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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Mar 26. 2020

그날에 대하여

-  기자와 말을 섞어 본 체험에 대한 기록

그날은 그렇게 시작됐어.

3학년 없이 치러진 1.2학년 기말고사 마지막 날. 3학년 담임이었던 나에게는 깃털처럼 마음 가벼웠던 날. 좋아하는  코발트 색 셔츠를 입고 배드민턴을 쳐서 우승 상품으로 텀블러를 받은 날. 서오릉에서 두부 정식을 먹고 텅 빈 학교로 돌아온 날. 빈 교무실이 집보다 좋아 학교로 다시 돌아온 날. 시험의 마지막 날. 모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떠난 날. 텅 빈 운동장, 텅 빈 교무실,


같은 동네에 사는 동료들끼리 급만남이라도 하나, 항상 기분 좋은 J 선생님의 전화. 여보세요?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솔' 음으로 상쾌하게 전화를 받은 날. 맞아요. 우리 학교 애들이에요. 다 문과 애들이에요. 그럼요. 다 알죠. 호호호. 인터넷 뉴스 보라고요? 왜요? 호호호. 순식간에,


10초도 안 됐던 것 같아. 정말 순식간에 수 십 대의 전화가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어. 영화 보면 나오는 그런 장면 있잖아. 저 멀리 무수히 많은 선들을 타고 전파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거. 갑자기 수 십 대의 전화가 나를 꽉 조여서 울리는 전화를 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어. 그런데 당직이었던 갓 들어온 젊은 선생님이 나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선생님, 어떻게 해요 묻는 거야,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그 선생님한테 책임을 넘길 수가 없잖아, 나름 선배 교산데.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그 선생님께는 가만히 있으라고, 전화 받지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몇몇 전화를 받았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어. 확인 중이다, 확인 중이다, 나중에 전화하시라, 확인 중이다, 나중에 전화하시라, 그렇게 대꾸를 하는데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J 선생님, 모르겠어, 얼마나 더 왔는지, 몇몇 선생님들이 뛰어들어오시고, 나는 소식통이 될 아이를 통해 여행 간 아이들의 명단과 경찰서에서 보내 온 명단을 대조하고 있는데, Y의 문자가 왔어.


선생님, 괜찮으세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잘 버텼는데, 수많은 기자들한테 평상심을 잃지 않고, "네, 확인중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추후 알려들릴게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상냥하게 대꾸를 했는데, 내가 괜찮냐고 묻는 문자 한통에 복사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꺼이꺼이 울어버렸어. 사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팩트'는 이날이 이전의 날과는 절단면이 차갑게 분리되는, 어떤 기점이 될 거라는 것. 그것뿐이었어. 코발트 색 셔츠를 입고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던 이날의 아침은 점점 더 선명해질 것이라는 것. 뭐 그정도만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


 계속 넋을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 이제 그곳으로 떠날 생각으로 복사실을 나오는데, 복도에서 처음 보는 어떤 젊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거는 거야. 내가 복사실로 울러 가기 전에 기자들 출입을 막고, 정문, 후문 다 폐쇄하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을 들었는데,  저 사람은 누구지? 어떻게 들어왔지? 궁금했어. 그때 나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자꾸 말을 거는 거야. 그것도 너무 당당하게.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나를 추궁면서.  그 사람이 조금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내가 혹해서 앉아서 얘기할까요 하면서 그를 운동장 벤치로 데리고 가서, 그 아이들은 말이죠, 하면서 뭔가 얘기를 했을려나, 그랬을지도 모르지. 선생님, 괜찮으세요? 라는 그 짧은 한 마디가 순식간에 덮친 거대한 일에 갇힌 나를 구원했듯, 그 사람도 괜찮으시냐, 한 마디만이라도 던졌다면 특종을 건졌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는 자신감이란 이런 거에요, 하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던 거야. 나도 코발트 색 셔츠를 입고 배드민턴 우승 상품으로 텀블러를 받을 때는 날아가는 돌이 내 정수리에 박힐 거라고 생각도 못한, 한 자신감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랬는데,  그 자신감이 자꾸 나를 추궁하는 거야.

