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어려운 건 포장이 아니었을까.

텀블벅 굿즈 만들기

by Tannamu

제일 어려운 건 역시 '포장'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하나씩 엮어낸 날것의 스케치를 좋은 사운드로 감싸는 일부터, 그렇게 나온 결과물을 사람들 앞에 내놓기 좋게 매만지는 일까지. 아무것도 없던 중심에서부터 겹겹이 껍질을 만들어 양파를 빚어내는 신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다.


기획한 굿즈들을 포장하기 위해 박스를 접으며 든 생각이다.


음원이 발매된 직후엔 묘하게 정신이 없었다. 대단한 사건이 터졌다기보단, 끝났다는 홀가분함과 낯선 설렘에 취해 여기저기 입을 열고 다닌 탓이 크다. 우리의 펀딩이 결실을 맺었다 한들, 진짜 마지막 관문인 '굿즈 배송'이 남아있었다.


결제가 완료된 후원자 명단을 뽑아본다. 나는 줄곧 익명으로 작업해 온 터라 리스트에 아는 이름 하나 없는데, 옆에서 같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Heiden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주르륵 적힌 이 명단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실물로 도착한 굿즈들은 참 귀엽게 잘 나왔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고심했던 건, 펀딩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 넣은 흔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방 한구석에 무심하게 놓여있다가 언젠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온기 있는' 굿즈를 만드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Heiden의 이름과 앨범 타이틀이 각인된 기타 피크에 유독 마음이 간다. 통기타 하나 메고 노래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이기도 하고, 두 번째 이유는 그냥 정말 귀엽기 때문이다. 그와 어울릴 만한 테마로 색을 골랐는데, 마침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색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귀여운 기타피크

내용물이 이러니 포장지 하나도 허투루 고를 수가 없었다. 대충 규격에 맞춰 쉽게 포장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내가 빚어낸 결과물들과 Heiden의 얼굴이 담긴 것들을 그렇게 덜렁 보내고 싶진 않았다. 단가를 타협하는 선에서 사이즈를 이리저리 계산하며 최적의, 그러면서도 가장 예쁜 포장 방식을 찾았다.


속속 도착하는 굿즈들과 포장 부자재들을 한데 모아본다.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박스를 접고 포장을 하고 있다니. 내 이름이 전면에 걸린 앨범은 아니지만, 기획부터 함께 빚어낸 내 자식 같은 것들을 세상에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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