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터덜터덜 걷고 있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자주 그곳에서 산책을 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슬그머니 연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산책'을 하고 있다 했다. '산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자, 행위이자, 노래다. 그러니 그러한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산책을 하고 있다고 하니 딱히 그를 다그칠 말이 없어, 한 바뀌만 돌고 들어가라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그와 내가 적절한 거리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아니었나 보다.
난데없이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다짜고짜 '000 선생님'이라고 떴다. 그때 그는 수능을 한 달여 앞둔 학생이었고, 나는 그의 담임교사였다.
"왜 선생님은 제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막대하세요? 말 좀 안 시키면 안 돼요? 말 걸지 말고 그냥 내 버리 두면 안 돼요?"
너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막대한 적이 나는 없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너를 존중하기 때문에 말을 건 것이라는, 왜 내가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설명을 그에게 했다. 학생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혹시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꼰대'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항상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교사라는 알량한 내 자존심을 박살 내는 그의 말들이 무척 쓰라리고 아팠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책 잡힐 만한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조심해야 했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긴장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을 때, 그가 먼저 미끄덩 떨어지고 말았다. 그가 내게 '진지하지 않고 제멋대로 말하기' 때문에 말 걸지 말아 달라며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반말. 비속어 하나 섞이지 않은 반말, 정중한 반말,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와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적 관계를 무화시키는 말, 반말. 더 이상 너를 선생으로 대하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말, 반말. 탁, 그가 너무 쉽게 긴장의 줄 위에서 내려왔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니, '민원'거리가 되지 않을 말을 고를 필요도, 칼과 방패로 싸울 이유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바꿔야지 다른 사람이 신경 쓰면 혼란스럽기만 하고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말로 끝을 맺었고, 나는 '너의 투쟁이 승리하기를. 건투를 빈다'는 식상한 말로 응수했다.
다음날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지각을 하고, 수업시간에 산책을 하고, 스탠드 책상에 서서 공부를 했고,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은 흘렀고, 그와 우리 반 아이들은 수능 시험을 봤고, 면접을 보기도 하고, 정시 원서를 쓰기도 했다. 그러곤 졸업을 했다.
수능을 보고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나에게 긴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손으로 갈겨 쓴 그 편지에는 두려움, 불안, 막막함의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읽었지만 그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데미안>을 새로 읽으며, 그(들)을 떠올렸다. 그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는지 일 년이 지난 후 퇴근길에 스쳐 지나며 본 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 수많은 싱클레어들이 지금, 이곳에 앉아 있다. 그의 편지 마지막에 <데미안>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