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알맞은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by YeonJin


오늘 오후, 작년 우리 반 단체 카톡방에 불이 났다 .마흔이 넘은 나의 감각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의 이어지고, 토하는 이모티콘에서부터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 순식간에 백 개가 넘어간다. ‘나 여기 있소’라고 내 존재를 드러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어벙벙하게 서 있다 보면 이미 대화는 끝나 있다. 오늘의 주제는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는데, 재수생과 반수생, 대학생이 뒤섞여 있고 주 출몰지역도 제각각이라 의견 모으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말도 안 되게 서로 디스를 하다가 약속을 대충 잡을 때쯤 나도 여기 있으니 끼워달라고 말할까 말까 저녁 내내 망설였다. 끼워달라고 하면 눈치 없는 '담임년'이 될 것 같고, 모른 척하자니 왜 그들이 만나는지,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 그 만남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일지가 너무 긍금해서 견딜 수가 없고,


우리는, (아 이 말을 치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우리는 함께 겪었다. 아, 다른 이야기를 하자. 오늘 아침의 일이다. 조회시간에 옆 반이 너무 시끄러워서 옆 반에 들어가서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우리 반으로 들어가는데, 옆 반 아이가 뛰어나오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다음 주까지 편찮으셔서 학교에 못 나오는데, 이번 주 주말에 면접이 있다. 나 어떻게 하냐, 선생님 반 애들 면접 연습할 때 같이 하면 안 되냐, 뭐 그런 말을 했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라고 말하면서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 그 일이 있기 전까지 10여 년을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그 분과 세 마디를 넘겨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뒤에서는 무슨 얘기를 하든 말든 일단 학교에서는 서로의 시간을 뺏거나 사생활을 캐묻는 일이 금기시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학교다. 매번 같이 밥을 먹는 직장 절친이 아니고서야 내 남편의 직업이나 내 아파트 평수, 가방(물어볼 만한 가방도 아니지만) 브랜드 따위를 묻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과목별, 부서별로 한 학기에 1-2차례만 있는 회식도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문화가 없다. (말이 길어졌는데) 즉 나는 옆 반 선생님과 같은 과목도, 같은 부서도, 같은 성별도, 같은 연령대도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해 본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우연히 그분 옆 자리 선생님께 들렀다가 이야기 끝에 올여름에 방콕에 간다는 나에게 방콕에 가면 카오산 로드를 가보라고 알려 주었던 것 외에는 더 이상의 기억은 없다. 올 겨울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늘 아침 그분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반 아이들까지 내가 챙길 테니 충분히 편찮으시라고, 이제는 선생님이 편찮으실 차례니까 맘 놓고 앓으시라고, 제가 올봄에 이유 없이 앓아누워야만 했듯이 이제는 선생님이 그렇게 앓아누우실 차례니까 당당하게 아프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 선생님 차례라고.



함께 어느 지방 도시를 오가던 겨울 동안 그분은 언제나 곁에서 묵묵한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휴일 병원 1층 로비의 스산함과 불 꺼진 복도의 의자. 홀로 환하게 빛나던 크리스마스트리,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해 입던 흰 가운, 짐작할 수 없는 아픔에 던져진 분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외로움. 아픔의 문 밖으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배회하는 이 외로움의 길을 말없이 함께 지나왔다. 고통이었다고는 감히 말하지 않겠다. 내가 함부로 입에 담을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그 고통이 빗겨 난 바로 그 옆자리, 풀이 눕고 사위가 적막한 황무지와 같은 그 옆자리에서 이 식당, 저 식당 다니며 각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서 알려주거나, 알지도 못하는 각자의 가족 이야기나 툭툭 하면서 함께 걸어 나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딱 알맞은 자리, 침범하지도 놓아주지도 않는, 적당한 그 자리에서 그분은 나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지난 계절 내내 아팠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수업 시간에 호흡이 가빠오기도 했고, 집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출근을 위해 눈은 떴는데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어 그냥 가지 않을 적도 있었다. 그래도 ‘EBS 수능 특강’을 풀고, 학생과 학부모 면담을 하고, 학위 논문 프로포절을 했다. 일주일 병가를 내기도 했지만 정해진 일정은 그럭저럭 탈 없이 지나갔고, 나도, 가족들도 내가 정말 아픈 것인지, 아픈 척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나를 비난했고, 누군가는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지만 스스로 헷갈려서 제대로 한 것 없이 시간과 일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내가 아픈가? 아픈 척하는 것인가? 아프고 싶은 것인가?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여태 헷갈리지만 옆 반 선생님께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아프고 싶으실 것이고, 아프셔야 하고, 아프신 거라고. 그러니 마음 놓고 아프셨으면 좋겠다고. 딱 알맞은 자리, 문막역 플랫폼에서 내 팔 길이만큼 떨어진 자리에 같이 서 계셔주셔서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맘껏 아프시라는 인사를 전한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샜는데 다시 돌아오겠다. 오늘 꼭 옆 반 선생님께 아프시라는 인사를 꼭 전해고 싶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시름시름 아프던 시절 누군가는 일기를 쓰라고 했지만 아무 말도 튀어나오지 않아서 흰 모니터만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여러 차례였고, 아, 그래도 당신은 자기 회복력이 좋은 것 같으니 약 꼬박꼬박 잘 드시라고 약을 챙겨준 의사를 외면하기도 또 여러 차례,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몸무게는 5킬로그램이나 빠져버렸다. 살만 빠지면 좋으련만 머리카락도, 머리카락의 멜라닌 색소도 함께 빠져버려, 군대 휴가 나온 제자는 나에게 ‘시체’ 같다고 했다. 이제 스무 살,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스무 살의 대학 신입생은 이제 닳는 일만 남은 선생 옆에서 늦은 밤 산책을 하고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사랑의 밤들을 들려주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이 언덕을 올라 내 옆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얘기를 들려줘서 나는 살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그 빛나는 사랑의 열병과 나란히 붙어 있는 ‘괜찮지 않은 자신의 밤’과 ‘떠오르는 친구 생각’도 들려주었다.



그런데 휴가 나온 그 군인은 알았을까, 내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알아채고 직접 말해주는 첫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랑에 달뜬 스무 살 신입생은 알았을까, 우리가 모두 각자, 함께 이 시간들을 지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 덕택에 나는 그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금 지나가고 있다. 멀리 있는 이들이 가까이 있는 이들보다 더 간절할 때가 있다.

그나저나 나는 작년 우리 반 모임에 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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