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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Dec 30. 2020

 대포 같은 사진기는 무엇을 남길까.  

-  경솔했던 생각을 되짚으며 

사진을 보는 것, 찍는 것, 찍히는 것,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를 더하자면, 사진 찍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았다.  이길 저길을 돌아다니다가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멘 사람만 봐도 방향을 틀어 다른 길을 갈 정도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싫었다. 가는 곳마다 왜 이리 사진 찍는 사람들은 많은 건지. 사진기가 무사통과 허가증이라도 되는 듯 방만하게 움직이는 꼴이 보기 싫었다.  내가 있는 이곳이 그들이 들이미는 거만한 렌즈 안에 포박당하는 것이 몹시나 기분 나빴다.  내가 그들을 쳐다봐주는 순간, 그 렌즈의 오만함이 증폭될 것 같아 더욱 성질이 났다. 편협한 나의 성정과 경험에서 기인한 이런 폭력적 기호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환경스페셜에 나오기도 했고, 내 친구들은 산골아이들의 겨울나기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나를 찍은 렌즈나, 내가 찍힌 필름은 없었으나 카메라를 이고 지고 들어오는 낯선 이들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늘 못마땅했다.  사람들은 우리 집 문을 벌컥벌컥 열고 뒤안까지 들어와 카메라 렌즈를  쭉 늘어뜨린다. 그 카메라가 대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마다 농활을 오던 서부총련 소속의 명문대생들에게 느꼈던 비뚤어진 감정과 비슷했다. 농활 학교에 오라며 그들이 활짝 웃으며 손에 쥐어준 초대장을 거침없이 쓰레기통에 쳐다 박던  날 선 어린 마음처럼, 커다란 사진 가방을 둘러멘 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동경과 무시, 그들을 짓밟아버리고 싶은 충동, 뭐 그런 것이 뒤섞여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여행을 많이 다녔다. 밤배를 타고 쿠사다시로 들어가 터키를 한 바퀴 돌고, 이집트 아스완까지 가기도 했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득한 사하라 한복판에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우리를' 구경하러 오던 이들이 보여 준 오만함과 그 오만함에 대한 경멸의 중간쯤 어디에 서 있었다. 조심조심, 가볍고  조용하게 다니려고 애썼다. 그런데  내가 그 길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꾸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저 놈의 사진 찍어서 뭐할까 싶을 만큼 그들은 사진에 집착했다. 몇 달을 혼자 다닌 나 역시 너무 심심해서 코닥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정작 이상한 자격지심으로 커다란 사진기를 들이대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여전히 사진기가 대포 같았다 '너희들을 내가 생각한 이미지로 박제해버리겠어', '너희는 내가 원하는 이미지로 존재해야 해' 뭐, 그런 시선의 폭력, 프레임의 폭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조심성 없는 태도에 날을 세웠으나 또 한편으로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당당함과 세련됨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최근 한 달간 백 여 권의 사진책을 훑었다. 해외 아카이브,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 강의는 말할 것도 없고, 대형서점과 세 곳의 대학 도서관의 사진 코너를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사진전을 보러 분당까지 달려갔다(우리 집은 은평구ㅠㅠ). 일 때문이었다.  오늘도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열람실 의자까지 다 치워진 도서관에서 3시간을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연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라 마음이 급했다.  오늘은 (내가 하는 일에는 써먹지도 못 할) 구본창의 '침묵의 무기'와 '비누'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알이 하얗게 변한 안경, 부러진 숟가락, 편지, 그 지난 시간을 현재로 안고 살아가는 할머니(침묵의 무기).  사진들 뒤에 숨은 많은 이야기들과 시간들이 고스란히 소환된다. 시간이 훑고 간 자리, 닳고 메마른 비누들이 외려 보석처럼 투명하게 반짝반짝(비누) 빛나고 있었다. 시간, 흔적, 상처가 우리를 보다 투명하게 할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노순택의 '얄읏한 공' 도 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너희들에게는 어떤 세상이 보이냐고. 같이 말을 나누고 싶다.  김경훈의 '사진을 읽어드립니다'는 나처럼 '사진'하면 '허세'를 떠올렸던 이들이 읽으면 자세를 바로잡고, 생각을 고쳐먹을 것 같다. 늦은 밤,  함성호의 <산골 아이들>을 다시 펼쳤다. 환하게 웃으며 운동장을 달리는 선생님 뒤를 아이들이 쫓는다. 오려 두고 싶다. 


사진의 'ㅅ'도 모르지만, 여전히 사진 찍는 것과 찍히는 것 모두 싫어하지만, 사진기를 들고 길을 나선 이들을 마주치면 이제는 돌아서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사진기 들고 아무렇지 않게 내 시야를 가리는 사람들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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