아직도 확인 중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나가주세요.  

아직도 확인 중인 게 말이 됩니까? 나가주세요.

얘야, 이 자신감아, 확인 중인 게 왜 말이 안 되니? 전화 받은 지 30분도 안 됐는데, 나도 뭔가 좀 알아봐야 되잖아. 이 자신감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나봐. 그랬더니 이 자신감 덩어리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세요!"라고 외치는 거야. 민주화 투사인줄 알았어. 그런데 말야.  '국민의 알 권리라고?' 이 X발 새끼야, 국민의 알 권리? 국민이 누군데? 뭘 알아 되는데? 부모가 자식 생사 확인도 못하고 있는데 누가 뭘 알아되는데 야 이 새끼야?

다른 선생님이 흥분한 나를 끌고 교무실로 데리고 들어오고, 그 자신감을 내쫓아버렸어. 그때까지도 그 자신감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고 소리쳤어. 개나 줘라. 국민의 알 권리. 아, 근데 개도 안 먹겠다. 더러워서.


폐쇄된 정문을 겨우 빠져나와 옆반 선생님과 나는 지하철 역사에도,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뛰었어.  서울역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숨이 머질 것 같았지만 옆 반 선생님들이 끌어줘서 겨우 KTX를 잡아 탈 수 있었지. 수많은 오보들이 난무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그 자신감 덩어리를 떠올렸어. 그 자신감 덩어리는 메이저 언론사 기자였으니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거야. 아마 좋은 대학을 나오고, 영어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그런 스마트한 엘리트겠지? 그러니 그가 외치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이 있기는 있을지 모르겠어. 그런데 아직도 나는 궁금해. 그때 그 자신감은 '국민'이 뭔지, '알 권리'는 뭔지 단 한 번,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할 때라도, 생각해 보기는 했을까? 어떨 때 써야 하는 말이고, 어떨 때는 쓰면 안 되는 말인지 생각해 봤을까?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부모조차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국민들은 누구며, 그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기다리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아마 그 자신감은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생각하면 자신감을 유지할 수가 없거든. 나도 교사란 뭐지? 교육이 뭐지? 이딴 거 생각하면 헷갈려서 생각하기 싫거든. 자꾸 생각하면 애들 앞에서 뻔뻔해질 수가 없어. 그러니까 어쩌면 저 자신감은 생각하지 않음에서 오는 건지도 몰라. 그리고 생각하지 않음의 결과인 자신감이 우리에게 가한 폭력(나를 붙잡고 추궁한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해)과 그 이후 쏟아낸 수많은 오보들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생각하지 않음으로서 유지되는 자신감의 값어치가 너무 하찮아지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야. 놀랍게도.

오보를 내려달라는 나에게  C 일보(한글로 표기하면 J) P 기자는 경찰한테 소스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는 잘못 없다데.  그래서 경찰한테 전화했더니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런 거 없다고 믿어달라고 하고, 그래서 다시 P 기자한테 전화하니까 데스크 허락이 있어야 기사 내린다고 하고, 정말 엿같더군. 내가 왜 그들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해야 했지? 그 새끼들이 사죄를 해야하는 거 아니었나?


왜 자신감과 저자들은 자신이 궁금한 걸 국민이 궁금해한다고 착각하면서 막 거짓말을 할까? 왜 조주빈에게 마이크를 넘길까. 난 안 궁금해. 내가 궁금한 건 조두빈과 그 일당이 어떤 처벌을 받느냐지, 조두빈의 생애는 궁금하지도 않아. 나도 세금 꼬박꼬박 잘내는 모범 국민이니까 나의 알 권리도 좀 챙겨주지. 초면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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