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반에 진짜 탈북자 있어요. 걔가 너무 기분 나쁘대요.
어?
각성의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왔고, 어수선한 복도에서 영화 속 장면처럼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 탈북자가 있었다고? 몇 시간 같았던 몇 초가 지난 후, 내 머리에 죽비를 세게 내리치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뛰어가는 가는 그 아이를 잡아 세워 재차 물었다. 정말이냐고. 그 아이는 그냥 농담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가벼운 농담이 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진 산간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수달과 열목어가 살고, 야간 행군하는 공수부대가 민가에 내려와 밥을 얻어먹던 첩첩 산골. 그곳의 사람들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억양이 뒤섞인 꽤나 독특한 사투리를 썼다. 내 몸에 밴 그 사투리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에서 내리치던 칼바람과 추위에 얽힌 이야기를 서울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여섯 시간 채 해가 들지 않는 겨울 이야기, 농번기에는 모내기 방학을 했다는 이야기, 고추를 따야 해서 가을 소풍을 가지 못한 내 친구의 이야기.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도시 공장에 가야 했던 이야기.
중심에 있는 이들의 상상력은 빈약하고, 감수성은 무디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것을 상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아이들은 전국 지도를 꺼내놓고 읍, 면 단위 동네의 이름을 발음해보지 않지만 산골아이들은 전국 지도를 펼쳐 놓고 당진, 해남, 보성, 장흥, 양주, 전주, 밀양, 온갖 곳의 지명을 발음해본다. 입술을 오므렸다 동글게 말고, 혀를 굴려 발음을 하다 보면 그곳의 햇빛과 사람들이 그려진다. 서울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산 넘어, 산 아랫동네에도 아이들이 살고, 꿈을 꾼다는 이야기. 척박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가난한 이들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내 의도와 달리 이야기는 흘러 흘러 탈북자의 인생 역정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그 반응에 나의 거짓말은 점점 살이 불어났다.
내가 살던 곳은 개마고원에서 유엔군을 몰살시켰던 칼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추위를 강조하다가 나온 말이었는데, 이 말을 잘못 알아들은 아이가 북에서 왔냐고 물었다. 이 엉뚱한 질문에, 그만 그렇다고 해버린 것이 잘못의 시작이었다. 잘못 끼어진 단추는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나는 개마고원 인근에서 태어나 김형직 사범학교를 졸업한 북한이탈주민이 되어버렸다. 이때라도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김일성 나쁜 놈이라고 욕해보세요."라는 아이들의 말에, 어려서 세뇌를 받아 그 이름 석 자를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다는 허풍선이 반응을 했고 아이들이 이 거짓말에 열광하면서 놀음을 그만 두지를 못하게 되어버렸다. 연극의 컨벤션처럼, 나와 아이들 사이의 일종의 컨벤션이 이미 형성되어 있어 그냥 한바탕 웃고 넘기는 소극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안일한 교사의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반에 북한이탈 청소년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 한바탕 소극은 누군가를 얕잡아보며 웃음거리로 삼는 행위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울말을 쓰면서 ‘천착’, ‘참척’과 같은 고급 어휘를 잘난 척하면서 섞어 쓰는 선생을 북한이탈주민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알량한 일등 시민 의식이 깔려 있었던 거짓말이자,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는 세태를 간과한 게으른 수작이었다. 이처럼 우둔하고 무딘 선생의 생각을 꿰뚫어 본 아이의 날카로운 지적이 복도의 시끄러움을 뚫고 내 머리를 내리친 이후 더 이 이상 이 거짓말 놀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서른 개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교실에서 내가 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앞자리 아이에게는 즐거울 수도, 옆 자리 아이에게는 역겨울 수도, 건너편 아이에게는 가증스러울 수도, 맨 뒷자리 아이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개는 하나마나 한 소리가 되어 한 귀로 들어가 반대편 귀로 흘러 나올 것이다. 그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 다만, 내가 뱉은 말이 조롱이나 야유의 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친근함의 표시로 말한 과한 농담이나 별명, 그리고 편견에 가득 찬 비유나 설명, 그 무엇이었든 행여 무딘 감성으로 그런 짓을 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11년의 19살과 2019의 19살, 그리고 2021의 19살은 다를 것이니, 우리는 매년 새로운 19살을 만나며 새롭게 새롭게 경험의 퇴적물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