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가 되고 싶다던 너에게

- 수시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는 날

by YeonJin

너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도 되는 것일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것이 나은 것일까, 너는 ‘지나가라, 지나가라, 위로 따위 하지 마라’ 주문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선생의 대책 없는 위로라는 것에 속절없이 너의 마음을 맡기고 싶은 건 아닐까, 지나가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 한 번 두드리며 ‘모두 잘 될 거야’라는 인사라도 건네야 하는 것일까, 너의 시간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둠 속으로 뱅그르르 돌아들어가고 있을까?



간절하게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러 다니고, 수도 없이 떨어지던 겨울들이 있었다. 태안, 왜관, 춘천, 대전, 평택, 수원, 대구, 서울. 시험을 치고 면접을 보러 낯선 동네를 갈 때마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터미널 분식집의 라면은 매웠고, 김밥 시금치에서는 비릿한 쉰내가 났다.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어 아쉽다는 문자는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버스 안에서만 도착했다. 봄이 오기 전에 수명이 정해진 일자리라도 구하려면 바삐 움직여야만 했으니 그 겨울의 낮에 나는 불합격이란 단어를 품에 안고 희뿌연 희망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성산대교 아래로 571번 버스가 추락해도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합격과 희망, 두 단어의 거리가 너무 밭았다. 너는 나에게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그 겨울들의 괜찮지 않았던 나를 떠올리며 너 역시 괜찮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는 정말 괜찮았니?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 뒤에 달린 빨간 펜으로 점을 찍어 흩날리는 벚꽃을 그리던 너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화장지의 흡수력을 이용하여 꽃 날리는 장면을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했다며 쉬는 시간에 너는 나에게 붉은 꽃잎이 흩날리던 화장지 한 칸을 보여주었다. 그 ‘꽃잎 화장지’를 반강제로 빼앗아 교무실 벽면에 자석으로 붙여 오래 두고 보았다. 네가 스승의 날 선물로 자율학습 시간 내내 그렸다는 그림은 아직 우리 집 냉장고 전면에 붙어 있다. 너는 겨울방학 동안 뜨개질을 배워 뜨개질을 했다고 했다. 목수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목수, 나무의 가능성을 이리저리 탐색하고, 대패로 그것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도록 땀을 흘릴 모습도 너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


너무 어설픈 고3 담임이었다. 욕심과 애정을 통제하고 다듬을 수 있는 전략이 부족했다. 애정과 거기에서 파생된 바람에 스스로 휩쓸려 버렸다. 네가 다른 학과를 썼다면, 네가 다른 꿈을 꾸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동료들은 생각보다 선생은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은 학생이 예전에 만났고, 앞으로 만날 수십 명의 선생 중 한 명일 뿐이니 그렇게 안절부절못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결국 선택과 책임은 학생의 몫이라고. 맞는 말이다.

그래도 수시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면 나는 아직

“선생님, 저 정말 괜찮아요”

라던 너와 그런 너를 올려다볼 수 없었던 3학년 2반 교실의 저녁을 떠올린다. 네가 다시 뜨개질을 하고, 벚꽃을 그리고, 나무를 다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 아침이면 차를 그대로 돌려 고향집에 가 엄마가 해주는 밥을 푹푹 퍼먹고 한숨 자고 싶어 진다. 거부당하지 않을 곳, 말없이 쓰러져도 되는 곳, 무방비 상태로 발가락 하나 그냥 닿게 들이밀 수 있는 그런 곳이 ‘불합격’이란 붉은 세 글자를 본 너희들에게도 있어 ‘실패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따위는 던져 버리고 한나절 푹 잤으면 좋겠다. 무방비의 잠. 그렇게 자고 일어나도 가을은 더 깊어지고 바람은 불겠으니, 19살의 터널이 조금은 짧아졌을 것이니, 한 숨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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