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감옥 같다는데,

by YeonJin

학교가 감옥 같아서 못 오겠다고 했다.

학교 앞까지 같이 왔지만 학교가 감옥 같다는 아들을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고 어머니는 흐느낀다. '학교가 감옥 같다'는 아이에게 그 감옥의 간수인 내가 '감옥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니, 왜 그런 거니? 이런 것을 직접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학교가 감옥 같다'는 그 아이의 비유를 부여잡고 이 감옥의 간수로서 늦은 밤 교무실에서 이 글을 쓴다.


감옥과 학교의 비유는 낡고 낡은 비유다. 획일화된 행동과 생활을 효과적으로 강제하고 통제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만 보더라도 감옥과 학교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50분 교실에 앉아 있다가 10분 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가끔 운동장에 단체로 나가 축구를 한다. 이 공간을 벗어날 때에는 간수(교사)의 허가받아야 하고, 그 간수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허가를 내준다. 개인적인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이 공간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고, 간수 자신도 또한 안전하게 안위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공간을 벗어나고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같은 사유를 지녀야 한다. 몸살이나 장염에 걸려야지 그냥 마음이 좀 아프거나 해서는 안된다. 예외도 동일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21세기의 간수들을 더 이상 몽둥이를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처럼 규율과 감시, 통제라는 공간의 작동원리는 변함이 돌아가고 있다.


학교는 감옥이라는 이 낡은 비유에 반기를 들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떤 아이가 '학교가 감옥 같다'라고 할 때의 이 발화가 가지는 의미가 앞서 말한 '학교는 감옥과 같다'과 같을까? 학교 앞까지 온 아이를 되돌아가게 한 것이 정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규율과 감시, 통제 때문일까?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간수가 하는 구차한 변명 같겠지만, 학교가 감옥 같다고 느끼는 아이의 고통, 그 경험을 떼어놓은 분석은 많은 것을 설명하지만 또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도 같다. 장소와 그곳을 구성하는 사물,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벼려지고, 깊어지는 그 감수성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기에, 학교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는 '덜 감옥' 같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공간의 변화시키고자 하는 여러 움직임들야말로 조금이라도 '덜 감옥' 같은 학교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렇지만 감옥과 다른 형태로 공간을 창출한다고 이 아이가 다시 즐겁게 학교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일렬로 배치된 교실들을 분산시키고, 열린 공간으로 교실을 재배치하면? 천장을 높이고, 교실의 벽을 없앴을 때의 교육적 효과는 연구로 증명되었고, 실제 사립초등학교 및 혁신학교들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가 감옥 같다는 아이의 경험을 바꿀 수 있을까? 천장이 높고, 벽이 없는 교실에서 똑같이 EBS 문제지 풀고, 인강을 듣고 있을 텐데, 내가 선택한 교과를 듣기 위해 가방을 챙겨 들고 굽이치는 복도를 지나, 수풀을 지나 또다시 천장이 높고, 벽이 없는 교실에 주저앉아서 다른 과목의 EBS 수능특강을 풀 텐데,

벽이 없고, 천창이 높은 감옥이다.


수능이 2주 남았다. 우리 반 교실은 듬성듬성 자리가 비었다. 효율적인 정시 준비를 위해 등교하지 않는 아이, 학교가 감옥 같아 오지 않는 아이, 수능을 망칠 것 같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이들의 자리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검은 아가리, 수능에 잡혀 먹히지 않고, 그래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2주의 시간은 흐를 것이고, 11월 15일 되어도 너희는 또다시 게임을 하고, 축구를 하고, 잠을 자고, 사랑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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