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책 (1)
책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주말마다 종종 책장을 비운다. 책을 가득 담은 상자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나는 묻고 싶었다. 책을 그렇게 아끼는 사람이 왜 책을 떠나보낼까. 어머니는 웃으며 간단히 대답하셨다. “다 읽었으니까.”
그 말 속에 담긴 가벼움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책을 소유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책이란 소유의 대상이라기보다, 지나가는 순간에 머물다 떠나는 손님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가 그 책을 좋아했다면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고, 내 흔적으로 책을 채웠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팔 수 없는 나만의 책이 된다. 하지만 그 책도 결국에는 버려질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책장을 정리하며 어머니는 종종 툴툴거리셨다. “책값은 살 땐 왜 그렇게 비싸더니, 팔려고 하면 헐값인지 몰라.” 책을 가득 담은 상자 옆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반쯤 한탄처럼 들렸다. 어쩌다 한 번은 중고로 팔았던 책에서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왔던 적도 있었다. “이게 왜 이렇게 비싸지? 하고 보니까 영화화된 책이더라고.” 어머니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으셨다.
또,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그녀의 책들이 새삼 주목받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여전히 좋은 책들이지만, 사람들 눈에는 이슈가 있어야 비로소 다시 보이는 거야.” 그 말에는 오랜 시간 책과 함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묵직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평생 함께할 책은 많지 않아. 결국은 떠나보내게 돼.”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책을 떠나보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했다. 책이란, 단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손을 떠난 이후에도 어딘가에서 계속 흘러가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책은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다. 다 읽은 책을 버린다는 것은 다 지나간 시간을 떠나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이, 그 시간이, 그 순간이 나에게 남긴 흔적들이다. 밑줄과 메모로 채워진 책처럼, 지나간 모든 것들은 내 안에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어머니의 상자를 들고 걸었다. 책들이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쩌면 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남긴 흔적을 가슴에 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떠나보내는 것에도, 그렇게 사랑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