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기획 '베이스'
나의 작업은 언제나 베이스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발매한 싱글들도, 지금 작업 중인 이 곡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저음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다. 곡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바닥을 지탱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야 남들에게 내 감정을 전달할 '설득력'이 생기니까. 아니, 어쩌면 그건 나 자신을 위한 설득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업하는 긴 시간 동안 내가 이 음악에 푹 빠져 있으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중심을 잡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도 내 노래를 듣지 않는다면?" 이 조금은 위험하고 쓸쓸한 상상이, 역설적으로 내가 듣기 좋은 음악, 내 취향이 철저하게 반영된 음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베이시스트 역시 지난번 색소폰 때처럼 재즈힙합 친구의 추천을 받았다. 이번 앨범을 만들며 나는 그 친구에게 많은 정신적 빚을 졌다. 예술이 즐거운 건 이런 지점이다. 곡이 담고 있는 서사 뒤편에, 그 곡을 만들던 시절 내 옆에 누가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녹음 과정은 수월했다. 내가 써둔 베이스 라인이 워낙 철저하게 내 취향이었고, 데모 사운드도 꽤 잘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내 악보를 연주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 요청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해석한 트랙을 추가로 보내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파일을 열었을 땐 당황스러웠다. 어딘가 어색했고 부담스러웠다. 내 의도와는 다른 결이었으니까.
티는 안 냈다. 그저 속으로 '이걸 쓸 수는 있으려나...' 하며 반신반의했을 뿐. 혼자 이리저리 트랙을 섞어보았다.
그런데, 내 의도대로만 배치했을 때보다 그가 보내준 라인을 섞었을 때 결과물이 훨씬 좋았다. 혼자 머쓱해졌다. 아무리 내 취향이 확고하다 한들, 타인의 해석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더 좋은' 결과물이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나의 오만함이었음을 느낀다.
그렇게, 악기들이 하나하나 모여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