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관종인가, 패터슨인가
오늘 밤,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노트북을 켰다.
'관종'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취미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용기내서 한 이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관종, 많이 들어보긴 했어도 언제나 나와는 무관한 그런 말이라 여겼다. 그 단어가 발화되었을 때 어떤 강도를 가질지 미처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이토록 평화롭던 어느 순간에 나를 찌를 말일 것이라 생각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멍했던 10여 초의 시간이 지나가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억센 손아귀가 심장을 쥐여짜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마침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들이 뭐라고 뭐라고 나에게 말을 했다. 뭐라고 뭐라고,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그 말을내 귀는 담을 수 없었다. 웅웅거리는 아이의 소리에 오늘 밤은 엄마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하고는 장난감 방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에게는 방도, 책상도 없다.
내가 관종인가,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관종이기 때문인가.
어차피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런데도 나는 관종인가.
아니라고만은 하지 못하겠다. 장난감 방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해보니 아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관심 받으면 좋으니까. 그러나 인간의 행위를 하나로 규정하는 것만큼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은 없다. 관종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하지는 않겠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이 행위를 담아내는 폭력도 견딜 수가 없다. 관심받으면 좋지만 내 행위를 그것으로만 환원할 수 없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작가 지망생도 아니다. 위대한 작품을 쓰고자 하는 열망 따위는 더더욱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위대한 것, 그런 것을 어차피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던져졌을 때, 항상 강하게 글을 쓰는 쪽으로 이끌렸고, 그렇게 항상 나는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패터슨'(짐 자무시의 '패터슨'에 나오는 패터슨 시에 사는 시 쓰는 버스기사 패터슨)이 그러했듯, 나도 그러했다. '패터슨'에게 사람이, 직장이, 이웃 소녀가, 빗방울이 시였듯, 나에게도 사람이, 직장이, 이웃 소녀가, 빗방울이 속삭임이었다. 그 말들을, 그 이야기들을, 그 속삭임들이 남아서 나를 쓰게 만들었다. 그것이 무엇이듯, 어떤 형태이든.
과방의 날적이에서 시작하여 미니홈피와 페이스북을 거쳐 브런치까지.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변해온 플랫폼에 기대에 글을 썼다. 글을 잘 쓰지도 않았다. 그 플랫폼에 맞춘 전략적 글쓰기를 한 것도 아니다. 읽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봄꽃이 아름다운 밤이나, 남국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무엇인가를 써야만 잠 들 수 있었다. 그게 다였다. 잠을 자기 위해, 봄밤을 무사히 나기 위해 무엇인가를 적었을 뿐이다. '패터슨'이 써 놓은 시를 개가 갈기갈기 찢어버리듯, 내가 써 놓은 글들도 미니홈피가 사라지며 펑 사라졌고, 아마 언젠가 브런치가 사라지면 이 또한 사라질 것이다. '패터슨'에게 시를 쓴다는 것이, 출근을 해서 버스를 몰고,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고, 술집에 들렀다 집에 돌아와 시를 쓰는 그 반복적 일상의 한 부분이듯, 그 반복과 변주의 리듬이 곧 그의 삶이자 시였듯, 나에게도 뭔지 모를 이 글들을 끼적이는 것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주변을 살피고 집에 돌아와 아이 둘을 돌보며 글을 쓰는 이 반복적 일상의 한 부분이며, 작고 하찮은 하루하루의 반복과 새로움이 곧 나의 삶이자 글일 뿐이다.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없다. 이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곳 또한 없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다만 내가 당신을 상상하면서 말을 건네는 이 순간, 몰입의 황홀함뿐이다. 내가 리드미컬하게 자판을 눌러 흰 화면을 채워나가는 동안, 어딘가 있을 당신에게 닿고자 하는 내 열망, 그 정동만이 있을 뿐이다. 당신이 봐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보지 않는 당신을 탓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관종이 아니다.
글의 본질이 대화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독자를 상정하지 말고 맘껏 써내려 가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맘껏 써내려가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구, 그 실제에 기반한 추상화된 누구를 설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만이 절실한 나는, 관종이 아니다.
안개 속으로 당신과 손을 잡고 사라지기 위해 글을 쓴다.
이 순간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