간에서 울었다.너무 당연하지만, 잔인하고 미웠던 패배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걸 상상이 아닌 눈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비판은 가장 쉽고, 비난은 가장 단순한데 생각해보면 그것들을 힘겹게 받아내는건 오롯이 선수의 몫이었다. 이 팀은 사실 그 어느 팀과 견주어도 한해동안 패배의 수가 극히 적은 팀이지만, 너희의 인기와 명성과 운에 대한 대가를 치루라는 듯 했다. 특히 구마유시라는 선수는 가장 앞줄에서 언제나 그 쓴소리들을 받아내었다. 팀이라는 이름 하에 한 개인의 시도와 열망들은 손쉽게 그 목소리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단지 한 위대한 역사를 썼던 선수와 명문팀의 맥을 잇기 위한 과정이 아닌 모두의 역사란 사실을 나또한 잊고있었다. 그런 것이 실은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모든 소중한 시도 앞에 이 응원의 끝이 꼭 승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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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른 스포츠 팀들과 마찬가지로, 이 팀의 로스터또한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 실은 그 마지막이 코 앞에 와있음을 모두가 직감한다. 지금의 로스터는 내 응원의 시작과 함께 그 궤를 같이 했다. 그래서 더더욱 언제가 될지 모를 이 로스터의 마지막 경기 그리고 마지막 뒷모습에 놓치지 않고 작별 인사를 건네고싶다. 이번에, 여기서 탈락하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다행히 아직은 다음 경기를 기대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그 슬로건에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갖는 요즘이기도 하다.


5) 그래서, 우승 할 수 있을까? 지난 2년 반동안 때때로 내가 응원하는 이 팀은 전례없는 전승 우승팀이였고, 우승후보였고, 패배자였고, 누군가의 서사 속 빌런이었고, 증명에 실패한 이들이었고, 과거의 영광을 갉아 먹고 사는 팀이라 불렸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나, 어제의 승부 이후 다시금 이 팀은 리그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운다. 돌고돌아 결국 T1이라는 찬사 하에 내겐 더이상 승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패배가 싫었던 이유는,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나는 다만 그들의 시도가 언젠가는 보상받고 보답받길 응원할 뿐이다. 그게 우승이면 좋겠지만, 아니라해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지난 시간들은 그 연습을 하는 과정이었다. 이 응원이 영원하면야 좋겠지만, 이또한 언젠간 반드시 끝나고 추억으로만 그 존재를 입증할, 축제같은 기간이 되리란걸 안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겐 그 무엇보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있었고 그 속에 이런 이들이 있었지 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응원을 보내고자 하는 맘이다.

이번이면 정말 좋겠지만, 이번이 아니어도 괜찮다.


6) 대부분의 마지막이 그러하듯, 돌이켜보면 응원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정말 훨씬 더 많았다. 나를 많은 날들로부터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월즈가 끝나고 결과가 어찌됐건 나는 고마운 맘을 챙겨 겨울로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함께 넘어가면 더더욱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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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



7) 그들은 그렇게 함께 넘어가 2024년에 다시 한번 함께 그들만의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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