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선생이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2003년 여름, 그라나다에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이름을 달고, 그 이름에 맞춰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낯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며칠간 동행했던 그(그는 자신을 교사라고 했다)는 반나절 정도를 교외를 같이 돌아다니다가 나에게 ‘선생 하면 잘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툭 던졌다. 대낮이었다. 사위는 조용했고, 나는 속상이 상했으나 속상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피식, 신발 코로 애꿎은 바위만 툭툭 쳤다. 선생이라니.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고 싶었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받으며 아이들에게 악다구니나 쳐대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선생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니 뭔가 내가 취하고 있는 포즈들을 새롭게 바꿔야 할 것만 같았다. 선생이라는 단어가 얼씬도 할 수 없는 포즈로.
‘선생?!’, 이 직업은 20대 중반의 내가 만지작만지작거리던 카드에는 없는 것이었다. 자기애와 자기 비하의 꼭짓점을 하루에도 수천만 번씩 오가던 때라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고고한 삶을 살 나에게 ‘인자함, 너그러움’과 같이 보드랍고 따뜻한 것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전자든 후자든, 한마디로 ‘선생’은 내 삶과는 비껴가 있는, 비껴가 있어야만 하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가난했고, 불안했다. 아는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돈도, 미래도, 연인도,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그의 말에 내 미래를 동여맸다. 그리고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교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았다. 우선 교사자격증을 따야 했다. 몇몇 사범대학과 교육과학대학에 학사편입 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 바로 3학년으로 편입을 할 수 있었다. 많은 나이에(고작 20대 중반이었지만) 다시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만 했다. 장학금과 과외를 비롯한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다. 자정이 넘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교육학 책을 펴면, 지금 뭐하는 짓인지, 내 청춘을 이토록 재미없는 공부에 쏟아도 되는 것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국의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산 위에서 불어 내려오면 가슴이 떨렸지만, 두 눈을 감고 도서관에 남았다. 이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내고,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손에 쥔 그다음 달부터 나의 ‘선생질’이 시작되었다. 2006년 3월이었다.
내 직업이 낯설 때가 많다. 교육은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교육학개론에서 가르친다. 배울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아직 이 숭고한 명제을 들으면 민망하기만 하다. 내가 뭐라고 너에게 영향을 끼쳐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너에게 조언이란 걸 하는 게 너무 힘이 든다.
사랑하라 한다.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와 네가 봄과 여름을 함께 보내고 나면, 너는 나에게 18년을 산 유기물 덩어리가 아니라 역사를 가진 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건 너와 내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낸 것이지 교사인 내가 학생인 너를 처음부터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가르치라 한다. 무엇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알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당장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게 너에게 좀 더 좋은 일일 테니, 그것을 위해 나는 너에게 문제를 나눠주고 풀라고 한다. 열심히 품사와 문장 성분의 차이를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멀리 보지 말라고, 힘이 들 때는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을 잘게 쪼개서 해나가라고. 그러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아주 멀리, 높은 곳에 와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오늘 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나는 너에게 말한다. 나는 너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가 없다. 난 딱 여기까지다. (2017.5.1)
이제, 이렇게 14년 차.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정한 갈매나무를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 혼자 배낭여행을 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인자하고 넉넉한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선생으로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라나다에서 그가 생각한 것처럼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뭘까? 14년 동안 무엇이 나를, 선생을, 선생으로 살게 한 것일까? 숨이 멎도록 아름다웠던 봄날의 교실, 네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 교무실 자리, 그때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던가, 그 순간들을 호명하며, 호위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다시없을 소년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