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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Oct 31. 2019

막무가내의 믿음 혹은 외면

 우리는 오랜 연애를 했고, 결혼하자는 말도 없이, 각자가 오랜 자취생활을 하며 모은 가재도구를 합쳐 결혼을 했다. 자취방에나 있을 법한 소반 2개, 커피포트 2개, 그릇과 컵은 모두 제각각. 일본에 살던 친구가 결혼 선물로 보내온 포트 메이온 찻잔 세트와 대학원 후배가 보내온 드롱기 커피머신이 내보일만한 유일한 가재도구였다. 당연히 전셋집도 차도 우리에겐 없었다. 그때 내가 서른둘, 그가 서른다섯이었다. 비정규직 교원이었던 나와 무일푼의 회사원이었던 그에게 휴양지에서 보내는 한 때는 사치에 가까웠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었기에 강릉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함께 때론 각자 살았다. 부모님을 위해 결혼식이라는 의례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아 첫 아이를 낳기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이후 우리는 생활공동체에서 각자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발버둥 치면서 남들과 비슷한 모양새와 내용을 갖춘 가정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안도했다. 한 명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무너질지 모르는 지체 불안한 성일지라도 성을 만들고 지켜나간다는 데 만족했다. 왜 남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성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것을 함께 만들 그 파트너가 왜 ‘나’이고  ‘당신’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잊은 채 말이다.


 그런데, 가끔 왜, 우리가 "당신"과 결혼이란 이상한 짓을 함께 할 용기가 생겼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와 행적을 캐지 않는다. 막무가내의 믿음 일지, 혹은 외면 일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우리는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이 성을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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