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Jin Dec 23. 2020

무용한 이야기들, 친구

70분짜리 수학 시험 감독을 하면서 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부감독이어서 교실 뒷문 앞에 놓인 파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수학 시험지를 향해 고개를 숙인 아이들의 뒷목덜미만 쳐다보며 내 친구를 생각했다. 친구와 관련된 글 몇 편을 읽은 참이었다.      


드라마 대사처럼,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별, 달, 꽃, 웃음, 농담’

별, 달, 꽃, 웃음, 농담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

     

철이 바뀔 때마다 만나는 친구가 있다. 과 동아리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지만, 그때는 우리 셋이 이렇게 몰려다닐 줄은 몰랐다. 운동권이었던 A의 영민함과 날카로움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바빴고, 신경은 늘 곤두서 있었다. (나에게는) 전지현처럼 보였던  B는 우아한 고양이 같아, 다가서기 두려웠다.  우리 셋 중에서 내가 제일 선배다. 한 학번 아래 A가 있고, 또 그 한 학번 아래 B가 있다. 나와 A는 동갑이고, 나와 B는 생일이 같다. 물병자리. 나에게는 아이가 둘이나 있고, A와 B에게는 딸린 식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철이 바뀔 때면, 하루 날을 잡아 가장 부자유한 나를 배려하여 우리 집 인근에서 모인다. 서울의 서남부에 사는 A와 B가 지하철을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볼 것 없고, 놀 것 없는 서울의 최북단으로 올라오면 나는 연신내역이나 구파발역으로 마중 나간다.


 망한 IT 기업부터 대기업과 외국계 회사를 두루 섭렵한 A의 직장 얘기는 언제나 유쾌하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어렵다는, 예를 들면 ‘앵앵거리며, 말끝을 흐리거나’, ‘조사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회사에 되지도 않는 갑질을 하는’ 20대 팀원들의 이야기에 그녀가 열을 올리면 우리는 무심하게 ‘걔들도 어디 가서 우리 국장님 똘아이라고 할 거니까 너도 실컷 해’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길 가다 우연히 간판을 보고 들어간 곳에서 수 년째 청각장애인용 책 녹음을 하고 있는 B는 만날 때마다 작은 선물을 건넨다. 여행지에 산 작은 파우치, 직접 만든 팔찌, 수 놓인 손수건. A와 나의 수다스러움을 참아내는 조용하고 사려 깊은 그녀는 (겨우 두 살 많은 – 우린 다 빠른 생일들) 사십 넘어서도 언니들을 위해 차를 나르고, 사진을 찍고, 냅킨을 챙기고, 다음 행선지를 조사한다. 그녀는 타고난 청자다.

 그녀를 앞에 두고 수다스러운 나와 A가 정신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다 보면 결국 우리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점 언저리’로 돌아가 새롭게 이야기를 다시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과 공간이 뒤얽히면서 매번 이야기들이 새로워진다. 흔히들 말하는 ‘실체적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 내가 어떤 개폼을 잡고 다녔는지, A가 누구와 뜨거운 첫 키스를 했는지, 장흥 의 ‘달과 별’ 펜션에서 우리가 뭔 짓을 하고 놀았는지, 그때의 나와, 너와, 우리가 어떠했는지는 누구나 말할 수 있으며,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닌 것이 없다. 그 시절을 갖고 노는 우리의 무용한 이야기들이 우리를 둥기둥기 묶어, 이곳도 저곳도 아닌 바깥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나는 교사도, 아이 엄마도, 사십 대도 아닌 무정형의 무엇이 되고, 계절이 흐르고, 촌스럽게 풀어진다.

 아무것도 아니라, 무용하여 참 좋은 시간들. 그 시간은 친구, 무용해도 상관없는 친구.


   

그 여름,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모든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고, 과도한 책임감과 되지도 않은 욕심이 나를 갈아먹고 있던 그즈음,  A와 B가 두 말 않고 나를 찾아왔다. 내 작은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역시나 현재의 내 문제와는 상관없는 ‘그 시절 언저리’ 얘기를 천일야화처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남국의 습한 바람이 막 불어오기 시작했는데,  "여행을 가라"했다. 여행지도 찍어주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그런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내 처지도 모르면서’라고 한 귀로 듣고 흘렸을 텐데, 그들이 얘기하니 그 무모함이 무모하지 않아 보였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들이 공기와 햇살과 냄새에 스며들어 이미 우리를 딴 곳으로 데려간 다음이었다.

그날 밤, 바로 가장 싼 비행기 표와 가장 싼 숙소를 예약했다. 마지막 학부모 면담을 끝내고, 그날 배낭을 싸 새벽 비행기를 탔다. 홍콩을 경유해 우붓에 가서 열흘을 머무르고, 개학 전 날 돌아왔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세로를 걸어, 잠든 딸아이를 업고 돌아가던 저녁들이, 밤새 내린 비를 뚫고 환한 햇살이 봇물 위에 찰랑대던 아침이, 가랑비를 맞으며 딸아이와 걸어 다닌 매연 가득한 거리가, 딸아이를 재우고 생기부 과세특을 쓰던 카페가, 나를 어루만졌다. 매콤 쌉싸름한 레몬그라스 향이 좋았다.


그녀들이 그때 나에게 '골방에 갇혀라' 또는 '제 자리로 돌아가 숨을 고르라'라고 했다면 나는 그리 했을 것이다. 여행 아니더라도, 우붓이라 아니더라도 무모한 이야기들이 흘러 다다른 곳은 그 어디든 현명했을 것이다.

나의 친구들,

고개 숙인 18살 소년의 뒷목덜미에 그려진 내 친구들을 자랑하고 싶어, 빨리 종이 치기만을 바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는 닦지만, 세수는 하지 않을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