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비동염이라고 한다. 월요일부터 코와 목이 따끔거리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비염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아침부터는 열이 슬슬 오르기 시작하더니, 광대뼈 주변과 목과 코가 모두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와서 큰 아이 숙제를 좀 봐주고 일찍 잠들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오전 내내 집에 누워있다가 오후에 출근을 했다. 이번 주말에 면접을 보는 애들이 맘에 걸려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출근하다고 붙을 애가 떨어지고, 떨어질 애가 붙는 그런 기적과도 같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냥 누워 있는 것 자체가 마음 불편한 것이 고 3 담임이라는 자리다.
이번 주말에 면접을 보는 애들을 불러서 모의 면접 연습을 했다. 우리 학교는 수시 원서접수가 끝나면 바로 3-4명이 한 조를 이룬 면접 대비반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빈 구석이 군데군데 보인다. 묻고자 하는 핵심은 동일한데도 질문을 조금만 바꾸면 아이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면접(제시문 기반 면접 제외)에서 묻고자 하는 바는 주로 정해져 있는데도, 자기 말로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모든 질문이 모두 엄청난 것을 묻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생기부에는 빈구석이 없다. 너덜너덜하다. 갖가지 형광펜으로 칠해지고,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생기부. 얼마나 많이 들여다보았을까나, 예상 질문으로 미리 건네 준 종이 옆에는 빼곡하게 답변이 적혀 있다.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은 이유,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은데 경영학과에 지원한 이유, 만들고 싶은 광고, 인상적으로 읽은 책, 토요교육활동 시간에 읽은 '유럽 보편주의' 내용, 1, 2학년 때 빅이슈 판매 도우미 활동한 것까지 꼼꼼하게 대강의 내용과 자신의 느낀 점 등이 메모되어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얼마나 들여다보면서 준비를 했을까, 안쓰러우면서 대견한 마음이 일어난다. 저렇게 간절한 꿈들이 이루어질까, 이루어지기 전에 바꿀 수도 있을 테니 19살의 꿈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슴푸레하게 가슴에 품은 꿈을 꺼내어 밝은 데에서 조금은 더 분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대입 전형에 면접이 들어가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의견에는 말하기는 타고난 재능이며, 이는 단순한 기술이나 요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말하기는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협업이 강조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꼭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면접 연습을 해보면 위의 전제가 옳지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일단 '말을 잘한다'는 것은 사기꾼처럼 능수능란하게 요설을 쏟아내거나 개그맨처럼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생기부와 자소서에 적힌 내용이 자신에게 체화되어 있다면 몇 번의 연습을 통해서 충분히 말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면, 말을 할 때 간투사를 많이 쓰거나 다리를 떠는 등의 기술적인 측면은 쉽게 수정이 되지만, 생기부나 자소서의 내용이 헛것이라면 노력해도 말할 거리가 생겨나지 않아 곤욕을 치를 것이다. 하지 않은 것을, 읽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면접은 불합리한 평가 전형이 아니라 오히려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전형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지원동기에서부터 생기부에 적힌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정리하면 충분히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인 것이다. 그래도 생애 처음, 8-10분 정도 교수라는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것 같이 대단해 보이는 평가자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긴장감은 엄청날 것이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선생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내일 면접 보는 아이들에게 바나나 우유 하나씩 사줬다. 당 충전이라도 하라고. 19살, 떨리는 마음으로 지원한 대학 캠퍼스에 가서 면접을 본다. 이래저래 마음대로 앓아눕기도 힘든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