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수능 다음 날 아침에

by YeonJin

교실에 들어가기 가장 두려운 날이다. 새벽 어둠을 뚫고 인창고 정문 앞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을 들여보내고도 마음이 한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시험장 안에서 극한 긴장 속에서 시험지를 나눠주고, 수합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어수선한 마음들이 이곳저곳을 날아다녀 한자리에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 화장실 세면대에 기대어 막 올라온 국어 시험지를 훑어보고, 돌봄 교실에서 아이를 찾아 아이 친구 엄마와 늦은 점심을 먹고, 유치원 하원 하는 딸아이 마중을 나가고, 저녁을 차려 먹으면서도 내 마음은 시험장에 가 있었다. 내가 물어본들, 내가 이렇게 애를 태운들, 무엇이 바뀌겠는가마는, 나는, 그렇게 나 혼자 분주했다.



몇 년 전, 수능 시험날 밤, 그때도 혼자 마음이 분주했다. 옆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오버하지 말고 얌전하게 있으라'라는 타박을 받다가 그 불안을 참지 못하고, 가장 안정적으로 시험을 봤을 것 같은 아이에게 시험 무사히 봤냐는 문자를 보냈다. 답이 바로 왔다. 모의고사까지 통틀어 지금까지 본 시험 중 가장 잘 봤다고. 서울대 1차도 합격했다고.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가장 잘 봤다는 말이 가져올 이후의 일들을 알지 못했다.


당신의 교사 인생에 이런 성적표를 다시 또 볼 수 있겠냐며 많은 이들이 아무한 것 없는 나에게 축하를 보냈다. 내가 받을 축하가 아니라서 그 인사에 딱 알맞은 응대를 하지 못했고, 보너스를 받지 않느냐는 얼토당토않는 소리에도 별 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학교에 축하 현수막이 붙었고, 교장실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이렇게 누구다 다 부러워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평생의 영광스러운 훈장이자, 또 다른 부담과 기대의 족쇄가 된다. 수능 만점자의 말과 행동, 그가 해 온 학습의 여정 하나하나에 말이 붙기 시작했고, 과장된 선전과 오해로 세상에서 가장 복될 것 같은 겨울을 조금은 심난하게 보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객관식 일제고사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가 이루어낸 뛰어낸 성과는 유령처럼 그를 끝까지 따라다닐 것임은 분명하다. 뛰어난 성과를 내 본 적이 없는 우리같이 평범한 선생들이 그 영광과 그 영광이 짓누르는 무게를 가늠할 수는 있겠는가마는, 다만 유령에게 사로잡아 먹히기 않기만을 바란다는 말을 건넬 뿐이다.


올해는 '머리 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문자가 제일 먼저 왔다. 퇴근길에 교실에 들릴 때마다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하던 아이가 보낸 것이다.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서글서글하니 웃으면서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하는 아이다. 종례 시간에 담임의 잔소리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몇 안 되는, 그래서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할 때마다 쳐다보게 되는 그런 아이다. 주번이 청소를 하지 않고 가면 등짝을 툭 치며 대신 좀 하라고 말을 건넬 수 있는, 그렇게 의지할 수 있는 아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3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한다. 3년 동안 뭘 하기는,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햇살이 내리쬐어도, 미세먼지가 가득해도 경사 15도의 언덕을 올라와 수업을 듣고,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하고, 친구들과 놀고, 세계사 공부를 하고, 아카시아 향이 가득 해지는 밤까지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뭘 한 것이 없니. 그렇게 스스로 견디고 살아냈는데.


그것들을 아무것이 아닌 것으로, 혹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로 만드는 시험 이후,

여느 때처럼 일찍 온 아이들이 텅 빈 교실 한 구석에 앉아 있다.


선생님, 별 거 아닌 것 같아요, 생각보다 너무 아무것도 아니라서 좀 기분이
이상해요.


아무것도 아닌 시험에 잡아먹히지 않기를. 이것 외에 별거 아닌 시험을 별 것으로 만들며 살아갈 선생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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