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섬, 청령포

by YeonJin

영월 김삿갓면의 조제분교에서 우구치재를 넘어 춘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우리뿐이었다. 선생님의 짐을 정리하러 갔을 때에도 그 고갯길을 함께 넘었던 은색 소나타가 먼지를 수의처럼 뒤집어쓰고 거창의 깊어 가는 산 그림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은색 소나타를 타고 영월의 청령포,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 합천의 해인사, 강진의 다산초당에 갔었다. 선생님은 먼발치에서 담배만 피우셨을 것이고, 우리는 우리끼리 아르바이트 얘기나 그 당시 만나고 있었을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만 했을 것이다. 가야산이 내뿜던 바람의 차가움과 남도의 황톳빛 능선의 포근함, 반구대 암각화와 처용이 왔을지 모를 시간의 아득함, 청령포의 깎아지른 절벽의 외로움을 각자 담고서 우리는 그렇게 딴짓을 하며 조금씩 떨어져 걸었을 것이다. 조금씩 떨어져 걸었던 그 길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행복해야 한다’고 툭 한 마디 하셨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돌렸을 때, 굽이굽이 올라가는 은색 소나타 창 아래로 푸른 서강이 흐르고만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었을 것이다. 나는 교사가 되어 떠나기로 했으므로 선생님이 맡기셨던 여러 일들을 마무리해야만 했었다. 청령포에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았던 때라 그때 우리는 꽤나 땀을 흘리며. 그 여름에 청령포 절벽길을 걸었다. 소나무는 절벽을 따라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굵고 곧은 소나무와 절벽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소나무. 그때 선생님은 낭떠러지 밑의 푸른 물을 보며 ‘갈 데가 없었겠구나’ 한 마디 하셨던 것 같다. 덥고 해는 쨍쨍해서 장릉까지 가고 싶지 않았으나, ‘그런 곳에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를 묶고 있던 느슨한 정체성이었으므 우리는 또 말없이 장릉을 한 바퀴 돌았을 것이다. 이십 대였던 우리는 영월 동강에서 래프팅을 하는 대신 그렇게 청령포의 절벽과 방치된 장릉을 선생님과 같이 걸었다. 그리고 나는 떠났다.


지난 금요일, 아이들과 밤 10시 45분, 귀찮아하는 아이들을 부추겨 함께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나는 청령포 절벽을 걷던 그해 덥고 습하고 적막했던 여름을 떠올랐다. 나의 청룡포는 가고 싶지만 가지 않기로 한 길을 두고 떠나온 꿈 같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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